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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루더도어' 전재홍 "아버지의 조언 뼈저리게 느꼈다"

[박정환의 뮤지컬 파라다이스] 카일 왕자 역으로 호연 보여

15.03.20 15:37최종업데이트15.03.20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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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처음 보는 여자가 내 몸에 난 상처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이 여자를 스토커로 볼까, 아니면 누구보다 날 잘 아는 누군가로 생각하고 호기심이 발동할까? 뮤지컬 <쓰루더도어>에서 전재홍이 연기하는 카일 왕자는 낯선 여자 샬롯이 자신의 몸 여기저기에 난 칼자국 상처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샬롯은 카일 왕자 자신보다 카일을 너무나도 잘 알 수밖에 없다. 사실 카일은 실존하는 인물이 아니라 샬롯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소설 속 인물이니까. 그렇다면 샬롯과 카일은 어떻게 만날 수 있었을까. 샬롯이 다목적실을 통해 샬롯의 소설 세계로 빠져든 덕에 만날 수 있었다. 창조주 샬롯과 피조물인 카일이 만나는 것도 모자라, 카일은 샬롯을 사랑하게 된다.

<쓰루더도어> 에서 카일 왕자를 연기하는 전재홍

▲ <쓰루더도어> 에서 카일 왕자를 연기하는 전재홍 ⓒ 간 프러덕션


- 샬롯은 소설 속에서 카일을 어떤 왕자로 묘사하고 싶었을까.
"샬롯은 7년 동안이나 소설을 완성하지 못한다. 샬롯은 역사 소설을 쓰고 싶어 한다. 피비린내 나는 역사 가운데서 살아남은 인물이 카일이다. 카일의 형제는 자그마치 28명이나 된다. 아무리 카일이 왕위에 관심이 없어도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다른 형제들이 카일을 죽이려고 드니, 자기 방어 차원에서 형제를 제거하다가 왕위를 물려받을 자리까지 올라온 인물이다."

- 샬롯은 소설 속에서 카일을 만든 창조주다. 카일이 사랑하는 샬롯이 알고 보니 자신을 만들어낸 창조주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 질문을 들으니 소름이 돋는다. 카일에게 샬롯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려 준 고마운 사람이다. 카일이 죽을 때까지 잊지 않고 싶은 인물이기도 하다. 샬롯이 카일을 만든 창조주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샬롯의 세계로 되돌려 보냈을 것이다. 자신을 만든 샬롯을 자신이 살던 현실로 보내주고, 카일의 마음속에서 샬롯을 영원히 추억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해서 샬롯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현실로 되돌려 보내고자 할 것이다."

- 사랑하는 여자라면 보석이나 비싼 장신구를 사줄 것이다. 그런데 카일은 사랑하는 샬롯에게 자신의 영토를 주려고 한다.
"카일이 사는 세계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영토를 주는 게 최고의 선물인 것 같다. 현실에서는 여자가 좋아하는 물건이 귀중품이나 보석인 것처럼, 카일이 사는 세상에서는 땅이 사랑하는 여자를 돋보이게 만드는 물건이다."

<쓰루더도어> 에서 카일 왕자를 연기하는 전재홍

▲ <쓰루더도어> 에서 카일 왕자를 연기하는 전재홍 ⓒ 간 프러덕션


- 아버지가 배우 전국환씨다. 아버지는 아들이 뮤지컬하는 것을 어떻게 응원하시는가.
"아버지는 아들이 배우가 될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어릴 적에는 배우가 되겠다는 별다른 꿈이 없었다. 고등학생 때 음악을 좋아해서 록 밴드 활동을 했다. 고등학교가 홍대 근처였다. 홍대 클럽에서 연주도 해보았다.

밴드를 좋아해서 진로도 실용음악학과를 선택하려고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공부할 게 너무 많았다. 고3이라는 1년 동안 실용음악학과 진학을 위한 공부를 소화하기에는 너무나도 벅찼다. 연극과에 진학해서 밴드나 콘서트하는 무대 연출을 공부하리라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예대에 원서를 내는 저를 보고 연기를 하리라는 걸 눈치 채셨다.

서술예대에 입학하면 학교에서 공연하는 일이 많아진다. 부모들은 자식들이 어떻게 공연하나 하고 궁금해서 찾아오시게 된다. 그런데 아버지는 재학 시절 제가 공연하는 걸 한 번도 찾아오시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학교 다닐 동안 열심히 공부해라. 나는 학교를 졸업한 후에 너를 보겠다. 네가 연기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졸업 후에 판단하겠다. 만약 연기를 못 한다는 생각이 들면 그만 두어라'고 하셨다.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한 공연이 <그리스>였다. 이때 아버지가 제가 공연하는 걸 보러 오셨다. 2막에서 싸우는 장면이 있었다. 아버지는 연극을 많이 하셨다. 아버지는 공연을 보시고 저에게 '싸우는 장면에서 네가 조금 더 옆으로 가야지 얼굴에 조명을 받는다'는 충고를 해주셨다. 이런 아버지의 충고가 고맙게 들리면서도 조금 연기를 더 해보라는 맥락으로 받아들여졌다. 여러 작품에서 저를 찾아주셔서 감사하게도 쉼 없이 연기로 달려올 수 있었다.

<쓰루더도어>를 하기 전 송일국 선배님의 연극 <나는 너다>를 공연했다. 한명구 선생님과 같은 역할을 맡았다. 아버지가 산울림극장에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연기할 때 한명구 선생님을 보았다. 그때 한 선생님이 연기하는 게 어쿠스틱 기타를 보는 것 같았다. 그 정도의 연기적인 울림이 있어서 깜짝 놀랐다. <고도를 기다리며>가 워낙 인상적이라 10번 정도 보았다.

그렇게 존경하던 한명구 선생님과 <나는 너다>에서 함께 무대에 선다는 게 그렇게나 행복했다. 연출을 윤석화 선생님이 맡았고, 박정자 선생님과도 함께 공연할 수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아들이 공연하는 걸 보러 오시지 않고 한명구 선생님이 공연하는 날에 관람하러 오셨다. 아버지는 아들이 배우들의 눈에 어떻게 비쳐졌을지 궁금했을 것이다. 다행히 한명구 선생님이 저를 좋게 보아주셔서 좋은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해주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나는 너다>를 하기 전부터 저에게 '네 또래 배우들과 하는 공연을 아무리 많이 해보았자 소용없다. 어르신과 함께 하는 공연을 많이 해보아야 배우로 한 발자국씩 나아갈 수 있고, 많이 배울 수 있다'고 조언해주셨다. 그런데 <나는 너다>를 공연하면서 전에 해주신 아버지의 조언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무대의 대가들과 같은 연습실에 있는 것만으로도 공력이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선배 배우들이 해주시는 한 마디 한 마디를 그 자리에서 바로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이 말을 이해해야 될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이 말을 이해해야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은 중압감이 있었다. 그 전까지는 제가 좋은 대로만 연기하다가, 저의 모든 걸 충고 받는 자리에 서면서 '나는 여기에서 선생님들에게 배우러 왔지. 선생님들의 한 마디 한 마디를 감사하게 받아들이자'고 생각하고 <나는 너다>를 끝냈다. 연습실에 서는 자세가 <나는 너다> 전보다 달려졌다."

<쓰루더도어> 에서 카일 왕자를 연기하는 전재홍

▲ <쓰루더도어> 에서 카일 왕자를 연기하는 전재홍 ⓒ 간 프러덕션



전재홍 쓰루더도어 전국환 THROUGH THE DOOR 송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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