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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휘날리며> OST 때, 음악 그만두려고 했죠"

[인터뷰] 영화 속 숱한 명곡을 만들어낸 이동준 작곡가①

15.04.30 16:12최종업데이트15.04.30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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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흥행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꼽으라면 배우들의 인상 깊은 연기나 참신하고 재밌는 시나리오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못지않게 영화에 삽입되는 음악도 무시할 수 없다. 대사가 없던 무성 영화 시절, 영화 음악은 배우 이상의 역할을 했다. 영화 속 음악이 극 중 몰입을 도와주는 건 기본이다. 스펙터클한 액션 장면에선 긴박한 음악이 박진감을 높여주고,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선 애틋한 음악이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한다.

'이 음악하면 이 영화'라는 게 있는 영화는 관객의 뇌리에 오래 각인되고, 두고두고 회자될 수 있다. 실제로 흥행 영화들을 살펴보면 길거리에서든 어디든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음악이 영화에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영화는 어떨까. 우리나라 영화가 음악의 중요성에 눈을 뜬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다. 본격적으로 영화 음악의 활로를 연 것은 1996년 개봉한 강제규 감독의 <은행나무침대>였다. 영화에 쓰인 음악을 가지고 OST 음반을 내놓고, 관객들도 우리나라 영화 음악에 열렬히 호응을 보내기 시작했다.

<은행나무침대>의 음악은 이동준이라는 작곡가로부터 비롯됐다. 그의 손끝에서 <은행나무침대>뿐 아니라 이름만 들어도 아는 <쉬리>와 <태극기 휘날리며>, 그리고 최근 개봉한 <장수상회>에 이르는 영화 속 음악들이 탄생했다. 그는 1994년부터 <구미호>로 영화 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해, 이후 지금까지 40개 가까운 개봉작의 음악을 만들어냈다.

 지난 24일, 작업실 속 이동준 작곡가 모습.
지난 24일, 작업실 속 이동준 작곡가 모습.고동완

그는 첩보물에서부터 멜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영화 속 명곡을 만든 주인공이다. 한국 영화 음악계의 거장이라도 불러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지난 24일 이동준 작곡가를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 <태극기 휘날리며> OST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알 만한 여러 명곡을 만들어냈다. 음악들이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지는지.
"우선 영화 편집본을 2~3번 반복해서 봐요. 음악이 들어가고 나가는 장면을 살펴보고, 5초가 됐든 4분이 됐든 장면들을 체크합니다. <장수상회> 같은 경우 38번 정도 음악이 들어갈 부분이 보이더라고요. 그럼 그 지점을 정해놓고 큰 흐름을 보고 (음악적으로) 중요한 순서대로 작업을 해요.

영상을 잘라서 컴퓨터에 올린 후, 피아노로 정리해 봅니다. 영상을 끄고, 머릿속 이미지를 만들어보면서 어렴풋이 테마곡을 만들죠. 나쁘지 않으면 영상에 음악을 붙인 뒤, 박자 등 음악적 기능성을 최대한 살리려고 해요. 그게 완료되면 편곡을 해봅니다. 그렇게 영화 한 편에 40~50분 작곡 분량이 들어가는데요. 심포니 곡을 만들 듯이 작업하는 셈이죠."

- 영화 제작이 완료된 다음, 음악이 만들어지는 것 같네요?
"인물 움직임이 많은 영화는 편집이 끝나야만 작업을 할 수 있죠. <분노의 질주>를 최근에 봤는데 그런 건 미리 곡을 만들어서 배치하는 게 아니라 편집이 끝나고 음악을 맞춰줘야 하거든요. 편집이 달라지면 다시 음악을 만들어야 하는 거죠. 최종본을 가지고 시간에 맞춰 음악을 절묘하게 대응시켜줘야 해요.

<쉬리>는 시나리오를 통해서 마지막 장면에서 두 주인공(한석규, 김윤진)이 긴박하게 뛰어가고, 총구를 맞대는 클라이맥스 상황이 벌어진다는 걸 미리 봤어요. 그 다음 최종 편집본을 가지고 장면을 몇 번 돌려 보면서 '여기서부터 음악이 시작되겠네', '한 음악이 어디서 마무리될까', '김윤진이 죽을 때 음악이 끝나야겠구나'... 변화가 일어날 시간을 다 체크해서 모든 상황과 감정들을 하나로 묶어 (음악으로) 표현했어요. 편집본이 나와야만 가능하죠."

"음악을 잘 만들려면 감성이 열려있어야 한다"

이 작곡가는 "작곡에 들어가기에 앞서, 감정 이입과 집중을 최대로 높여야만 곡의 완성도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화음악가는 영화를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으로, 작품을 위해 자기를 버려야 된다"고 했다.

- 곡이 잘 안 만들어질 때도 있을 것 같은데요.
"속이 터질 때가 많죠.(웃음) 막 머리 쥐어뜯고 그래요. 늘 고민을 하다가 어느 타이밍에 순식간에 풀리는 건데요. 일단 그 작품에 감정을 이입해야만 감성이 올라오거든요. 그게 가득 차면 고민을 조금만 해도 '곡이 나오겠구나' 느껴요. 그 때 초 집중하면 자연스럽게 곡들이 나오죠. 좋은 음악으로 평가받은 곡들은 고민의 시간은 길지만 곡이 빨리 나온 거였죠. <은행나무침대> 음악을 만들 때는 스스로 타임머신을 타고 가야금 악사가 돼서 개울가에서 자연 속에서 춤을 추는 걸 상상해봤거든요.

고민이나 생각을 할 때는 혼자 골목길을 걷기도 하고, 안 풀리면 내일로 미루기도 하죠. 음악을 잘 만들려면 감성이 열려있어야 해요. 산책을 하더라도, 와인을 마시더라도, 연애를 하더라도 감성적으로 대할 필요가 있어요. 이를 테면 비올 때 막걸리를 마시는데 나한테 감정적으로 크게 다가오는 게 있거든요. 그게 음악적인 모티브가 돼요. 그런 게 누적이 되면서 사람에 대한 공감이 쌓이고, 곡에 반영이 되는 거죠."

이 작곡가는 "사람 마음을 건드리는 곡을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토로했다.

 인터뷰가 진행된 이동준 작곡가의 작업실은 집과도 겸하고 있었다. 지난 24일, 작업실 2층 테이블에서 찍은 이 작곡가 모습.
인터뷰가 진행된 이동준 작곡가의 작업실은 집과도 겸하고 있었다. 지난 24일, 작업실 2층 테이블에서 찍은 이 작곡가 모습.고동완

이 작곡가에게도 아찔한 위기의 순간이 있었다. <태극기 휘날리며>를 작곡할 때다. 하필 몸이 아팠다. 주제곡도 아직 나오지 않았던 무렵이다. 체코에는 오케스트라가 작곡이 마무리되기를 기다리며 녹음을 앞두고 있었다.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지만 몸이 워낙 좋지 않아 별 도리가 없었다. 결국 녹음을 엎고 남은 1주일 동안 영화에 들어갈 곡을 모두 완성해야만 했다.

"그때 심정은 '음악 이제 그만해야겠다'였어요. 큰 작품을 두고 대형 사고를 쳐 면목도 없고. 몸 관리를 잘했어야 했는데 오만 생각 속에서 마무리라도 잘하자는 심정으로 링거를 맞으면서 다시 작곡을 시작했죠.

어렴풋이 나온 이미지는 있어서, 어느 시점에 주제곡을 반나절 만에 작곡했어요. 나머지 중요한 음악은 이틀, 삼일 만에 작곡을 하고 나머지 음악은 녹음 직전까지 작곡했죠. 그만큼 긴박했습니다. 작곡이 늦어지자 주변 사람들이 좋게 볼 리가 없었죠. 이 와중에 강제규 감독은 '이동준을 믿어 달라, 기다려 달라'라고 말했어요."

이동준 작곡가 하면 강제규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96년 개봉작 <은행나무침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제규 감독은 <은행나무침대> 제작을 앞두고 영화 <구미호>를 제작한 신씨네에 작곡을 맡아줄 음악가를 의뢰했다. 당시 <구미호>로 영화계에 본격 데뷔한 이 작곡가는 강 감독에게 시범으로 만든 음악을 선보였고, 반응이 좋아 서로 결합하게 됐다.

그 후로 강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의 음악은 이 작곡가가 맡게 됐다. 강 감독은 <태극기 휘날리며> OST 앨범에서 이 작곡가를 두고 "내 영화 빛깔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음감의 소유자"라며 극찬했다. 그 빛깔이란 게 뭘까.

- 강 감독 영화의 빛깔이 뭐기에 작곡가님 곡과 어울리는 걸까요. 
"강 감독님과는 작품으로 처음 만난 뒤 인간적으로 친해지게 됐어요. 빛깔이 맞는다는 건 예술적 방향 이외에도 형과 제 생각들이 전반적으로 공유된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내가 제시한 영화적 감성과 형(강 감독)이 생각한 감성도 그렇고, '나 이렇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가치관들도 잘 맞거든요. 5천 원짜리 밥을 먹더라도 맛있는 곳 찾아가려고 하구요. 먹다가 반찬이 맛있으면 서로 칭찬해주고. 사소한 것도 잘 맞아요. 저도 그렇지만 형도 생각보다 되게 여성스럽고, 섬세하거든요(웃음)."

"드라마 음악은 매번 방송 전에 작업을 거쳐"

공교롭게도 이 작곡가와 강 감독은 부모가 이북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마이웨이>까지 한반도를 소재로 한 영화를 함께 제작해왔다. 피난민의 후손인 이 작곡가는 운명적이게도 동아시아를 다룬 <로스트 메모리즈>, 6.25를 그린 <포화 속으로> 등 비슷한 소재의 영화 음악을 계속 맡았다.

드라마 작곡도 남북첩보전을 소재로 한 <아이리스>를 맡았다. 이후 <아이리스> 시리즈인 <아이리스2>와 <아테나 : 전쟁의 여신> 작곡도 맡게 됐다. 영화와는 달리, 드라마의 경우 전편에 가까운 분량을 사전 제작하는 게 보편화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선 그 최종본을 미리 접하기란 어려울 터. 작곡 과정에서 드라마와 영화가 사뭇 다르지 않을까 궁금했다.

- 드라마는 최종본이 별로 없을 텐데요. 작곡 과정에서 영화와 차이가 어떤 점이 있을까요?
"드라마는 영상을 보고 음악을 만들 시간이 없어요. 1, 2회 대본과 수시로 들어오는 영상, 시놉시스를 보고 결말을 예측한 뒤 여러 음악을 만들어놓거든요. 제작된 영상이 넘어오면 만들어놓은 곡을 배치시켜요. 만들어놓은 음악이 장면 시간과 맞아떨어지는 게 아니니까요. 아이리스는 1~2부 편집본이 빨리 와서 (음악들을) 배치시켜놨는데, 방송 이틀 전에 편집이 바뀌어서 다시 배치를 한 적도 있었죠. 드라마는 매번 방송 전에 작업을 거쳐야 해요."

지금과는 달리, 이 작곡가가 대학에 입학하던 1990년대 초반에 우리나라는 영화 음악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영화에서 사용한 음악들을 OST 앨범으로 내놓는 것조차 매우 이례적이었다. 오래 전부터 영화 음악가가 되길 꿈꿔왔다는 이 작곡가는 꿈을 이루려 '맨땅에 헤딩'을 해야 했다.

(이동준 작곡가 인터뷰 2편으로 이어집니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태극기 휘날리며 음악 영화 이동준 강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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