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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명동, 폐허 속에 피어난 낭만과 예술혼

[리뷰] 연말연시에 어울리는 소극장 뮤지컬 <명동 로망스>

15.12.28 16:52최종업데이트15.12.2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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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크리스마스이브, 가족과 함께 서울 중구의 충무아트홀에서 뮤지컬 <명동 로망스>를 관람했다. 1956년 명동의 로망스 다방. 그리고 그곳을 드나드는 예술가들의 이야기라고 해서 처음에는 낭만의 정서가 남아있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우리 부부만 볼 예정이었다. 하지만 초·중학생도 관람이 가능하다고 해서 중3 아들도 함께했다.

뮤지컬 <명동 로망스>는 1950년대의 우울하고 음습한 예술가들의 명동에서의 추억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희극을 보는 것처럼 웃기기도 하고, 부모님 세대의 오랜 기억을 되새기게 하는 추억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중장년층에게 수요가 있을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는 20~30대 젊은 관객들이 많았다. <명동 로망스>의 시작은 생각보다 단순했고 웃겼다.

2015년에서 1956년으로의 시간 여행

▲ 뮤지컬 <명동로망스> 포스터 서울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에서 지난 10월 20일 막을 올린 뮤지컬 <명동로망스>의 포스터. ⓒ (주)장인엔터테인먼트


2015년 명동 주민센터에서 일하는 신참 공무원 장선호가 어느 날 시간 여행을 통하여 1956년 명동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가듯 이동해 간다. 이 설정만으로도 충분히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말단 공무원 선호는 오랜 노력으로 남들이 전부 부러워하는 행정공무원이 된다.

하지만 생각보다 직장생활은 박봉에 격무까지 정말 별로 재미도 없는 반복의 연속이다. 어느 날 선호는 선임의 지시로 명동 개발에 방해가 되던 오래된 다방 철거와 관련하여 동의서류를 받기 위해 낡고 허름한 로망스 다방을 찾는다.

그곳에서 선호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무려 60년을 거슬러 1956년 명동 한복판에 있는 다방 명동 로망스로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이 다방에서 당대 최고의 화가인 이중섭, 모더니스트 박인환 시인, 서울대 법대생으로 작가를 꿈꾸는 여대생 전혜린 등을 만나게 된다.

곰곰이 바라보고 있자면, 공연장의 15도쯤 기울어진 무대는 2015년과 1956년을 오가는 선호의 모습과 시대와 세상 및 공간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장치처럼 보인다. 어쩌면 평범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던 선호의 삶은 마치 기울어진 무대장치처럼 역동적으로 예측할 수 없게 전개된다.

사실 1956년의 명동은 전후 사람들 사이에 팽배해 있던 허무주의와 폐허 속에서도 피어나는 예술혼이라는 또 다른 낭만이 묘하게 교차하던 곳이다.

정말 재미있게도 1956년 명동의 로망스 다방을 출입하는 이중섭, 박인환, 전혜린 등의 예술가들에게는 나름 작은 희망도 있고, 낭만도 있었다. 반면 미래인 2015년에서 온 안정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다니고 있는 공무원 선호는 별다른 재미도 희망도 없어 보이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소시민들의 삶은 세월이 60년을 흘렀지만, 조금도 바뀐 것이 없는 듯하다. 다들 우울하고, 별로 희망도 없고, 허무하고 음습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무언가에 희망이나 미래의 끈을 잡고 나아가고 있는 모습도 비슷해 보인다.

여기에 최선을 다해 새로운 미래를 만들려는 의지도 있고, 나름으로 열심히 살면서 자신과 가족, 나라의 미래를 멋지게 만들어 가려는 고민도 있는 사람들이다.

화려한 무대연출, 풍부한 아날로그 감성

극을 시작하며 얼마 되지 않아 우리나라 최초 자동차인 '시발자동차'에 대한 노래는 어린 관객들까지도 웃게 하여 이 극이 B급 유머를 곁들인 희극 뮤지컬임을 알리고 있다. 이어 우리나라 최초의 패션쇼를 열었던 의상디자이너 노라노의 깜짝 등장이나 1950년대를 연상하게 하는 무대 장치와 복장 및 액자 등은 중장년층의 추억을 다시 생각하게 하게 한다.

아울러 예전 커피콩을 주전자에 넣어 끓여 내던 다방 커피나, 통금에 걸려 경찰서에서 하룻밤을 보낸 추억들도 재미있게 등장한다. 또한, 선호가 미래에서 왔다는 말에도 놀라기보다 흥미로워하는 명동 사람들은 현재로 돌아갈 길을 찾으며 로망스 다방에 머물게 된 선호를 찾아와 미래에 관해 묻기도 한다.

어느 날 2015년 방식으로 커피를 갈아 원두를 걸러 내리는 것을 선보인 선호는 그 위에 우유를 붓고는 그림을 그린 덕분에 화가로까지 인정받게 된다. 또한, 다방의 예술가 중 가족들과 살기 위해 그림을 그만두겠다는 화가가 바로 이중섭임을 알게 된 선호는 위대한 화가로 남을 중섭의 미래를 얘기해 주기도 한다.

하지만 중섭은 가족에 대한 책임과 그리움에도 그림을 놓지 못하고 꿈을 꾸는 자신의 모습에 괴로워한다. 중섭의 고통스러운 고백과 지금 이 순간을 뜨겁게 살아야 한다는 전혜린의 기습키스는 별로 바라는 것 없이 잔잔하던 선호의 마음을 뒤흔든다.

안타깝게도 경찰은 미래에서 왔다고 소문난 선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지만 선호는 많은 사람 앞에서 경찰이 지시한 말 대신 자신이 바라는 세상에 대한 선동적인 말을 해버리고, 선호와 로망스 다방의 예술가들은 경찰서로 끌려가 조사를 받게 된다.

이 작품은 한예종 출신으로 뮤지컬 배우이기도 했던 장인엔터테인먼트의 장재용 감독이 제작했다. 뮤지컬 <파리넬리>와 <헤드윅> 등의 흥행작을 연출한 김민정 연출과 뮤지컬 <베르테르>, <풍월주>에서 서정적인 곡들을 만들어낸 구소영 음악감독이 함께했다.

극장 입구에서 우연히 만난 장재용 감독은 "공연장이 소극장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무대연출을 볼 수 있고, 풍부한 아날로그 감성을 느낄 수 있게 전문가들이 참여했다"라며" 1956년을 가볍지도 혹은 무겁지도 않게 다룬 덕분에 중장년층 관객도 많지만, 아무래도 희극적인 요소가 있고, 청소년들도 관람이 가능한 뮤지컬이라 가족단위 손님들이 많이 몰리고 있다"라고 했다.

등장하는 배우들도 나름 대단하다. 미치광이처럼 신들린 연기를 선보이며 화가 이중섭을 연기하는 박호산을 중심으로, 뮤지컬 <사의 찬미>에서 주인공 윤심덕을 너무나 잘 그렸던 안유진이 수필가 전혜린으로 등장한다. 이 외에도 이중섭 역에 김준원, 지현준이나 시인 박인환에 원종환, 윤석원 그리고 장선호 역에 배두훈, 고상훈 등 역량 있는 배우들이 두루 출연한다.

뮤지컬 <명동 로망스>는 연말 및 2016년 새해에 가족과 연인은 물론 회사 동료들과 함께 관람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 작품이다. 2016년 1월 3일까지 서울 충무아트홀에서 공연된다.

명동 로망스 1956년 명동 이중섭 박인환 충무아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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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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