▲완성된 킹키부츠표준 남성의 몸무게를 지탱할 정도로 튼튼하면서, 매혹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꾸며줄 수 있는 아이템. 킹키부츠는 드래그 퀸을 위한 맞춤형 패션 아이템이다. 누구나 '나다움'을 찾기 위해서는, 그 나다움을 잘 표현하기 위한 나만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모두가 똑같이 따라하는, 기성 사회가 강요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곽우신
하지만 사회는 각자에게 존재하는 나다움의 개성보다는, 통념에 걸맞은 인간을 요구한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바라는 남자다움도 마찬가지이다. '어디 가서 맞느니 차라리 때려라'라든가 '남자는 우는 거 아니다'라든가와 같은. 물론 이런 잔소리에 단순히 자식을 통한 욕망의 대리 실현만 포함된 건 아니다. 굳이 모나게 현실의 풍파를 겪느니, 둥글둥글하게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길을 따라 편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도 들어 있다.
하지만 그런 삶이 과연 행복한 삶일까. 그저 다수가 걷는 길을 따라, 별다른 감흥 없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행복할까. 그런 모습을 보는 우리의 부모는 정녕 만족해할까.
누구도 우리의 인생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없다. 그 '누구도'에는 가족도 포함된다. 부모가 자녀에게 할 수 있는 건 이 거친 세상의 가시밭길에 발이 다치지 않도록 튼튼한 구두를 신겨주는 것뿐이다. 그 구두가 가리키는 방향은 정해지지 않았다. 어느 쪽으로 발걸음을 내딛고 내 인생을 걸어나갈지는, 내가 결정할 뿐이다.
찰리와 롤라는 다른 선택을 했다. 어떻게든 이 시골을 벗어나 런던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자 했던 찰리는,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공장으로 돌아왔다. 한 번도 자신이 '프라이스 앤 선'의 사장이 될 것이라 상상치 못했던 그는, 갑작스럽게 자신에게 떠밀려진 이 책임을 억지로 수행하느라 버둥거린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닫는다. 자신의 구두 끝이 정말로 이 공장을 향하고 있었음을. 어렸을 적 보아왔던 가족들(노동자)과 함께 이 일터이자 삶터를 지키는 것. 그리고 그를 위해 누구도 얕볼 수 없는 아름답고 위대한 신발을 만드는 것. 그게 그의 꿈이자 열정이었다.
처음엔 그저 아버지의 유지를 이으려 노력하던 찰리는, 아버지가 자신(찰리)을 향한 믿음을 포기하고 공장을 팔려고 했었던 사실을 안 후에도 밀라노에 가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찰리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프라이스 앤 선 공장으로 돌아왔고, 이 구두 공장을 훌륭하게 지켜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건 아버지의 소원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소원이기 때문이다.
롤라는 아버지의 소원과는 달리 권투를 하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드래그 퀸으로 남았고, 브래지어와 하이힐을 한 채 노래를 부른다. 프라이스 앤 선 공장의 디자이너가 된 후에도 그는 힐을 신고 스카프를 두른다. '정상적인' 남자 옷을 입은 사이먼일 때 그는 부끄럽고 초라한 존재이지만, 힐과 드레스만 있다면 누구든 무릎 꿇릴 수 있는 넘치는 자존감의 소유자이다. 하지만 남자답지 못한 자신을 용납할 수 없던 아버지와의 연은 끊긴다. 아들과의 연은 끊으면서 담배는 끊지 못해 요양병원에 가 있는 아버지를, 롤라는 계속 원망하고 있다.
요양원에서 공연 요청이 들어왔을 때, 롤라는 이런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두려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찰리는 말한다. 만약 남자다움이 두려움과 맞설 용기를 뜻하는 것이라면, 세상 전체와 맞서 싸우는 롤라만큼 남자다운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건 남자다운 게 아니다. 롤라다운 것이었다. 휠체어 앉아 있는 아버지 앞에 누구보다 슬프고 아름답게 노래하는 그.
▲아버지 앞에 노래하는 아들<킹키부츠>의 장점 중 하나는, 아들들의 욕망을 억압하는 아버지들을 그저 파괴하고 싸워야 할 대상으로 한정짓지 않는 것이다. 서로 이해하고 화해하는 법 그리고 진정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나가는 방법에 대해 <킹키부츠>는 이야기 한다.
곽우신
"그대 이제 날 잊나요. 내 얼굴 보기조차 싫겠죠. 춤추는 내 모습도, 행복한 목소리도 더 이상 의미 없어. 모르죠, 진짜 내 모습을. 가장 거짓 없고 진실한 나. 하지만 이 순간 난 네 옆에 서있어. 이대로 그대 마음속에 새겨줘, 나를. 이해해줘요, 이 모습 그대로. 놓지 마. 날 포기하지 마, 나를. 서로에게 지독한 상처를 줘도, 우린 서로가 너무도 소중한 걸. 그대 마음속에 새겨줘, 나를. 날 받아줘요. 이 모습 그대로." - 뮤지컬 <킹키부츠> 2막 No.15 '그대 맘 속에 나를 새겨줘(Hold me in Your Heart)' 중에서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롤라. 노래를 마친 후 이별 인사를 하고 나오는 롤라의 손을 아버지는 꼭 부여잡는다. 그건 원망이나 분노가 아니라, 교차하는 미안함과 고마움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대사 없이 잠시간 흐르는 그 정적이 묵직하다. 찰리와 롤라의 다른 선택은 같은 곳으로 귀결된다. 내가 가고 싶은 길, 나다움을 찾아 나섰던 그 길로.
찰리의 아버지도, 롤라의 아버지도 사실은 자신의 아들들이 진심으로 행복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다만 아들들이 자신의 행복을 찾아 걸어가는 길이, 그 행복에 닿기도 전에 지나친 불행을 감내해야 할까 봐 나무라고 말렸다. 하지만 두 아들이 그 길의 끝에 결국 손에 '나다움'을 쥐었을 때, 누구보다 축하하고 안아주는 것 역시 이 아버지들이었다. 극의 마지막, 찰리와 롤라의 어렸을 적 모습이 다시 한 번 등장한다. 그리고 이 두 아들은 각자의 아버지 품에 안긴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가슴에 안았다.
연휴 동안 학업, 취업, 결혼 등에 관한 '애정 어린' 잔소리를 듣는 데 지친 당신이라면, 이 뮤지컬이 최적의 선택이 될 것이다. 특히 세상 풍파 앞에 맞서려는 자녀에 대한 걱정이 지나친 부모라면, 부모의 기대와 사회의 요구를 거스르고 나만의 길을 찾기를 주저하는 자녀라면, 그래서 서로에게 지독한 상처를 준 사이라면 더더욱.
만약 그런 아버지나 어머니, 아들이나 딸이 있다면 함께 손을 잡고 이 작품을 보기를 추천한다. 블루스퀘어를 나오는 가족의 손은 찰리와 롤라, 그리고 두 아버지들이 서로를 안았던 것처럼 뜨거우리라. 뮤지컬 <킹키부츠>의 마지막 넘버는 '저스트 비(Just Be)'라고 외친다.
▲밀라노 패션쇼 그리고 화해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지난 2일 개막한 <킹키부츠>는 오는 11월 13일까지 상연된다. 극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수놓는 넘버부터 커튼콜까지 이어지는 그 '흥'은 관객을 일어설 수밖에 없게 한다. 보고 듣는 재미와 메시지를 잘 버무린 <킹키부츠>를 놓치지 말자.
곽우신
[관련 기사]☞ [2014-2015 킹키부츠] 하이힐에 가짜 가슴 달아도... 나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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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오마이뉴스 유지영입니다. alreadyblue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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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아들에게 준 맨박스, 세상에 남자다운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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