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주현의 위치10년의 커리어를 쌓아오면서, 옥주현은 국내 뮤지컬 여배우들 중 손에 꼽히는 인물이 됐다. 모든 작품이 좋았던 것도, 모든 배역이 잘 맞았던 것도 아니지만 부침을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성장했다. 티켓파워든 인지도든, 국내 뮤지컬계에서 그녀는 무시 못할 존재감을 뿜어내게 됐다.
포트럭주식회사
퇴근 후 택배 포장지를 뜯을 때, 이렇게까지 설렜던 건 참 간만이었다. 두 장의 엽서, 40쪽의 북릿, 그리고 두 장의 CD에 담긴 16개의 트랙. 플레이어에 CD를 넣고,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그렇게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일종의 황홀경을 체험할 수 있었다.
옥주현은 노래를 잘한다. 그것도 아주. 트랙을 하나하나 따라갈 때마다 카타르시스가 고막을 때린다. 그건 단지 옥주현의 폭발적인 성량이나 고음 때문만이 아니다. 그의 노래에 담긴 건 힘이고, 주체성이고, 음이나 박자 안에 가둘 수 없는 에너지다.
<마타하리> 때 실망감을 줬던 그분은 온데간데없었다. CD에는 내가 그간 익히 봤던, <엘리자벳>에서 당차게 자기 인생을 노래하고, <레베카>에서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욕망을 드러내고, <위키드>에서 모든 억압을 떨쳐 버리고 서쪽 하늘로 날아갔던 옥언니가 계셨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캐릭터는 형상이고 배우는 질료다. 옥주현이라는 배우가 제대로 노래하고 연기하기 어려운 배역이 있을까. 오히려 옥주현의 역량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캐릭터가 별로 없는 게 아닐까. 여배우가 제 기량을 펼치기에 국내 뮤지컬 시장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여성 위주의 서사도, 여성이 돋보이는 노래도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옥주현이라는 존재가 국내 뮤지컬계에 있어서 참 다행이다. 그녀는 국내 뮤지컬 여배우 중 톱클래스로 불리는 이 중 한 명이고, 그 가운데서 여배우가 설 수 있는 무대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인물이다.
2번 CD 2번 트랙, <위키드>의 '영원히(For Good)'를 함께 부르는 옥주현과 조정은에게서는 시로맨스(시스터+로맨스)마저 느껴진다. 옥주현 엘파바와 조정은 글린다의 페어를 꼭 보고 싶게 만드는 둘의 '케미'도 멋지다. 동시에 브로맨스, 남자들의 우정만이 세상 모든 우정인 것처럼 여겨지던 무대 환경 속에서 뮤지컬 <위키드>, 그 중에서도 이 넘버가 품은 함의가 크고 무거움을 다시 한 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