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강전의 '키포인트'는 두 선수, 박정아와 이재영(오른쪽)이다.
박진철
"박정아와 이재영이 미치는 수밖에 없다."결론은 하나였다. 리우 올림픽 여자배구를 중계하는 해설가 3인방이 한목소리를 냈다. 40년 만의 올림픽 메달로 가는 최대 고비인 8강전 승리를 위해서는 박정아와 이재영이 버텨주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이번 리우 올림픽에서 여자배구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TV 시청률이 평일 아침 출근 시간대임에도 20%(지상파 3사 합계)를 넘나들고 있다.
부담감도 더욱 커졌다. 이제는 한국 구기 종목의 자존심까지 혼자 짊어지게 됐다. 믿었던 축구마저 14일 온두라스에 일격을 당하면서 4강 진출이 좌절됐기 때문이다. 이로써 한국 단체 구기 종목 중 유일하게 여자배구만 생존해 있다.
리우에 한국의 단체 구기 종목은 겨우 4종목만 출전권을 얻었다. 남자 축구, 여자 배구, 여자 핸드볼, 여자 하키뿐이었다. 이중 남자 축구, 여자 핸드볼, 여자 하키가 14일 8강 또는 조별예선 탈락이 확정됐다. 모두 4년을 준비해서 힘겹게 본선 출전권을 따냈기에 탈락 하나하나가 안타까움이 클 수밖에 없다.
여자배구는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최대 고비는 단연 8강전이다. 아직 상대가 확정되지 않았지만, 17일(한국시간) 8강전에서 만날 B조는 모두 '험난한 산'이다. 미국, 세르비아, 네덜란드, 중국 중 한 팀이기 때문이다.
또한, 조별예선에서 부진했다고 8강, 4강 토너먼트에서도 똑같은 전력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지난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조별예선 4위로 8강에 진출한 브라질이 결국 금메달을 획득한 것이 산증인이다.
8강전부터는 지면 탈락이기 때문에 모든 팀이 총력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다. 상대성도 있고, 변수도 많다. 어느 팀도 섣불리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레전드 장윤희 "박정아·이재영 집중 타깃, 그래도 버텨야"한국 여자배구가 8강의 고비를 넘기 위해서는 모든 선수가 제 몫을 해줘야 한다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조별예선에서 드러난 경기력으로 볼 때, 키포인트는 김연경을 도와줄 레프트 한 자리이다. 박정아·이재영의 역할이 최대 관건이라는 뜻이다.
양효진은 리우 올림픽에서 국제용 센터로 확실하게 거듭나면서 김연경 다음으로 많은 득점을 책임지고 있다. 김희진도 몸 상태와 경기력이 어느 정도 올라왔다. 김해란도 소위 '미친 디그'를 선보이며 수비 라인의 핵심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정철 감독이 '걱정거리'라고 말했던 박정아·이재영의 자리는 잘 풀리지 않고 있다. 여전히 공격은 물론 리시브까지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둘 중 한 명이라도 공격이든 수비든 확실하게 제 몫을 해줘야만, 한국이 4강 진출을 엿볼 수 있다.
장윤희 MBC 배구 해설위원은 14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박정아·이재영 둘 중 한 명은 8강전에서 소위 '미쳐야 한다'"고 말했다.
스포츠에서 단기전이나 중요한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그 날 미치는 선수가 나와야 한다'는 말이 있다. 장 해설위원은 그 점을 기대하고 주문한 것이다. 장 해설위원은 현역 시절 지금의 박정아·이재영처럼 국가대표 레프트 공격수를 맡았다. 국제대회에서 공격과 수비 모두 뛰어난 활약을 했고, 지금도 '레전드'로 불리고 있다.
장 해설위원은 "지금 시점에서 박정아·이재영의 실력을 갑자기 끌어올릴 수도 없다"면서 "두 선수 중 한 명만이라도 미치는 경기력을 발휘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야 4강 진출이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다행히 양효진이 급성장하면서 김연경의 부담을 덜어주고 있어 긍정적"이라며 "그러나 8강전은 김연경·양효진만으로 돌파하기 힘들다. 박정아·이재영의 역할이 꼭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상대 팀은 박정아·이재영을 타깃으로 집중적인 서브를 넣을 공산이 크다"며 "리시브와 수비에서 반드시 버텨줘야 한다. 그래야만 김연경이 체력적으로 부담감 없이 공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부담감 내려놓고 더 빨리 움직여야"장 해설위원은 박정아·이재영에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박정아는 공격 폼이 뒤에서 짊어지고 때리는 스타일이다. 따라서 공격 파워가 떨어지고, 장신의 블로킹 벽을 뚫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몸놀림을 더욱 빠르게 가져가야 한다. 토스가 오기 전에 재빨리 뒤로 빠져서 달려들어 가면서 공을 앞에다 놓고 때려야 한다"며 "상대 선수보다 한 발이라도 더 움직인다는 마음가짐으로 빨리빨리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재영에 대해서는 "막내이기 때문에 너무 잘하려는 욕심이나 '나 때문에 지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을 버려야 한다"며 "복잡한 생각 다 내려놓고 미친 듯이 뛰어다니겠다는 마음으로 경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편안한 마음으로 빨리빨리 뛰어다니다 보면 수비나 공격도 잘 풀리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도희 SBS 해설위원도 "박정아·이재영 두 선수가 8강에서는 꼭 '미치는' 경기를 하기를 기대한다"면서 "두 선수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가 미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숙자 KBS 해설위원도 "박정아가 올림픽 예선전 때 보여줬던 경기력만 살아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과연 여자배구는 운명의 8강전에서 '졌지만 잘 싸웠다'가 아닌, '멋지게 이겼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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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