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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로봇과 노인,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그들

[리뷰] 영화 <로봇, 소리>와 <유스>... 영화의 힘이란 이런 것

16.01.28 15:30최종업데이트16.01.2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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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스>의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


최근 개봉한 영화 <로봇, 소리>와 외화 <유스>의 상상력과 전략이 발칙하다. 장르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서로 다르지만, 관객에게 익숙하지 않은 소재는 비틀고, 메시지는 적절하게 감췄다는 점에서 그렇다.

우선 <로봇, 소리>. 영화는 인공지능 위성 로봇과 딸을 잃은 아빠 해관(이성민 분)이 교감하며 함께 자신의 목표를 이뤄나가는 과정을 그렸다. 해관은 딸의 꿈과 바람을 애써 무시한 가부장적 인물로 자신 때문에 딸이 실종됐다는 죄책감을 안고 사는 인물이다. 10년 동안 그의 행방을 찾았다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 와중에 우연히 대한민국에 불시착한 위성 로봇을 만나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는 일단 해관의 딸을 향한 애틋한 마음, 즉 부성애에 기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반적으로 관객들이 공감할 지점을 영리하게 전면에 세워놓았다. 자신이 소리라고 이름 붙인 로봇을 이용해 딸을 만나려 각종 위기를 돌파하는 가장의 모습은 그 자체로 애잔하면서도 감동적으로 다가올 만하다.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영화 <로봇, 소리>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단지 이것뿐이라면 <로봇, 소리>는 그저 소재만 신선한 흔한 신파 영화에 그칠 것이다. 좀 더 나아갔다. 영화의 전략이 영리하다 말할 수 있는 지점은 바로 가족 코드 안에 진짜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살짝 가려 놓았다는 데 있다.

소리는 미국국가안전보장국 NSA의 산물이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감청하는 정보 로봇으로 미국패권주의에 일조하는 일종의 군사전략 무기기도 하다. 인간들의 전쟁에 자신이 이용당하고 있음을 안 그가 택한 건 자신의 궤도를 벗어나 불시착하기였다. 해관을 도우면서도 소리는 끊임없이 외친다. "난 그 소녀를 찾아야 해"라고.

영화 <로봇, 소리>의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자신이 제공한 정보로 이슬람 국가의 한 마을에 폭격이 가해졌고, 무고한 소년이 희생당했다는 사실에 소리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간다. 한국 국가정보원과 NSA의 속셈은 소리를 회수해 정보를 백업한 뒤 그를 폐기하는 것인데,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는 자신의 길을 간다.

사실 묵직한 감동을 전하는 건 이 부분이다. 영화는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인간들의 모습과 함께 무표정한 소리가 목소리로 자기 생각과 마음을 전하는 걸 대비시킨다. 딸에 대한 해관의 애틋함도 물론 충분히 울림이 있지만 한 소녀에 대한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은 과연 인간다움이라는 게 무엇인지 되묻게 한다. 해관이 딸을 찾아 헤맸다면, 어쩌면 소리는 인간이 잃어버린 인간성을 찾아 떠난 셈이다.

노인이 꿈꾸는 미래는?

영화 <유스>의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


그리고 여기 몇 명의 노인들이 있다. 그냥 노인들이 아니다. 젊었을 적 전 세계 대중들을 사로잡았던 음악가와 영화감독, 그리고 축구선수 등이다. 스위스의 고급 리조트에서 하루하루 보내며 요양하거나 작품을 구상하는 이들은 분명 영화적으로 매력적인 캐릭터는 아니다.

<유스>라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노인들이 말하는 진짜 젊음이 이 작품의 주제로 생각할 수 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거장 지휘자 프레드 벨린저(마이클 케인 분)와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유명 감독 믹(하비 케이틀 분)은 과거의 영광을 회상하긴 하지만 거기에 갇히지 않는다. 오히려 벨린저는 영국 여왕의 공연 요청에도 "개인적인 이유로 하기 어렵다"며 거절해버리는 강단을 보인다. 스타 여배우를 탄생시켜온 믹 또한 "내가 지금 만들고 있는 작품이 인생의 역작이 될 것"이라며 자신만만해 한다. 이 호기로운 노인들 곁으로 이미 퇴물이 된 마라도나 등이 다가와 가벼운 대화를 나누곤 한다.

<유스> 역시 대비 효과를 의식한듯하다. 노인들을 응대하고 수발하는 젊은 리조트 직원들과 대회 우승 기념으로 놀러 오게 된 미스 유니버스 여인은 그 자체로 청춘과 미의 상징이다. 특별한 장치 없이도 노인과 청년들이 교차하는 모습은 충분히 관객에게 젊음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한다.

영화 <유스>의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


다만 완벽한 대비는 아니다. 벨린저를 통해 영화는 이 뛰어난 지휘자가 왜 영국 여왕의 영광스러운 요청을 거절했는지 서서히 설명해나간다. 믹을 통해서는 그가 꿈꿨던 작품세계와 그것을 부정하는 세상을 향한 일갈을 묘사한다. 궁금증이 일어 "할아버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사세요"라고 질문을 던진 한 소년에게 마라도나는 "미래를 꿈꾸고 있다"고 답한다. 노인이 꿈꾸는 미래라니. 오히려 이들 틈에서 자기 일을 묵묵히 하는 청춘들이 정적으로 보일 정도다.

<유스>의 대사 하나를 전한다.

"모든 인간은 아름답거나 추해.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귀엽거나."

삶의 끝자락에 왔으니 노인이라 칭할 수 있을지언정, 어느 누구도 이들의 삶을 추하다고 하진 못할 것이다. 단순히 젊음에 대한 교훈을 전하는 게 아니다. <유스>는 바로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인간을 돌아보는 영화 <로봇, 소리>와 <유스>가 상영 중이다. 게다가 두 영화 모두 거대 예산 규모의 상업 영화 틈에서 선전 중이다. 45억 원의 제작비로 SF와 가족감성, 휴머니즘 고찰에까지 나아간 <로봇, 소리>는 분명 수작이다. <유스> 역시 두말할 것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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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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