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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심지어 선수가 부인해도 혹사는 혹사다

[이용선의 견제구] 우려스런 '김성근식' 불펜 야구

16.08.02 14:44최종업데이트16.08.02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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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의 최근 기세가 8월의 폭염보다 더 뜨겁다. 한화는 지난 주말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금-토요일 연승을 거두며 일찌감치 위닝시리즈를 확정했다.

주말 3연전 전까지만 해도 두산과의 시즌 상대 전적에서 7전 전패로 압도적 열세를 보이던 한화였다. 두산을 상대로 한  연승은 그래서 더욱 달콤했다. 하지만 이 달콤함 속에는 독(毒)이 숨겨져 있다.

한화 불펜 투수들의 잦은 등판

한화 심수창이 1799일 만에 선발승을 거두며 세간의 화제가 된 30일 경기에서 한화 마운드에는 '늘 보던 투수들'이 차례로 등판했다. 5.1이닝을 던져 승리 투수가 된 선발 심수창은 전날 경기에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해 1.2이닝을 던진 바 있다.

전날 불펜 투수가 이튿날 선발로 등판한 것이다. 선발 예고를 본 대다수는 심수창이 통상의 선발 역할이 아닌 첫 번째 투수로 짧은 이닝을 소화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실제는 달랐다.

두 번째 투수 박정진은 7월 27일 대전 SK 와이번스전 이후 이틀 휴식 후 등판이었다. 불펜 투수로서는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의 등판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날 박정진은 시즌 50번째 출장을 기록했다. 현재 한화는 93경기를 치른 상태다. 아직 100경기도 채우지 않았다.

한화 송창식 ⓒ 한화 이글스


세 번째 투수 송창식은 무려 4연투를 했다. 27일 대전 SK전부터 매일매일 마운드에 올랐다. 4일 간 그는 도합 5.1이닝 79구를 던졌다. 어지간한 선발 투수에 맞먹는 이닝 소화 및 투구 수이다.

불펜 투수의 투구 수는 마운드 위에서 던지는 것만 따질 수는 없다. 불펜에서 등판 직전 몸을 풀며 공을 던지고 이닝 도중에도 경기 감각 유지를 위해 공을 던진다. 송창식이 4일 간 실제로 던진 공은 79구의 2배 안팎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6시즌 투수 등판 경기 수 5걸 (출처 : 야구기록실 KBReport.com) ⓒ 케이비리포트


박정진은 50경기에 등판했지만 놀랍게도 한화에서 가장 많은 경기에 나선 투수가 아니다. 권혁은 55경기, 송창식은 53경기에 등판했다. 그들은 리그 최다 등판 1위와 2위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박정진은 리그 공동 4위에 해당한다.

이들 '불펜 3인방'이 현재와 같은 등판 페이스를 유지할 경우 시즌 종료까지 권혁은 86경기, 송창식은 83경기, 박정진은 78경기에 등판하게 된다.

전날 불펜으로 나왔다가 다음날 선발로 등판한 심수창의 경우에서 드러나듯 한화의 여러 투수들은 정해진 보직없이 선발과 불펜을 오간다. 심수창은 35경기 중 6경기, 장민재는 36경기 중 7경기, 윤규진은 26경기 중 10경기에 선발 등판했다. 송창식과 박정진도 선발 등판 기록이 있다.

투수 본인이 혹사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

한화 김성근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 그리고 한화 투수 들까지 '혹사'라는 비판을 부정한다. "외부에서는 모르는 사정이 있다",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선수가 괜찮다고 한다"고 항변한다.

한화 장민재 ⓒ 한화 이글스


이 중 투수가 혹사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투수 본인이 혹사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유니폼이 마약"이라는 속설처럼 대다수 투수는 마운드에 올라가 갈채와 주목을 받으면 희열을 느낀다. 타격감이 좋을 때 한 타석이라도 더 나가고 싶은 타자의 심리와 유사하다. 

예전보다는 나아졌다곤 해도 많은 미디어가 한화 투수의 '투혼'을 부각시키고 관중들은 그의 이름을 연호한다. 잦은 등판을 할 경우 아무래도 고과산정에서 좋은 평가를 받게 될 공산이 크다. 성취감이 육체적 피로나 고통을 잊게 하는 경우다.

둘째, 투수 본인은 혹사임을 인지하지만 등판을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야구관 차이나 기용 문제로 인해 지도자와 선수가 대립하는 사례가 상대적으로 잦은 메이저리그와 달리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그런 갈등이 표면화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감독·코치와 선수는 스승과 제자, 즉 사제지간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유교적 의식이 여전히 강한 한국 사회에서 선후배 관계보다 한층 엄격한 사제 관계라면 제자는 스승의 말에 순응해야 하는 것이 도리다.

사실 동등한 개인사업자인 감독과 선수이지만 프로 세계와 이질적인 사제 개념이 자연스레 녹아든 한국 프로야구 풍토 상  투수가 '힘들다'거나 부상 우려 때문에 등판을 꺼려하는 모습은 스승의 권위에 대한 항명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

꼭 1년 전 붕괴되기 시작한 한화 불펜

시계를 1년 전으로 되돌려 보자. 한화는 2015년 7월 31일까지만 해도 48승 45패 0.516의 승률로 5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비원의 포스트시즌 티켓이 손에 잡히는 듯했다.

하지만 8월을 기점으로 한화는 급전직하했다. 8월 한 달 간 9승 16패 0.360의 승률에 그쳤다. 9월부터 정규 시즌 종료까지는 11승 15패 0.423의 승률에 머물렀다. 최종 순위 6위의 성적표를 받아든 한화는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시즌 초반부터 많은 경기에 등판한 투수들이 8월 이후 무너진 것이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았다.

2015시즌 8~10월 한화 핵심 불펜의 성적 (야구기록실: KBReport.com) ⓒ 케이비리포트


김성근 감독의 투수진 운용은 2016 시즌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한화의 성적은 최근 분전에도 불구하고 7월 31일 기준으로 41승 3무 49패 0.456의 승률로 작년 7월말과 비교하면 승패차 -11을 기록 중 이다.

게다가 작년 8월부터 시작된 마운드 붕괴를 올해는 재연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하기 어렵다. 이미 주요 불펜 투수들이 지난 시즌 이상으로 많은 경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한화의 8월이 또 다시 두려운 이유다.

한화는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간 가을야구를 하지 못했다. 9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 여부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불펜진 기용이라면 한화는 자칫 올해 성적은 물론 팀과 선수들의 미래까지 놓칠 수 있다.

혹사 논란을 불편해 하는 이들은  많은 이닝을 던지고 싶어 한화를 택했다는 권혁과 SK 시절 시즌 100이닝을 넘긴 정우람의 한화행, '자주 던질 수 있어서 행복하며 혹사 논란 자체가 불편하다'는 장민재의 최근 발언 등을 근거로 선수가 원한다면 혹사가 아니라는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선수가 원했다고 한들, 더나아가 그에 대해 감사함을 표했다고 해서 혹사라는 사실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혹여 선수가 무리한 출장이나 등판을 원하다하더라도 그것을 적절히 관리하며 긴 시즌을 운용하는 것이 정상적인 감독에게 요구되는 역할이다.

한화 김성근 감독 ⓒ 한화 이글스


비정상적인 혹사에 대한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특정 감독에 대한 공격이나 특정 팀 견제라는 식으로 곡해하는 것 역시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한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불펜 혹사는 특정팀이나 특정 감독의 문제가 아니라 몇몇 구단과 감독들도 경각심을 가져야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 무리했던 권혁이 올 시즌 건재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선수 본인과 구단, 팬 모두에게 다행스런 일이지 그의 혹사와 향후 선수 생명을 걱정했던 이들이 비웃음을 살 일이 아니다.

혹사가 누적되고 길어지면 한 선수의 야구 인생이 단축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국내외의 수많은 사례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끊임없이 주의를 환기시키고 개선을 요청해서 비정상적인 기용이 이뤄지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기간의 성적에 집착한 무리한 선수 기용, 선수가 원했다는 식의 변명이 통용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결과와 승리에만 도취되어 과정과 절차에서 선수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이 한국 프로야구에서 반복되선 안된다. 혹사는 어떻게 포장해도 혹사일 뿐이다.

[기록 출처: 프로야구 기록실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 KBO기록실, 스탯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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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글 : 이용선 프로야구 필진/김정학 기자) 이 기사는 프로야구 통계미디어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프로야구/MLB 객원필진/웹툰작가를 모집합니다.[kbr@kbreport.com]
야구기록 KBREPORT 혹사 한화 김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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