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모>는 "아프냐, 나도 아프다"란 대사로 유명하다.
MBC
"아프냐? 나도 아프다."꽃잎 흩날리는 달밤 두 주인공이 주고받던 애틋한 눈빛과 가슴 저미는 저 대사. 남편은 집에 오든지 말든지, 저녁을 먹든지 말든지, 싸한 에너지 팍팍 풍기며 결코 뉴스에 채널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로 손에서 절대 놓지 않던 리모컨을 사수하다 보게 된 드라마가 <다모>였다. "꺄악~" 하고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어쩜 저렇게 예쁜 말을, 가슴 따뜻해지는 말을 할 수 있을까. 난 결코 들을 수 없는 말을….
그때 부터다, '폐인'이란 신조어에 당당히 일조하기 시작한 것이. 다음날부터 인터넷을 통해 드라마를 처음부터 다시 보는 것은 기본이요, MBC 홈페이지 100만 게시글 목표 풀가동, 인터넷 <다모> 카페 활동, 주제가 섭렵 등 조절가능한 시간은 모두 <다모>에 바쳤다.
어쩔 수 없는 태생의 한계, 벼랑으로 내모는 칼, 숨은 절벽인 줄 알면서도 묵묵히 오르는 주인공 황보윤(이서진 분)의 그 깊은 외로움, 양반에서 노비로 전락한 어린 채옥(하지원 분)의 두려움을 따뜻이 품어주던 그의 모습은 요즘 어깨 깡패 배우들이 보여주는 판타지와는 비교 불가능한 것이었다. 또 다른 주인공 장성백(김민준 분)의 강한 남자다움은 또 다른 판타지로 나를 위로했다.
여주인공 채옥의 주제곡 '단심가'에서 "나를 버리시는 게 하늘의 뜻이라도 원망하지 않아요"라는 대목처럼 숙명과도 같은 고난의 길을 가는 여자 채옥, 현실에서 불행한 나는 드라마 속 채옥이 되어 두남자에게 가슴을 데우며 살았다.
세 남녀의 엇갈린 운명, 당연한 듯한 삼각관계에서 벗어나 조선시대에 실제로 사는 듯한 젊은 남녀의 비극적인 삶을 그려낸 드라마 <다모>를 보며 폭풍과도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돌아본 일상은 드라마가 보여준 판타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잔뜩 쌓인 일거리, 사랑이 고픈 아들들, 악당이어야 할 남편은 아내의 위로가 필요한 외로운 남자였다.
그렇게 한 달여의 시간을 보내고 남편이 사들고 온 막걸리 한 병으로 냉전도 끝이 났다. 그때 요리 강사를 계속했더라면 지금쯤 내 모습은 어떨까 생각하곤 한다. 그때부터 흐른 시간 동안 그 길을 가기위해 거쳤을 법한 사건들을 추측하다보면 남편의 성격상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닐 것 같다.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 또한 있듯이 그동안 남편이 보여준 한결같은 책임감은 지금의 가정이 있게 한 가장 중요한 힘이기 때문이다.
비록 '어깨 깡패' 배우들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어깨를 가진 남편이지만 우리 가정을 짊어지고 있는 어깨는 세상 어디에도 없으니 말이다. 13년 전 힘들었던 그때, 남편 대신 위안이 되었던 드라마 <다모>. 지금도 그때 출연했던 배우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은 일부러 챙겨본다. 아무리 다른 역할로 살아도 그들은 영원히 내 길을 포기한 나를 위로해주던 황보윤이요, 장성백이요, 채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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