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류층만이 상류층을 인정하는, 참으로 슬픈 풍토다. 영화에서 그들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상류층만이 상류층을 이해할 수 있고, 말이 통한다고. 이같은 풍토를 바꿀 순 없을까?
미라맥스
"과거를 창고에 꼭꼭 숨겨 두고 자물쇠를 채우고픈... 그 안은 어둡고 더러워. 그 추잡함을 들키면..." 누구나 거짓된 삶을 사는 건 아니겠지만, 많은 거짓과 비밀을 마음속 깊이 묻어두고 산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알려주고 싶지만, 그 더럽고 추잡한 사실을 들키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렇게 평생을 사는 것이다. 톰 리플리, 그는 우리 모두의 또 다른 모습이다. 너도 될 수 있고 나도 될 수 있고 어느 누구라도 될 수 있다. 미친놈이라기보단 괴물에 가깝지 않을까.
때는 1950년대 미국, 위기와 전쟁을 지나 자본주의 최대 호황의 시대를 맞이했다. 빈부격차가 심화되며 상류층의 삶의 양식이 정착되었다. 비천한 이가 감히 상상하기 힘들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마다하기 쉽지 않을 거다.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상류층이라면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이 영화가 원작으로 삼은 <재능 있는 리플리씨>에서 나온 '리플리 증후군'은 톰이 잘 보여준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일종인데, 참으로 애잔하고 슬프기까지 하다. 만약 현실이 비참하지 않다면? 자신이 비참하다고 느끼는 건 누군가와 차별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건데, 그런 차별이 없는 사회라면? 영화에서처럼 상류층만 상류층을 인정하는 풍토가 없다면? 리플리 증후군 따위는 없을 거다.
자만심으로 풍만한 상류층과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하류층의 더럽고 슬픈 합작품. 누구나 그것에 노출되어 있고 빠지기 쉽다는 게 안타깝고 두려울 뿐이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고 아마 지금도 그런 삶을 살고 있을 거다. 내가 의도했거나, 나도 모르게.
사회를 바꿔가는 수밖에 없다. '나'라는 중심을 확고히 세우고 '나'를 사랑하고 '나'만의 길을 걸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만 노력한다고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갖는 게 필요하다. 자칫 서로에 대한 무관심으로 나아갈 수 있는데, 역효과를 불러올 것이다.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에겐 나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은 그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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