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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BIFF 연다? 부산시에 면죄부
다시 <다이빙벨> 틀라면 나는 튼다"

[단독] 드디어 입 연 이용관 전 BIFF 집행위원장 "이번 합의는 미봉책 아닌 큰 불씨"

16.05.13 15:10최종업데이트16.05.13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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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전 집행위원장이 12일 저녁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가 주최한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 정민규


"집행위원장이라고 하시는데, 저는 '전 집행위원장'입니다."

12일 저녁 만난 이용관 전 부산국제영화제(BIFF) 집행위원장은 호칭부터 정리했다. 지난 20년을 지켜왔던 BIFF와 마치 선을 그으려는 듯, 그는 자신이 '전 집행위원장'임을 강조했다.

그동안 외부 활동을 자제해왔던 이 전 위원장은 이날 저녁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가 주최한 간담회에 참석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그동안 벌어졌던 BIFF 사태에 대해 솔직한 심정을 거침없이 밝혔다. 이 전 위원장이 이번 BIFF 사태 이후 공개적인 발언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전 위원장과의 만남은 밤 늦은 술자리까지 꽤 길게 이어졌다.

최근 부산시와 BIFF 집행위원회는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을 조직위원장에 추대하기로 합의하면서 올해 영화제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일부에서는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으로 촉발됐던 갈등이 해결됐다며 축포를 터트렸다. 지난 9일 서병수 부산시장과 강수연 BIFF 집행위원장이 활짝 웃으며 손 맞잡던 날, 하지만 이용관은 그 자리에 없었다.

"정치적 탄압으로 시작해서 20개월이 됐습니다. 정치적 탄압이란 건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 영화계와 시민사회에서 말한 건데 그 부분은 다 증발했습니다. 저는 (이번 합의가) 거기에 면죄부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정치적 탄압 희석하면서까지 영화제 해야 하나"

서병수 부산시장(오른쪽)과 강수연 부산국제영화제(BIFF) 집행위원장이 9일 오전 부산시청에서 올해 BIFF 개최 합의 내용을 발표하기 앞서 손을 맞잡고 있다. ⓒ 정민규


이 전 위원장은 부산시와 BIFF가 맺은 영화제 개최 합의를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부산시와 BIFF는 영화계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했던 '독립성 확보'는 일단 올해 영화제를 치른 다음인 내년 총회를 통해 논의하자는데 합의한 바 있다.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을 임시로 조직위원장에 앉히자는 것 외에는 별달리 정리된 것은 없다. (관련기사: 부산시-BIFF, 발등의 불만 끈 '미완의 합의')

이 전 위원장은 "정치적 탄압을 희석하면서까지 영화제를 해야 하나"라고 물으며 "영화계에 분열 양상이 벌어지면 어떻게 되겠나"라고 쓴소리를 냈다. 그는 이번 합의를 "미봉책만이 아닌 큰 불씨"라고 표현하며 "절대 영화제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며, 어떤 경우도 (영화제와는) 끝났다고 생각한다"고 강도 높게 말했다.

"(이번 사태가) 제가 의도했든 아니든 <다이빙벨>에서 비롯된 건 확실합니다. 그걸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럼 거기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합니다. 김동호 위원장은 (영화제를) 하면서 어떻게든 또 해나가자는데 저는 그것이 너무 낭만적인 생각인 것 같습니다. 제가 20개월을 겪어보고 밑에서부터 겪었지만, 이게 그렇게 수월치 않은 거 같습니다."

"이렇게까지 독하게, 치졸하게 탄압하는 경우는 처음"

2016 부산국제영화제(BIFF) 정기총회가 지난 2월 25일 오후 부산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서병수 부산시장(왼쪽)이 이용관 BIFF집행위원장이 발언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 정민규


이 위원장은 "김대중 정부부터 4명의 대통령을 겪었지만 외압은 크게 작게 다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게 얼마나 표면화되느냐 정도의 차이였다"고 회고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본격적인 '표면화'가 됐던 건 이명박 정부부터였다. 이 전 위원장은 "MB 정권 초기에 이미 BIFF를 좌파 영화제라 낙인찍어서 다 내쫓으려는 시나리오가 치밀하게 전개됐다"고 말했다.

그는 (수많은 외압이 있었다는) 지난 20년과 최근 20개월을 구분 지어 설명했다. 그만큼 지난 20개월은 그에게 힘든 시간이었다. 이 전 위원장은 "나는 이걸 정치적 탄압이라 생각한다"면서 "정권 차원의 일이라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서병수 시장을 향해서는 "이렇게까지 독하게, 치졸하게 개인감정까지 섞어서 탄압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고 억울한 심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 전 위원장은 "전임 시장들이라고 왜 외압을 받지 않았겠느냐"라면서 "하지만 전임 시장들은 본인들이 그 외압을 막아주었다"고 말했다. 인사말 40초를 넘기지 말아달라는 BIFF 집행위의 요청에 기어이 20초를 더 말해 1분을 채우고 내려와선 "내가 20초만큼 술살게"라고 말했다는 문정수 전 시장의 이야기를 하면서는 "그때는 그때대로 낭만이 있었는데"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전임 시장과 서병수 시장이 분명 달랐다고 했다. 부산시는 시장까지 나선 <다이빙벨> 상영 저지가 먹히지 않자 BIFF에 대한 대대적 감사에 나섰다. 감사원까지 나서 감사를 벌였다. 감사원은 이 전 집행위원장을 고발하라고 요구했고, 부산시는 이를 따랐다. 검찰은 이 전 위원장을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물론 부산시는 이 모든 게 <다이빙벨> 상영과는 상관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때 <다이빙벨> 안 틀었다면 이민 갔어야 했을 것"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전 집행위원장이 12일 저녁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가 주최한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정민규


"저는 그런 걸 몇 번 겪어서 개인 신상털기를 조심해왔고, 이번에도 검찰에 가는 문제를 걱정하지 않았어요. 감사원 감사도 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몇 번 점검했다고 생각하는데 의외의 것이 크게 나오면서 (BIFF가) 도덕적 해이 집단이 됐습니다."

검찰은 이 전 위원장이 사무국장과 공모해 협찬 업체와 허위 중개계약을 한 뒤 수수료 명목으로 2750만 원을 지급했다고 판단하고 이 전 위원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에 대해 이 전 위원장은 "기소 내용을 받아들일 수 없고, 더군다나 공모를 했다는 부분은 인정할 수 없는 만큼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겠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검찰, BIFF 전 위원장 기소... 영화계 "정치적 탄압" 반발)

마음 한편에서 그는 자신과 함께 법정에 서게 된 전·현직 BIFF 관계자들에게 미안함을 갖고 있었다. 이 전 위원장은 "나만 물러나면 된다는 소리가 들려올 때 그만뒀으면 다른 사람들은 괜찮았을 거란 생각 때문에 힘들었다"고 말했다.

혹시라도 상황을 돌려 2014년 영화 <다이빙벨>을 틀어야 하는 그 날로 돌아간다면? 그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 궁금했다.

"<다이빙벨>을 안 틀었다면 전 이민을 갔어야 했을 겁니다. 다시 <다이빙벨>을 틀라고 하면 저는 틉니다. 그건 제가 트는 게 아니라 프로그래머가 트는 것이고, 프로그래머에게 틀지 말라고 하면 검열이 됩니다. 외부보다 심한 게 내부검열이고, 내부보다 심한 게 자기검열이거든요. 저는 이민 안 가고, 자식들이 손가락질 받지 않는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이용관 B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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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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