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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었슈? 백종원 레시피 어때유

[연예학개론] 무서웠던 셰프님 대신 '백주부'가 왔다

15.06.09 15:38최종업데이트15.06.09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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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2일 오후 서울 역삼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tvN <집밥 백선생> 제작발표회에서 셰프 백종원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집밥 백선생>은 인스턴트 식품, 집 밖에서 사먹는 음식에 지친 요리 초보 남성 연예인들이 백주부 집밥 스쿨 에 들어가 1인분 요리를 넘어 한상차림까지 한식, 중식, 양식, 디저트에 이르는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는 요리인간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담은 프로그램이다. ⓒ 이정민


한때 TV에 나오는 셰프들은 학생주임 선생님보다 무서웠다.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참가자 앞에서 그가 만든 음식을 쓰레기통에 처박으며 "이 따위 음식은 개나 줘버려"라고 독설하던 셰프 고든 램지가 악명 높은 인기를 얻고, 우리나라 TV에서도 비슷한 '버럭' 셰프의 이미지가 익숙해졌을 때만 해도 요리는 범접할 수 없는 전문가의 영역으로 보였다.

그런데 요즘엔 사람들이 요리연구가 백종원의 레시피를 따라 해봤다며 너도 나도 포스팅을 올린다. 그가 전수한 '요리'란 게 별 거 아니다. 트러플오일이나 푸아그라가 있을 리 만무한 평범한 가정의 주방을 생각해 찬밥과 신 김치, 참기름만으로도 한 그릇 뚝딱 흡입할 수 있는 '김치밥'을 알려준다. 돼지고기를 볶으면서 "카놀라유든 식용유든 상관없으니 등유와 휘발유만 넣지 말라"는 재치를 잊지 않으며, 없는 것 많은 자취생의 주방도 옹색하지 않게 만들어준다. 셰프들에게 용납할 수 없었던 조미료도 허용한다. 사먹는 음식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MSG 조금 넣더라도 집에서 쉽게 만들어 맛있게 먹어보란 취지다.

물론 요리를 업으로 삼기 위한 진지한 도전을 다루는 프로그램과 백종원이 출연해 요리를 쉽게 알려주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 <집밥 백선생> 등 예능 프로그램은 그 성격이 다르기에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다만, 백종원은 자신의 목표대로 요리의 문턱을 낮추고 있는 중이다.

"자존심 센 셰프보다 백주부가 좋다"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백종원이 선보인 초간단 김치밥. ⓒ MBC


사실 백종원이 예능에서 활약하기 훨씬 전부터 사람들은 그의 레시피를 즐겼다. 그가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개발한 우삼겹과 해물떡찜, 양은냄비에 끓인 김치찌개, 짬뽕을 한 번이라도 먹지 않았나. 반전은, 국내외 다수 프랜차이즈를 거느린 회사의 대표가 "참 쉽쥬?" "맛있어 보이쥬?" 충청도 사투리를 써가며 실수도 하는 등 옆집 아저씨 같은 수더분한 매력을 보이면서부터다. 방송에 익숙지 않아 튀어나오는 '덴뿌라' '비니루' 등 부적합 용어 때문에 세종대왕님께 사과하는 상황은 논란거리가 아닌 웃음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채팅창이 있는 인터넷 생방송 형식의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그가 보여준 시청자와의 소통능력이 높은 점수를 얻었다. 소통 역시 별 게 없다. 지나가며 던진 채팅창의 농담에도 반응해주고, 설탕을 많이 넣는다며 '슈가보이'라고 붙인 별명에 삐진다. 바닥에 앉아 요리하던 언젠가는 "손이 발에 닿은 거 아니냐"는 시청자의 위생 지적에 요염한 인어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이런 빈틈이 본의 아니게 예능감으로 승화됐지만, 비결(?)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난 어리숙하지 않은데 희한하게 실수한 것 위주로 편집이 됐다"며 반박한다. 또, 대중들이 붙여준 '예능 대세' 수식에 "이해가 안 된다"고 세상 진지하게 손사래를 치는 걸 보면 의도한 설정은 아닌 듯하다. 이런 모습과 달리, 심사위원을 맡고 있는 <한식대첩>에서는 희귀한 식재료의 손질과 요리법을 꿰고 있어 '백박사'로 불린다. "전국을 먹으러 돌아다니느라 학사경고를 두 번이나 받으며" 쌓은 내공은 그가 우스운 캐릭터로만 보이지 않는 이유다.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 중인 백종원. ⓒ MBC


백종원이 TV에 출연하는 이유를 설명할 때 항상 언급하는 게 '요리' '한식'에 대한 관심이다. <집밥 백선생> 제작발표회 당시 그는 "시청자들이 나를 '된장찌개 하나 만들면서 TV 나와 요리한다'고 만만하게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했고, <한식대첩2> 출연료를 부산관광고 한식조리학과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기부하기도 했다. TV에 선보인 그의 레시피들은 "돈을 벌려고 음식을 만드는 게 아니라, 좋은 음식을 어떻게 하면 싸게 즐길 수 있을까 연구하며 산다"는 요식업체 대표로서의 오랜 철학과 일맥상통한다.

여기에 배우이기 전에 자신의 아내인 소유진을 향한 마음은 백종원이라는 요리에 화룡점정 역할을 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 설특집 당시 "아내는 좋은 사람이고 착한 사람이다. 좋게 봐달라"는 우승 소감을 남겨 화제가 됐고, <한식대첩3> 제작발표회에서도 "요즘 나보다도 아내에 대한 욕이 거의 없어져서 정말 감사하다"고 예의 사람 좋게 웃던 그다.

그가 전하는 요리도 마찬가지다. 음식으로 전문가가 된 이들 중에 진심을 담지 않은 이가 있겠냐만은 그게 얼마나 어떻게 전달되는지가 백종원을 대세로 만든 차이다. 시청자들 역시 "셰프면 자존심이 있어서 모르는 것도 아는 척 할 텐데 능청스럽게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고, 그냥 요리 잘 하는 아저씨 같아서 좋다" "영어 이름 써가며 요리사가 아닌 셰프라 불리는 사람들보다 사투리 써가며 접근하기 쉬운 요리해주는 백주부 방송이 더 맛깔 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물론 방송에서 지나치게 소비되는 걸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다시 요리연구가 겸 요식업체 대표로 돌아가더라도 백종원은 아쉽지 않을 것 같다. 전국적으로 백주부 레시피에 빠지게 만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백종원 백주부 백선생 마리텔 한식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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