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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으로 가리고 내빼는 국정원장... 창피를 모르더라"

[inter:view] <자백>의 최승호 PD① "이 영화 존재가 사회적 비극"

16.07.19 13:36최종업데이트16.07.21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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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1월 15일은 최승호 PD가 언론인으로 몸담은 지 만 30년이 되는 날이다. 1986년 MBC에 입사해 25년 간 <피디수첩> 등을 통해 내놓은 기획들은 세상을 놀라게 하곤 했다. 당장 우리가 기억하는 굵직한 주제만도 여럿이다. 전 국민적 지지를 받던 황우석 박사의 허점을 신랄하게 드러냈고, 검사들을 비롯한 고위공직자의 비윤리적 모습을 고발하기도 했다.

MBC 해직 언론인이 되어 대안 매체 <뉴스타파>에 몸담게 됐을 때도 그의 칼날은 무뎌지지 않았다. 당장 오는 10월 개봉 예정인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이 그 증거다. 2013년부터 3년간 취재하면서 그는 간첩조작사건의 책임자들을 쫓았고, 또 물었다. "당신이 간첩으로 만든 무고한 사람들에게 사과할 생각이 전혀 없나"라는 일관된 질문에 국정원장도, 검사도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아니 답하지 않았다.

그들에 대한 분노, 그리고 반성하지 않는 공직자에 대한 경각심이 <자백>의 시발점이었다. 단출했다. 조연출 한 명과 카메라 기자 한 명과 함께 그는 3년을 보냈다. 지난 15일 서울 <뉴스타파> 사무실에서 만난 그에게 영화의 출발과 과정을 물었다. <자백>이 지금 이 시점에 존재해야 할 이유를 찾기 위해서였다.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을 3년 동안 취재해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을 만든 최승호 <뉴스타파> PD가 영화 포스터를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비극은 현재도 진행 중

"간첩으로 몰렸던 유우성씨가 무죄라는 2심 판결이 났음에도 국가정보원(아래 국정원)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영화화를 결심했다. 아마 이상호 기자의 <다이빙벨>의 영향도 받았을 거다. 저렇게 영화화 할 수 있구나. 우리도 취재한 걸 바탕으로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욕심도 났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영화를 염두에 둔 촬영을 시작했다."

<자백>엔 유우성씨를 비롯한 여러 조작 사건 피해자들이 등장한다. 40년 간 국가에 의해 고통 받다 정신을 놓아버린 이가 있었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도 있었다. 한 개인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마저 파멸시킨 한국이라는 국가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세련된 방식으로 증거를 조작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또 다른 간첩 누명을 쓴 이들이 철창 안에 갇혀 있다.

"지난 7월 7일에 (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또 다른 한 분이 출소를 했다"고 그가 운을 뗐다. 최근엔 태국에서 추가 취재를 진행했다고 한다. "개봉 직전까지 영화에 추가할 내용을 고민 중"이란다. 그런 의미에서 <자백>은 이미 끝난 게 아닌 여전히 '진행형인 작품'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이미 지난 전주국제영화제를 비롯해 해외 여러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음에도 최승호 PD는 "영화가 개봉돼서 많은 분들이 보시고 현실의 변화가 있어야 어느 정도 성취감을 느낄 것 같다. 지금까진 별 감흥이 없다"고 고백했다.

"취재를 통해 할 수 있는 건 거의 다했다. 한 사건은 무죄로 결론 났고, 또 다른 하나는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그럼에도 국정원의 조직 관행이랄까 기풍이랄까. 변한 게 없다. 조작의 책임자를 징계하지 않았다.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감옥에 들어간 사람은 있지만 국정원 자체적으로 재발 방지 대책을 내세운 게 없다. 무시하고 그냥 가겠다는 거다. 박정희 시대 때 어마어마하게 많은 간첩을 조작한 김기춘은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하지 않나. 지금 정부에게 기대할 게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영화를 통해 직접 국민에게 호소하면 나름의 변화는 있지 않을까. 막연한 희망을 갖고 있다.

꼭 약자들만 골라 간첩으로 만들었다. 크게 두 부류인데 하나는 조총련 재일교포들을 잡아가서 고문하고 거짓 자백을 하게 했다. 북한과의 접점이 있으니까 그런 거지. 또 다른 부류는 어부들이다. 고기 잡다가 북한에 잡힌 어부들이 남한에 오면 보안사령부나 경찰들이 잡아가서 고문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걸 견딜 재간이 없다."

제목이 <자백>인 이유는 간명하다. 이 영화의 전신인 애니메이션 <자백이야기>, 또 <14번째 자백>에서 알 수 있듯 조작사건의 핵심이 바로 스스로 고백하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최승호 PD는 "어떤 과학적 수사를 하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을 얽어매고 꼼짝 못하게 해서 '나는 간첩입니다'라는 이야기가 터져 나오도록 하는 게 그들의 유일한 수사 기법"이라 꼬집었다.

상상하지 못했던 거짓말, 그리고 뻔뻔함

최승호 <뉴스타파> PD가 3년 동안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을 파헤치며 취재한 영상물을 가지고 후반 편집작업을 하고 있다. ⓒ 유성호


최승호 <뉴스타파> PD가 지난해 10월 29일 대법원에서 '탈북자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피고인 유우성씨의 간첩 혐의에 대해 최종 무죄 판결을 받은 뒤 변호인단과 함께 대법원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날 이들은 대법원의 무죄 확정 판결로 유우성씨는 제2의 인생의 시작이고, 변호인단은 잊지 못할 역사적인 순간이기에 이를 기록해야 한다며 사진을 찍었다. ⓒ 유성호


공식 개봉에서 다소 바뀌거나 다른 내용이 추가될 수도 있지만 전주영화제 때 공개된 버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조작된 증거로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몰아세우다가 틀통 난 검사들이 법원을 빠져 나가는 모습이었고, 다른 하나는 우산으로 자신을 가린 채 우스꽝스럽게 내빼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모습이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는 반복된 물음에 그들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오히려 희희낙락하며 잡담을 하거나 실실 웃으면서 현장을 떠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양심이 있다면 정말 쪽팔린 일이고, 괴로워해야 할 일인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담배를 물고 자기들끼리 웃으면서 법원을 나가는 모습은 검찰의 현재 기풍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마치 홀가분하다는 모습을 보이지 않나. 우리로선 상상도 못했던 장면이었다.

이 지점에서 알 수 있는 건 국민들이 공직자에게 요구하고 기대하는 책임감 등이 실제로는 없다는 사실이다. 그 무책임성을 국민들이 알아야 한다. 그걸 알아야 뭔가 바꿔보든가 하지. 원세훈씨 같은 경우는 우산으로 가리고 그러는 모습 자체가 창피한 건데 그걸 모르더라. 그래도 일국의 정보기관 장이지 않았나. 퇴임 후 공직자로 모범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전혀 안 하는 거다."

결과적으로 그 무책임함을 카메라에 담아냈지만 그 과정이 순탄했던 건 아니다. 국정원의 폭력과 협박에 대한 공포감으로 선뜻 취재에 응하지 않는 피해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심문 당시 당했던 일들을 절대 발설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쓴다. 출소 후에도 국정원은 피해자들을 끈질기게 감시한다. 최승호 PD는 "자백 이후 정착금이라며 국정원이 돈을 주는데 그 자체가 자백을 번복하지 말라는 (협박의)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백>이 꼭 진보 코드가 있는 영화라고 말할 수만은 없다. 우리나라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국민의 눈과 귀가 돼야 하는 정보기관이 거짓말을 이처럼 일상적으로 해도 되나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피해자들뿐 아니라 국민을 속이는 셈이다. 공포감을 조성하고 끊임없이 간첩을 만들어서 국정원이란 조직이 꼭 필요한 조직임을 과시하는 거다.

지금까지 국정원이 거짓말을 참 많이 했다. 이런 조직을 외부에서 조사하고 정화시킬 수 없는 현실인데 (현행법 상 국정원을 조사하고자 하는 검사는 국정원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 기자 주) 지금은 여소야대니까 여론만 충분히 일어난다면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라고 본다. 아주 상식적인 수준으로 변화시키면 된다. 다시는 거짓말을 할 수 없게 국정원의 특권을 없애고, 검사에게 수사권을 주는 거다."

책임감

에서 해고된 이후 <뉴스타파>에서 앵커로 활동하고 있는 최승호 PD는 "어떤 문제든지 그냥 건드려서는 제대로 해결이 되지 않는다"며 "취재를 해서 뿌리를 파서 끝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보여줘야 한다. 적당히 해서는 세상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유성호


이런 어려운 취재를 거듭하면서 최승호 PD는 "두려움보다는 오히려 책임감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MBC PD 시절을 돌아보며 그는 "'검사와 스폰서' 등을 방송할 땐 다음날 부산지검장이 잘리고 특검이 구성되는 등 바로바로 방송의 영향력을 느끼곤 했다"며 "지금은 그만큼의 영향력은 갖지 못하지만 자유롭게 취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다행히 MBC에서 날 해고시켜서 밖으로 나오게 된 거지 않나. 나오자마자 한 일이 이명박 퇴임 때 4대강 문제에 대해 직접 지시했냐고 물어본 건데 이런 취재는 MBC 안에 있었다면 하지 못했을 거다. 물론 내가 입사했을 때보다 세상은 많이 좋아졌다. 6월 항쟁을 통해 우리 사회를 확 뒤집지 않았나. 그 뒤로 쭉 좋아져서 노무현 정부까진 우리가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때까진 역사는 발전한다고 생각했고, 지금 당장은 좀 어려워도 낙관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를 경험하며 역사가 거꾸로 갈 수도 있다는 걸 안 거다. 그때는 또 한 번만 버티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며) 또 나빠지지 않았나.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간 많은 다큐를 만들었고 <피디수첩>으로 우리 사회에 어느 정도 일조했다고도 생각했는데 어떤 부분에선 세상이 더 나빠졌다.

그래서 책임감이 더 크게 느껴진다. 국정원이 이처럼 국민을 짓누르고 있는 건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해서다. 더 이상 여기에서 밀리면 안 될 것 같다. 낭떠러지까지 떨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라 본다. <자백>이 그래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 중이다. 우리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언론인들이 국민들이 잘 생각하고 잘 행동해야 한다."

다행히도 <자백>이 닻을 올린 후 상황은 긍정적이다. 대기업 멀티플렉스 중심의 국내 극장가에서 스토리 펀딩으로 기본 관객을 확보하고 간다는 전략이 나름 통하고 있기 때문. 개봉을 위해 2억 원을 목표로 했던 <자백>은 펀딩 시작 10일 만에 목표치를 달성했고, 그 이상을 향해 달리는 중이다. 이와 별개로 최승호 PD는 여전히 관련 사안을 취재 중이다.

오는 10월 중 개봉 예정인 <자백>이 또 어떤 모습으로 관객과 만날까. 단순히 호응을 넘어 국민적 각성까지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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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백 최승호 간첩 국정원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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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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