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만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은 "코딱지들이 힘들었던 만큼 부모들도 힘들었다"며 "서로 힘드니 말을 잘 안 하잖아요. 그 벽을 허물고 공감대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유성호
- 선생님에 대한 관심, 왜 이렇게 높은 걸까요. 혹시 생각해 보신 적 있는지요."평가라는 것, 내가 날 평가하는 게 아니라 남이 날 하는 거잖아요. 긍정적으로 봐요. 정치하는 사람이나 엄마, 아빠가 얘기 안 했던 걸 제가 했다는 거에 자부심은 있어요. 그리고 이 나이까지 살면서 그렇게 큰 감동 받은 적이 없었어요. 집사람과 결혼한 것과 애 낳은 거 빼고. 근데 나만 누릴 수 있는 특권으로 이런 큰 감동을 받았어요. 이 정도에서 만족하지 더 바라는 거 없어요.
또 코딱지 세대(2, 30대)들하고 대화했다는 거! 누가 제 나이에 이들과 이렇게 대화할 수 있겠어요. 교수도 정치인들도 혹은 아빠 엄마들도 쉽지 않거든요. 친구처럼 공감대가 생겼고, 그 속에서 그들의 현실을 봤어요. 많이 느꼈고 그게 감동이에요. 그 분들이 감동 받았다고 하는데 제가 더 많이 받았어요. 이건 죽을 때까지 간직할 감정이에요. 이건 돈 주고도 못 사. 단 하루 이틀 만에 벌어진 일인데. 기네스북에 올라갈 걸요? 단 하루 이틀에 이런 감동 얻는 거."
- 존경받는 어른들이 점점 사라져가는 시대예요. 이런 관심이 분명 하나의 분기점일 수 있는데 우리 '영맨'(<마리텔>에서 김영만의 별칭)님은 어떤 마음으로 사셨고, 살아 가실지요."내 이름이 영만이잖아요! 전에 미국 갔을 때예요. 지금은 입국 심사가 수월해졌지만 예전에는 엄청 깐깐하게 봤거든. 영문으로 Young-Man인데 얼굴은 늙어 보이니 계속 물어보는 거예요. 진짜 이름이냐고. (웃음) 아버지가 지어준 이 이름대로 살아야죠. 올드맨보다 영맨이 더 좋지 않아요?
사실 <마리텔> 처음에 작가님이 별명을 정하라고 해서 그 뭐냐 마법사 간달프 있잖아요. 그거 따와서 '김달프'로 할까 했어. 근데 같이 구경 온 재단 직원들이 영맨 하라고 해서 이리 됐지요.(웃음) 참 그리고 우리 코딱지들. 여러분이 힘들었던 만큼 부모들도 힘들었어요. 서로 힘드니 말을 잘 안 하잖아. 그 벽을 허물고 한 번 부모님께 가까이 가 봐요. 공감대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어요."
영맨과 함께 한 3분의 종이접기인터뷰 말미. 우리 코딱지들을 대변해서 '이성의 마음을 혹할 수 있는 종이접기'를 알려 달라 부탁드렸다. 27년 된 선생님의 가위가 이리저리 움직일 걸 잠시 상상하며 숨을 고르는데 마음을 들켰다.
"쉬운 거야! 가위질 안 하는 걸로 해요!" "어이구! 잘 하네~! 이건 손톱보다 조금 작게 접어~" 약 3분 후 어느 새 완성된 건 엄마 공룡과 아기 공룡이었다. 차라리 여자친구를 접어달라고 할 걸. 이성의 마음을 사는 건 틀렸다! 하지만 얻은 건 따로 있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지긋이 바라봐 주고 응원하며 이끌어 준 선생이 있었다는 사실.
인터뷰 후 작별인사를 하는 취재진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우리 영맨은 한 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 한 번 더 고개 숙여 인사하자, 그가 손 흔들며 환히 웃어 보였다.
[인터뷰 1] '마리텔' 김영만 "내 말에 감동? 미안했다 나는"[인터뷰 2] 친구 주식 반토막 안 났다면, 종이접기 선생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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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