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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 독'의 반란, 식상한 KBL을 흔든 드라마

[프로농구] 이변 만들고 있는 전자랜드와 LG, 기적 완성할까?

15.03.26 09:33최종업데이트15.03.26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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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2015 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 경기는 모두 최종 5차전에서 승부를 가리게 됐다.

지난 25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14-2015 KCC 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5전3승제) 4차전, 인천 전자랜드는 원주 동부와의 홈경기에서 79-58로 대승했다. 1차전 승리 이후 2연패를 당하며 탈락 위기에 몰렸던 전자랜드는, 이날 승리로 승부를 다시 원점으로 올렸다.

앞서 24일, LG도 창원실내체육관에서 정규리그 우승팀 모비스를 84-79로 제압하며 역시 2승 2패로 균형을 맞췄다. LG는 오는 26일 울산에서 모비스와, 전자랜드는 오는 27일 원주에서 동부와 각각 최종전을 치르게 됐다.

모두의 예상을 깬 LG와 전자랜드의 선전

LG와 전자랜드의 선전은 닮은 부분이 많다. LG는 정규리그 4위, 전자랜드는 6위에 그쳤다. 하지만 두 팀은 4강에 직행한 정규리그 1·2위팀 모비스와 동부를 끈질기게 괴롭히며 하위 시드의 반란을 주도하고 있다.

당초 플레이오프에서 두 팀이 이 정도로 선전할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전자랜드는 올해 6강 진출팀 유일하게 5할 승률(25승 29패)에 실패한 팀이었다. 플레이오프에서 맞붙은 SK-동부와의 승차는 모두 12게임이나 됐고, 정규리그 전적에서도 2승 4패로 밀렸다.

하지만 6강전에서 SK를 3전 전승으로 제압하는 이변을 일으켰고, 동부를 상대로도 대등한 승부를 이어가며 정규리그 기록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승부처를 지배하는 에이스이자 주장 리카르도 포웰의 놀라운 클러치 능력, 높이의 열세를 한 발 더 뛰는 투혼과 근성 있는 수비로 만회하는 국내 선수들의 집중력이 합쳐져서 만들어낸 성과다.

LG는 오리온스와의 6강 플레이오프에서 이미 최종 5차전까지 치르는 혈전을 펼쳤다. 모비스와의 4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완패한 직후, 애국가 스트레칭과 SNS 욕설파문으로 물의를 빚은 외국인 선수 데이본 제퍼슨을 퇴출하는 초유의 사건까지 벌어졌다. 정규리그 득점왕이자 에이스로 꼽힌 제퍼슨의 이탈은 LG에게 큰 타격으로 보였다.

그러나 LG는 오히려 국내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이 똘똘 뭉치는 모습을 보였다. 제퍼슨 퇴출 이후만 놓고 보면 2승 1패로 오히려 LG가 앞서고 있다. 시즌 내내 활약한 주전 외국인 선수가 빠진 상황에서, 체력과 전력에서 모두 우위인 정규리그 우승팀을 상대로 이만큼 승부를 끌어왔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LG와 전자랜드의 선전은 그동안 알게 모르게 타성에 젖어있던 KBL식 농구에, 그리고 그런 농구에 익숙해져 있는 팬들에게 '이변'과 '팀 스포츠'의 미학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줬다.

최근 몇 년간 프로농구는 눈에 띄게 활력이 떨어졌다. 장기레이스를 마치고 이미 지친 선수들은, 중요한 빅 매치에서 오히려 체력이 떨어지면서 경기력도 같이 하락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플레이오프도 별다른 이변이나 새로운 이슈 없이 '이길만한 팀이 이기고, 질만한 팀이 지는' 현상이 반복됐다. 정규시즌과 마찬가지로 외국인 선수들의 활약에 우승팀이 좌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마추어 팬들도 예측할 수 있을만한 뻔한 결과와 뻔한 경기의 연속에 팬들은 쉽게 싫증을 느꼈다. 설상가상으로 농구 플레이오프가 야구와 축구의 시즌 개막 시기와 맞물리며 화제성도 떨어졌다. 시청률이 안 나오는 플레이오프 중계가 뒷전으로 밀려나는 굴욕도 종종 벌어졌다.

이번 플레이오프는 이러한 전문가들의 뻔한 예상을 무색케 한다. LG와 전자랜드가 이 정도로 선전할 것이라 예상한 이들이 얼마나 됐을까. 전력이나 분위기로 따지면 일찌감치 무너졌어도 이상하지 않을 두 팀이지만, 선수들이 하나의 목표를 위하여 똘똘 뭉쳐 위기를 극복하고 강팀들을 끈질기게 괴롭히고 있다. 이런 모습은 스포츠이기에 가능한 드라마이기도 하다.

스토리가 있는 두 팀의 반란, '언더 독' 매치 성사될까?

더구나 두 팀의 선전은 나름의 스토리 역시 풍성하다. 전자랜드는 전통적으로 강호의 역사와 거리가 멀었던 대표적인 '언더 독' 구단이라는 희소성, 바뀐 외국인 선수 규정에 따라 올 시즌을 끝으로 팀을 떠나야하는 리카르도 포웰과의 끈끈한 인연 등이 맞물려 농구팬들 사이에서 연일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포웰로 인하여 KBL의 잦은 외국인 선수제 변경에 대한 문제제기가 다시 이슈로 떠오를 정도다.

LG는 외국인 선수 잔혹사라는 최대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알고 보면 LG는 과거 '야반도주'의 아이콘 버나드 블런트. 감독과 실제로 '맞장'을 떴던 마일로 브룩스, 심판에게 장풍을 날렸다가 영구제명을 받은 퍼비스 파스코, '니갱망'(니가 경기를 망치고 있어)이라는 유행어를 창시한 아이반 존슨까지, 이미 이전부터 외국인 선수를 둘러싼 사건사고가 유난히 잦았던 팀이기도 하다.

하지만 LG는 이번 제퍼슨의 SNS 사건으로 구단 이미지까지 함께 나락으로 떨어질 뻔한 위기에서 과감한 결단을 내리며 여론을 반전시켰다. 플레이오프에서의 기대이상 선전까지 이어지며 명분과 실리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외국인 선수 한 명 없이도 투혼을 발휘하는 LG 선수들의 모습과 창원에서의 뜨거운 농구열기를 통해 LG 농구를 다시 보게 되었다는 팬들도 많다.

공교롭게도 LG와 전자랜드는 모두 프로농구 출범이후 아직까지 챔프전 우승경력이 없는 유이한 팀들이다. LG는 지난해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나 챔프전에서 2위 모비스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전자랜드는 아예 창단 이후 챔프전 진출 경험 자체가 전무하다.

두 팀은 이제 챔프전을 향한 마지막 관문을 남겨두고 있다. 두 팀이 만일 나란히 최종전에서 승리를 거둔다면 역사상 최초로 4위와 6위 팀의 챔프전 매치 업이 성사된다. 플레이오프 내내 뜨거운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른 두 팀이 함께 '언더 독의 기적'을 완성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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