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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 산 여자', 김슬기의 고백

[인터뷰] tvN <오 나의 귀신님> 김슬기 "신순애 미워한 시청자들, 그조차 감사했다"

15.09.10 10:15최종업데이트15.09.10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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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드라마 <오 나의 귀신>에서 처녀귀신 신순애 역의 배우 김슬기가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tvN드라마 <오 나의 귀신>에서 처녀귀신 신순애 역의 배우 김슬기가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이정민

배우 김슬기는 '죽어서 산 여자'다. tvN <오 나의 귀신님> 속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고 구천을 떠도는 처녀귀신 신순애는 빨간 텔레토비 옷을 입고 욕을 쏟아내던 과거 예능 프로그램 속 그의 모습을 지우기에 충분했다. 귀신이라는 설정 때문에 16회 내내 단 한 벌의 의상만 입어야 했던 데다 여배우의 특권이라는 반사판도 쓸 수 없었지만, 신순애는 그를 '국민 욕동생' 정도로만 기억했던 이들에게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이 됐다.

지난달 28일 만난 김슬기는 신순애의 여운에 젖어 있었다. 극 후반 신순애는 나봉선(박보영 분)을 떠나며 "살아있는 동안 마음껏 사랑하라"고 했다. 떠난 신순애를 추억하며 무당 서빙고(이정은 분)도 "사람이 언제 죽을지 미리 알고서 이별하면 얼마냐 좋겠냐마는 그럴 수 없으니까 인생이다, 그러니까 하루하루 소중하게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했다. "이 대사들이 내 인생 모토와 똑같아 전달하며 뿌듯했다"고 입을 연 그는 "원래 갖고 있는 가치관이었지만 신순애는 이를 한 번 더 되새기게 했다"고 말했다.

"'신순애의 행동들에 대한 설명이 더 나오면 좋지 않았겠느냐'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저는 아쉬운 게 하나도 없어요. 작가님께서 순애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딱, 완벽하게 써 주셨다고 생각했거든요. 결말의 방향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말의 걱정이나 조바심도 없었고요. 당연히 강선우(조정석 분)는 나봉선과 잘 될 거라고 생각하며 연기했거든요.

물론 순애가 선우에게 감정을 느끼며 혼란스러워하는 부분에서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인 분들을 보며 '내가 좀 더 세심하게 표현해야 했나' 싶었어요. 남은 부분은 더 잘 표현해야겠다는 의무감도 들었죠. 하지만 다행히 드라마가 산을 타지는 않았다는 거! (웃음) (시청자의 반응은) 작가님이 그만큼 교묘하게 써 주신 거고, 시청자 분들도 집중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그래서 다 감사했어요. 정말로 <오 나의 귀신님>을 아껴주시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학생 1'이 주연 배우 되기까지

이정민

MBC <무한도전>이 2011년 세계에 비빔밥을 알리려 찍은 30초짜리 CF에, MBC <넌 내게 반했어>(2011) 속 예술을 향한 열망으로 가득 찬 대학생들 틈에, 김슬기는 스치듯 등장했다. 정식으로 데뷔하기 전의 일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슬기는 학자금 대출을 걱정하는 서울예대 재학생이었다.

시간이 흘러 드라마에서 두 손을 모으고 "나도 배우가 되고 싶다!"고 외쳤던 '학생 1', 김슬기는 정말 배우가 됐다. 일은 술술 풀려갔다. 14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국제시장>의 끝순이도, 역시 8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한 영화 <수상한 그녀>의 철없는 손녀 반하나도, 고 김광석의 노래를 소재로 한 뮤지컬 <디셈버>의 일편단심 여일이도 다 김슬기의 또 다른 얼굴이다. 그간 걱정하던 학자금 대출도 제 힘으로 모두 갚았다.

"다 좋은 사람들을 만난 덕분이죠. 사람을 잘 만나는 건 커다란 복이잖아요. 그리고 제가 성장하는 시기에 있는 덕분인 것 같기도 해요. 물론 이 과정을 잘 해내고 있는 건 스스로를 칭찬할 부분이긴 하겠지만... 운이 좋다는 것, 좋은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에 늘 감사해 하고 있어요. 또 그만큼 무언가 세상에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게 무엇인지는 차차 찾아가야겠지만요."

다음 작품은 비인기종목인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국가대표2>다. "(작품 속에서) 그동안 짝사랑만 했으니 이번엔 누군가와 사랑을 함께 하고 싶다"고 푸념을 늘어놓으면서도, 김슬기는 "일복이 터졌다"며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이번에도 연기의 신이 나를 보호해주길 기도해야겠다"며 "그래도 막상 (촬영이) 닥치면 또 잠깐 미칠 거다"라며 웃어 보이기도 했다. 자신을 던져 사람들을 웃고 울게 만드는 작품의 일부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그가 생각하는 '세상에 돌려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땐 항상 '이게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으로 연기해야 했어요. 열심히 촬영하면서도 그런 생각이 한편엔 있었죠. 그러면서도 또 작품이 세상에 나오면 그게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어요. 또 감사하게도 좋은 작품이 계속 들어와 줬죠. 그 덕분에 '이번만 참자' '이번만 견디자'는 생각으로 오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네요. 스스로 점수를 매긴다면요? 99점이요. 나머지 1점에 제가 갖고 있는 부족한 것들을 다 욱여넣을래요. (웃음)"

늘 '사직서'를 품고 연기한다, 하지만...

이정민

"'내 안에 아직도 다 꺼내지 못한 게 많이 있으니 기대해 달라'고 말하고 싶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번엔 운이 좋아 잘 된 건데 다음번엔 또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공존해요. 제가 발붙이고 살아가는 이 세계에 여전히 적응해 가는 중인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늘 마음속에 '사직서'를 품고 살아요. 왜, 다들 직장에 사직서를 써놓고 서랍에 두고 다닌다고 하잖아요. (웃음)" 

일이 술술 풀렸다고 해서 그의 마음이 늘 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예능 프로그램으로 높은 인지도를 얻었지만, 프로그램의 후광 없이 홀로 설 수 있을지 고민하기도 했다.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지만 목적을 잃은 채 바삐 다니기만 하는 것 같다는 자괴감에도 빠졌다. 고민 끝에 이 든든한 울타리를 떠난 뒤, 잠시 소식이 뜸해진 때도 있었다. 김슬기는 "갑자기 주마등처럼 예전의 기억이 지나갔다"며 잠시 먼 곳을 바라봤다.

힘들었던 마음을 다독여준 건 스스로를 대견하다 느낀 점을 적어 놓은 칭찬 노트, 그리고 식상한 표현이지만 '팬들의 사랑'이었다.

한아름의 과자와 함께 익숙하지 않은 한글로 정성껏 눌러 쓴 손편지를 보내 준 한 대만 팬의 이야기를 꺼내며 그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배우로서 잠시 삐끗한다고 내 인생 전체가 무너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면서도, 김슬기는 "내려놓을 시기가 온다면 또 언제든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들이 있어 지금은 열심히 올라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한번은 칭찬 노트에 팬 분들이 주신 마음에 보답하는 방법을 적어 봤어요. 1번은 도망가지 않는 것, 그러니까 제가 배우로서 남아 있는 것이었어요. 2번은 겸손한 자세로 임하는 것이었어요. 이 글귀들을 들여다보며 견딜 수 있는 순간들도 있었죠. 성격 탓에 팬 분들과 직접적으로 잘 소통하지는 못하고 있어요. 하지만 팬 분들의 마음에 늘 감동받고 있고 감사해 하고 있고 또 그것이 제가 배우로서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라는 걸,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김슬기 오 나의 귀신님 무한도전 SNL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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