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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도 AOA 팬이 될 수 있을까

[이현진의 팔로우] AOA 팬클럽 도전기① 삼촌팬들의 울부짖음 사이에서

15.06.30 17:39최종업데이트15.06.30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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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일주일 따라 다녀보면 어떨까', 이 질문으로부터 '팔로우'는 시작됐습니다. 이왕이면 평소 관심 있게 지켜보던 남자 연예인을 뒤쫓고 싶은 바람이 개인적으로 없지 않지만, 코너 이름이 '스토커'로 변질되는 일이 없도록 사람, 사물, 현상을 가리지 않고 '팔로우'하겠습니다. [편집자말]
"제가 10살 많네요. 누나라고 부르셔도 돼요.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만나서 나누죠."

인터넷에서 알게 된 남자 Y군과 처음 만나기로 했다. 무려 20대의 연하 소개팅남과 주고받은 메시지, 라고 엄마는 믿고 싶겠지만 그의 닉네임은 다른 여자의 향기가 물씬 느껴지는 '○○설현'. 우리는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이스 오브 엔젤', 천사들 중에서도 으뜸이라는 이름의 걸그룹 AOA다. 나는 일주일간 엘비스(ELVIS, AOA 팬클럽명)가 되기로 했다.

사실 그 뜻을 안 게 얼마 전일 정도로 나는 AOA를 잘 모른다. '아오아'라고 읽지 않은 게 다행이랄까. '하이파이브 오브 틴에이저' H.O.T 오빠들을 '핫'이라 불렀다고 욕했던 어른들을 이해하기까지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셈이다. H.O.T에게 에쵸티, 쵸티 같은 애칭이 있었던 것처럼 AOA를 한글 자판으로 썼을 때 나타나는 글자 '맴'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 AOA, 사랑넘치는 하트천국 AOA가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CGV에서 열린 MBC뮤직 < AOA의 어느 멋진 날 >제작발표회에서 하트를 만들며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AOA의 어느 멋진 날 >은 중국으로 일주일간 휴가를 떠난 AOA 멤버들의 좌충우돌 여행기를 공개하는 셀프 여행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13일 오후 1시 첫 방송. ⓒ 이정민


공부가 더 필요했다. 내가 정확히 아는 AOA 멤버는 예능과 드라마에 출연해 낯이 익었던 지민, 초아, 설현밖에 없었다. 모두 8명이지만 드러머 유경은 댄스곡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귀에 익은 노래는 이들을 널리 알린 '짧은 치마'와 '단발머리' '사뿐사뿐' 정도. 6월 22일 컴백 전까지는 과거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시청각자료 삼아 멜로디와 얼굴을 익히기로 했다. 그런데 출퇴근 지하철에서 섹시한 그들의 춤사위를 반복감상하고 있자니 어쩐지 부끄러워져 좌석을 포기하고 구석진 곳에 숨어 휴대폰을 가렸다.

말로만 듣던 삼촌팬의 클래스 "AOA 보려면 벌어야죠"

22일 드디어 컴백이다. 학창시절 성적표를 받던 심정으로 각종 음원사이트 차트를 열어봤다. 오전 12시 공개된 AOA 신곡 '심쿵해'가 정상에 오른 것을 확인한 후 쇼케이스가 열리는 서울 광장동의 공연장 악스코리아로 향했다. 오후 6시 시작이지만 정오가 지나자 대포(큰 망원렌즈를 장착한 DSLR)를 짊어진 팬들이 모여들었다.

내겐 카메라보다 생존물품이 중요했다. 땡볕에 장시간 기다리기 위한 양산, 마스크, 물병과 당이 떨어질 때를 대비한 간식을 챙겼다. 언론 쇼케이스를 마다하고 굳이 줄을 서서 들어가겠다니 소속사 관계자는 왜 힘든 길을 가려 하느냐며 만류했지만, 나 역시 십 수 년 전 좋아하던 그룹을 한 발짝이라도 가까이서 보겠다고 한겨울 새벽길에서 신문지 좀 덮어봤던지라 각오는 돼 있었다.

지난 22일 서울 광장동 악스코리아에서 열린 AOA의 세 번째 미니앨범 <하트 어택> 발매 쇼케이스에 입장하기 위해 팬들이 줄을 서고 있다. ⓒ 이현진


만반의 준비를 하고 만난 Y군과 다른 팬들은 시원한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아주 여유롭게 대기하고 있었다. 카페 옆에 차를 주차하고 온 30대 남자 팬은 내게 "지하철 타고 오셨어요? 먼 데서 고생하셨네요"라고 말을 붙였다. 회사엔 휴가를 냈다며 "AOA 보러 다니려면 열심히 벌어야죠"라고 웃는 그들에게서 말로만 듣던 '삼촌팬'의 클래스가 느껴졌다.

팬들의 연령대는 다양했다. 교복을 입고 온 학생들부터, 진짜 내 삼촌뻘이 돼 보이는 분들도 계셨다. 의외로 여성 팬도 꽤 있었다. 남녀노소 불문,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장하는 이 특별한 집단 앞에서 멤버들은 편해 보였다. 8개월 만에 함께 활동하는 AOA, 잊지 않고 찾아준 팬들에 대한 반가움과 감사함으로 울컥한 설현과 혜정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울지마! 울지마!" 언론 쇼케이스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데시벨의 울부짖음, 온몸으로 하트를 만들어 날리는 격한 몸짓들. 그저 팬 코스프레 중인 내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어떤 진심들이 오가고 있었다.

▲ AOA, 걸그룹대전 출정식! 걸그룹 AOA가 22일 오후 서울 광장동 악스코리아에서 열린 세번째 미니 앨범 <하트 어택(Heart Attack)> 발매 쇼케이스 및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며 신곡을 소개하고 있다. 7개월 만에 컴백하며 라크로스 선수로 변신한 AOA 멤버들은 이성에게 첫 눈에 반한 여성의 설레는 마음을 '심쿵'이라는 신조어로 풀어낸 타이틀곡 '심쿵해'를 통해 섹시하면서도 건강한 매력을 담은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 이정민


AOA라고 적힌 슬로건을 만 원 주고 사다

"이번에 '오프' 얼마나 뛰실 거예요? 저는 '공방' 보고 싶은데 경쟁 치열하다고 해서 '사녹' 가려고요. '팬싸'도 꼭 됐으면 좋겠는데."

뭔가 전문용어 같은 말들을 내뱉고 나는 새삼 뿌듯해졌다. 비록 코스프레지만, 이 세계에 발을 들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프를 뛴다'는 건 인터넷 같은 온라인상이 아닌 오프라인에서의 팬 활동을 의미한다. '공방'과 '사녹'은 각각 음악 프로그램의 공개방송과 사전녹화의 준말이고, '팬싸'는 예상대로 팬사인회다.

▲ AOA,건강하게 여름 공략! 걸그룹 AOA가 22일 오후 서울 광장동 악스코리아에서 열린 세번째 미니 앨범 <하트 어택(Heart Attack)> 발매 쇼케이스 및 기자간담회에서 타이틀곡 '심쿵해'를 열창하며 섹시한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7개월 만에 컴백하며 라크로스 선수로 변신한 AOA 멤버들은 이성에게 첫 눈에 반한 여성의 설레는 마음을 '심쿵'이라는 신조어로 풀어낸 타이틀곡 '심쿵해'를 통해 섹시하면서도 건강한 매력을 담은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 이정민


이번에 AOA의 첫 컴백무대는 24일 방송된 MBC뮤직 <쇼 챔피언>이었다. '사녹' 시간은 가혹하게도 오전 8시였고, 7시까지는 일산 MBC 드림센터에 도착해야 방청할 수 있었다. 집이 근처인 내겐 '꿀' 같은 스케줄. 쇼케이스 때 얼굴을 익혔던 팬 J군은 집이 안산이라 지난밤에 상계동 사촌형 집에서 자고 새벽에 나왔다고 했다. 근처 PC방에서 밤을 샌 팬도 있었다. 평일 이른 시각이라 주말 사녹 때보다는 상대적으로 적은 30명 정도가 모였다.

무대와 좀 더 가까운 곳에 서려면 먼저 입장해야 하는데, 여기에도 순서가 있다. 단순히 선착순은 아니고, 이번 미니앨범과 타이틀곡 '심쿵해' 온라인 음원, AOA가 적혀 있는 응원도구인 슬로건이 모두 있으면 1순위다. 간밤에 600원을 주고 '심쿵해' 음원을 사고 결제내역을 출력해 갔기에 2순위라도 될 줄 알았는데, 슬로건이 없으면 입장할 수 없단다.

나도 모르게 팬매니저(팬을 관리하는 소속사 관계자)의 귀에 대고 "저기... 저번에 인사드렸던 기자인데, 슬로건 없이 입장시켜 주실 순 없나요?" 넌지시 물었다. 관계자는 상냥한 목소리로 "안 된다"고 웃으며 "현장에서 만 원에 팔고 있다"고 친절하게 안내해줬다. 어떠한 편의 없이 정말 팬처럼 부딪혀보겠다는 각오는 만 원 앞에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AOA 멤버들이...

▲ AOA, '초콜릿'처럼 진하게 걸그룹 AOA가 22일 오후 서울 광장동 악스코리아에서 열린 세번째 미니 앨범 <하트 어택(Heart Attack)> 발매 쇼케이스 및 기자간담회에서 신곡 '초콜릿'을 열창하며 섹시한 무대를 보여주고 있다. 7개월 만에 컴백하며 라크로스 선수로 변신한 AOA 멤버들은 이성에게 첫 눈에 반한 여성의 설레는 마음을 '심쿵'이라는 신조어로 풀어낸 타이틀곡 '심쿵해'를 통해 섹시하면서도 건강한 매력을 담은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 이정민


부끄러운 마음과 공복을 달래려 대기시간에 J군과 근처 콩나물국밥집으로 갔다. 올해 대학에 입학했다는 그는 다행히 AOA 쇼케이스 날부터 방학이라 너무 좋다고 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부모님이 너 이러고 다니는 거 아시니?'라는 말이 튀어나왔지만, J군은 "학점관리 잘 하기로 약속하고 활동하는 것"이라고 웃었다. 나도 그 나이에는 한 그룹의 팬이었다는 고백에 J군이 너무나 순수한 얼굴로 근본적인 직구를 던졌다. "그런데 지금은 왜 안 좋아하세요?"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마음이 식었겠지, 오빠들보다 중요한 것들이 생겼겠지. 그 뒤로 누군가를 좋아하더라도 그를 보기 위해 새벽 첫 차를 타거나 몇 시간 동안 줄을 설 정도의 간절함을 가진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마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에 "좋은 경험이니 생활에 지장이 가지 않게끔 적당히 즐기라"고 공익광고 같은 조언을 늘어놨다. 

아닌 게 아니라, 나이 들면 하기도 어려운 경험이다. 서서 기다린 지 2시간이 넘어가자 무릎에서 관절이 '뽀각뽀각' 앓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9시가 다 되어서야 녹화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 AOA가 있었다. 심지어 멤버들은 안면이 있는 팬들과 눈을 맞추고 손을 흔들었다. "밥 먹었어?"라고 묻는 J군에게 막내 찬미가 "안 먹었어, 사줘!"라며 친구처럼 쿵짝을 맞추는 광경은, '오빠는 신의 영역'이었던 20세기 팬에게 문화적 충격이었다.

수록곡 '초콜릿' 무대만 3번을 찍었다. J군은 "이래서 생방송보다 사전녹화가 좋다"며 즐거워했지만, 내 관절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결국 '심쿵해' 무대는 보지도 못하고 다리를 질질 끌며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새벽에 밥도 안 먹고 뛰어 나가더니 덜렁덜렁 들고 온 슬로건을 보고 "집에 수건 많은데 왜 샀냐"는 엄마에게 차마 만 원 주고 샀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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