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호 감독.
이선필
한국에서 20년, 프랑스에서 14년 다시 한국에서 2년 - 단편 영하 <히치하이커>로 제69회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을 받은 윤재호 감독(36)의 인생 여정이다. "어린 마음에 한국이 싫어서 프랑스로 유학 간" 이후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찍는 감독이 돼 있을 줄이야. 영화제가 한창이던 17일 오후(현지시각) 팔레 드 페스티벌 내 영화진흥위원회 부스에서 만난 그는 "외국에서 오래 살다보니 기본적으로 내 시선은 이중적일 수밖에 없다"고 운을 뗐다.
한국에선 생소하지만 윤재호 감독은 이미 네 차례 칸영화제를 방문한 실력파다. 전작 다큐멘터리 <마담B>를 비롯해 2013년 대만영상위원회 지원작 <돼지>로 칸의 초청을 받았고, 그 이전엔 학생 신분으로 단편 부문과 단편 마켓에 참여했다. <마담B> 역시 현재 프랑스독립영화배급협회(ACID)의 초청을 받아 칸영화제 기간에 상영되고 있다. <히치하이커>와 <마담B> 모두 탈북자가 중심이 된 작품.
경계선"운이 좋아서"라고 윤재호 감독이 간단명료하게 현재 주목을 받는 이유를 전했지만, 그의 작품엔 나름 고유성이 있어 보인다. 이를 '경계선에 선 사람들에 대한 성애'로 정의해도 좋을 것 같다. 그 스스로가 상당 기간 타지에서 경계인으로 살아왔기 때문일까. 윤 감독은 "문화적으로 난 더블컬쳐(double culture)"라고 진단했다.
"2년 전에 한국에 왔을 때 고생 좀 했어요. 외국물 먹었다는 사람들이 한국에 잘 적응 못하는 일이 있잖아요. 제가 그런 쪽이었어요(웃음). 프랑스 문화와 한국 문화 모두 경험했기에 분단을 바라보는 시선이 좀 다를 겁니다. 최대한 중립적으로 보려고 해요. 제가 보는 한국 분단은 하나의 역사일 뿐이거든요. 거기에 얽매여서 서로 싸우는 건 좋지 않은 거 같아요. 화해를 위해 나아가야죠.어릴 땐 디자이너가 꿈이었고 잠깐 미술대학교에 진학했다가 개인적 사정으로 프랑스에 간 거였어요. 낭시라는 시골 도시가 있는데 한국으로 치면 전주 같은 곳이에요. 거기 가서 사는데 학교가 있으니 시험을 본 거죠. 나중에서야 교수님이 '넌 이론과 실기, 면접 다 빵점이었는데 그림을 잘 그려서 뽑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이곳은 한국처럼 특정 전공을 정하지 않고 다양한 매체를 가르치기에 전 좋았죠."그러다가 덜컥 만들게 된 첫번째 단편이 바로 <그녀>(2003)라는 제목이었다. 프랑스로 온 한국 이민자의 이야기인데, 앞선 작품과 일말의 연관성이 있어보였다. 윤 감독은 "그때부터 경계선에 놓인 사람들 이야기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닮은 꼴 영화들<히치하이커>와 <마담B>는 정서적으로 통한다. 두 작품 모두 탈북자에 대한 이야기다. 20분 분량의 <히치하이커>가 중년의 탈북 남성 이야기를 극화한 것이라면, <마담B>는 탈북을 돕는 여성 브로커에 대한 이야기다. 본래 전혀 다른 작품을 생각하며 취재차 마담B를 만났는데 그만 그의 삶에 빨려들어가버린 셈이다.
"3년 전이었어요. 그 분이 태국에 간다고 해서 동행했는데 발을 잘못 디딘 거죠(웃음). 온갖 험지는 다 다녔어요. 태국에서 라오스로, 라오스 내에서 산을 타야했는데 탈북하신 분들에게 제가 오히려 짐이었어요.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다 수용소까지 들어가게 됐어요. 탈북자분들은 한국 대사관에서 보호해주는데 제가 졸지에 불법 밀입국자가 돼버린 거죠. 제 여권에 입국 도장이 안찍혀 있는 거잖아요."여기서 차마 웃지 못 할 사실은 수감 당시 그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준 건 한국 정부가 아닌 프랑스 칸영화제 사무국이었다. 2013년 칸영화제에 그의 영화 <돼지>를 상영했어야 했기에 적극적으로 당국에서 구명을 한 것. 생각보다 일찍 태국에서 추방당한 그는 바로 다음 날 칸 영화제 파티에 참석했고, 당시 경험으로 잠시간 그는 혼란에 빠져있어야 했다.
<히치하이커>를 기점으로 그는 다큐멘터리를 놓을 생각을 하고 있다. "준비 중인 다큐 하나가 있는데 그게 아마 마지막이 될 것"이라며 윤 감독이 넌지시 계획을 밝혔다. 덴마크 코펜하겐 영화제의 지원을 받아 만들게 되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