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스타가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민
지난 2014년 3월. 그룹 빅스타(필독 바람 래환 성학 주드)는 일본으로 향했다. 3개월간 일본에 머물며 <빅스타 라이브 이벤트 인 재팬>이라는 이름으로 100회 공연을 진행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과거 일본에 진출했던 아이돌 그룹은 한류스타로 우뚝 섰지만, 이런 이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일본의 K-POP 팬들이 자국을 자주 찾는 한국 가수들에 관심을 보이는 시대는 지났다. 빅스타가 받아든 성적표도 그랬다. 1회 공연의 관객은 34명에 불과했다.
어쩌면 이들은 처음부터 맨땅에 헤딩한 것인지도 모른다. 현지 팬들과 무리 없이 소통할 수 있는 일본어 실력을 갖춘 것도 아니었고, 100회라는 만만치 않은 공연을 이끌어가기에는 지금까지 발표한 곡도 한정적이었다. 그야말로 "밑바닥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빅스타는 투정부릴 새도 없었다. 매회 콘셉트나 테마를 바꿔서 공연하려고 연습을 거듭했다. 관객을 모으기 위해 거리 홍보에도 나섰다. 그러는 사이 3개월 예정이었던 체류 일정은 어느덧 7개월째에 접어들었다.
힘들수록 멤버들은 더욱 똘똘 뭉쳤다. 서로 의지하며 버텼다. 처음엔 200석 규모의 공연장을 보고 '이걸 다 채울 수 있을까' 싶었지만 관객은 꾸준히 늘었다. 일본 팬뿐만 아니라 미국 팬들도 이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공연장을 찾았다. 빅스타는 어느날부터 '이런 속도라면 곧 좌석을 다 빼고 스탠딩으로 공연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 마지막 100회 공연의 관객은 1500여 명에 달했다. 늘어난 관객과 함께 빅스타의 자신감도 늘었다.
일본으로 향할 때는 일말의 불안감도 있었지만, 돌아올 때는 뿌듯한 마음이었다. '이제 돌아가면 바로 새 앨범을 내겠지' 하는 기대감이 컸다. 그러나 소속사(브레이브엔터테인먼트) 후배인 원펀치가 데뷔를 준비하고 있었다. 공백이 길어질수록 조바심이 났다. "남들은 1년 공백도 길다고 하는데 우리는 2년째였기 때문"이라는 것이 빅스타의 설명이었다. '여기서 이렇게 기다릴 거면 일본에서 공연 좀 더 하다 올걸'이라는 생각에 회사를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마음에 쏙 드는 신곡 '달빛소나타'를 만났다.
"지금까지 쉬었으니 더 쉬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