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소리> 포스터"미친 소리 같겠지만, 이 녀석이 제 딸을 찾아줄 것 같습니다". 영화 <로봇, 소리>는 어느 날 우연히 만나게 된 로봇과 함께 좌충우돌 이야기를 겪게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은주
'I NEED TO FIND HER'해관이 모래사장에서 로봇을 발견했을 때 로봇이 처음으로 내보인 문자였다. 로봇은 아프가니스탄의 민간지역 폭격으로 위험에 빠진 소녀의 통화를 듣고 나서 그녀를 찾고 있었다. 딸을 찾고 싶어 하는 해관과 같은 생각이다. 해관은 이 로봇을 '운명공동체'라고 생각했다. 로봇을 조수석에 태우고, 휠체어로 끌고 다니며 딸 유주의 목소리가 있는 공간을 추적한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바람에 후드 집업도 입혀주었다.
해관은 로봇에게 '소리'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이름의 뜻처럼 이 세상 모든 소리를 기억한다는 것. 해관이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단지 알파벳과 숫자로 조합된 '제품명'에 불과했던 소리는 비로소 하나의 존재로 규정된다. 김춘수 시인의 <꽃>의 구절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꽃>의 한 구절)소리는 해관에게 딸과의 관계를 자각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여느 평범한 가정처럼 그는 엄격한 아버지였고 유주는 자유롭고 싶은 딸이었다. 해관은 유주가 험난한 길 대신 꽃길만 걷길 바랐다. 착하고 얌전한 딸, 유주였으니까. 그러나 딸이 자신의 바람을 거역하고 남몰래 기타 치는 양아치 무리들과 어울리는 것을 알고 불같이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 날로 해관은 유주를 대구로 무작정 끌고 오고 꿈을 접도록 했다. 유주는 "자신의 말을 들어주려고 하긴 했냐"며 눈물을 흘렸지만 해관은 "그러는 너는 내 말을 들었냐. 아빠 말만 들으라고 했잖아"라고 받아쳤다. 두 사람은 차 안에서 고함을 치며 서로에게 상처를 입혔다. 해관은 홧김에 길 한 가운데 차를 세우고 유주에게 내리라고 했다. 그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이었다.
해관은 소리의 도움으로 그 당시 유주를 가장 잘 알고 있던 사람들을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딸의 진심을 들었다. 딸의 진짜 꿈, 속마음, 아빠를 향한 애정까지…. 유주는 노래를 하고 싶어 했다. 세상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노래를 들려주는 것이 유일한 꿈이었다. 해관은 딸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던 자신을 원망했다. 하지만 해관이 마음의 '소리'를 듣게 되었을 때에는 이미 늦었다. 유주는 2003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에 있었다. 몸이 타들어갈 것 같은 화염의 고통 속에서도 유주가 마지막 통화를 건 것은 바로 아빠였다. "사랑한다고, 미안하다고…" 딸의 소리를 너무 늦게 알아버린 아빠는 사고가 있었던 희생자 추모 철도에서 12년 뒤에야 그 말을 할 수 있었다.
해관은 더 늦기 전에 소리가 찾고 있는 그녀에게 소리를 보내주기로 한다. 소리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된 미국 NASA와 소리를 중간에서 차지해 고급정보를 빼내려는 한국의 국정원의 공작 속에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해관은 소리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사투를 벌인다. 로봇, 소리는 과연 아프가니스탄 소녀의 '소리'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소리의 마지막 여정을 그리며 영화는 끝이 난다.
로봇과 인간은 공존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