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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 진상고객, 이번엔 마릴린 먼로 흉내내요"

[인터뷰] 연극 '먼로, 엄마' 미진 역 길해연 "이미테이션 가수, 연극인의 삶과 비슷"

15.01.21 08:30최종업데이트15.01.21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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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로, 엄마 에서 미진을 연기하는 길해연 ⓒ CJ문화재단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연극 <먼로, 엄마>의 미진이 이 그렇다. 54세라는 나이에도 미진은 노미진이라는 고유한 정체성으로 살기보다는, 마릴린 먼로를 흉내내는 이미테이션 가수가 자신다운 삶이라는 착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왜 미진은 마릴린 먼로를 흉내내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삶이라고 생각하는가, 딸과의 불화를 각오하면서까지 이미테이션 가수를 고집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먼로, 엄마>에서 미진을 연기하는 길해연은 지난 가을에 개봉한 영화 <카트>에서 진상 고객으로 강렬한 연기를 선보인바 있는 배우다. 길해연을 20일 대학로에서 만났다.

"마릴린 먼로로 살 수밖에 없는 엄마의 삶, 인정하기"

- 미진은 이미테이션 가수로 왜 마릴린 먼로만 흉내낼까.
"미진은 마릴린 먼로처럼 인생이 기구하다. 1962년 미진이 태어나던 날에 마릴린 먼로가 죽었다. 미진은 자신이 세상과 연결된 듯한 사람이 마릴린 먼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진은 그처럼 살 때만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대사를 보면 '나는 마릴린 먼로일 때만 살아있는 것 같다'고 한다. 혼자서는 정서적으로 흔들려 버틸 수 없다. 남들이 보면 불행해 보이지만 미진이 마릴린 먼로로 있는 동안에는 유쾌하게 산다.

남진 이미테이션을 하는 가수는 행사라도 다닐 수 있지만 미진은 그렇지 못하다. 늙은 마릴린 먼로를 사람들이 사랑하지 않아서 노래하는 무대도 잃게 된다. 연극배우는 무대 위에서 남의 인생을 산다. 연극하면 누가 알아주냐고 홀대하는 연극인의 삶을 이미테이션 가수로도 연결시켜 생각할 수 있다."

▲ 먼로, 엄마 에서 미진을 연기하는 길해연 ⓒ CJ문화재단


- 미진의 딸 연희는 가출을 생각할 정도로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다.
"딸은 자신을 보아달라고 호소한다. 하지만 미진은 딸보다는 마릴린 먼로에 대한 관심이 더 많다. 마릴린 먼로처럼 노랗게 머리를 하고 50이 넘었음에도 가슴이 파인 드레스를 즐겨 입는다. 일거리가 끊겨도 딸에게는 일이 끊겼다는 걸 보이기 싫어서 마릴린 먼로처럼 하고는 밤거리를 다닌다.

연희는 이런 엄마가 자랑스럽지 않다. 하지만 엄마 앞에서 울지도 못했다. 미진은 이미테이션 가수로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줄 알면서도 방송 출연을 결심한다. 엄마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된다는 게 연희에게는 서글픈 일이 된다. 연희는 '엄마는 왜 끝까지 엄마 인생만 생각하느냐'고 불만을 토로한다."

- 그렇다면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마릴린 먼로라는 이미테이션의 삶을 사는 정체성의 문제인가, 아니면 엄마와 딸의 화해인가.
"소재와 배경은 이미테이션 가수지만 엄마와 딸에 대한 이야기다. 그 안에는 엄마가 꿈꿔왔던 것을 인정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짜라서 씁쓸해하지만 가짜를 진짜로 믿고 사는 이들과, 이를 인정해주는 이야기를 담는 이번 연극은 가슴이 아득해지면서도 존재를 인정해준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 먼로, 엄마 에서 미진을 연기하는 길해연 ⓒ CJ문화재단


"<카트> 진상 고객 역할, 관객에게 거울이 되어준다"

- 영화 <카트>에서는 진상 고객으로 출연했다.
"<카트>를 보면 연극배우들이 많이 출연했다. 출연 제의를 받고 처음에는 무슨 역할로 연기하면 좋을까를 상의했다. 악역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연극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에서 가해자의 엄마를 연기한 적이 있다. 가해자의 엄마이면서도 피해자에게 미안해하기는커녕 너무 뻔뻔한 엄마 역이었다.

오죽하면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를 보신 강신일 선배님이 '너, 나가다가 돌 맞지 않겠니?' 할 정도였다. <카트>에서 제가 연기한 역할 같은 인물이 너무나도 많다. 인터넷 기사를 보라. 진상 고객, 혹은 갑질 고객이라는 뉴스가 끊이질 않는다. 지금처럼 이런 뉴스가 마구 터지기 직전에 <카트>를 통해 먼저 진상 고객을 보여준 거다. 악역은 관객으로 하여금 '저러지 말아야지' 하는 거울이 되어준다."

- 어머니 김복희 여사가 2011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을 수상했다.
"어머니는 제가 연극하는 걸 반대하셨다. 제가 연극하거나 강의하는 동안에는 아이를 돌보아주셨는데 일부러 돌봐주지 않았을 때도 있었다. 손주를 돌보지 않으면 딸이 연극하는 걸 그만두지 않을까 해서다.

보통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을 인터뷰하면 '어머니가 보따리 장사를 하시면서도 책을 읽어주셨다' 또는 '어머니가 많은 뒷바라지를 해주셨다' 하는 소감이 많다. 상을 수상했을 때 어머니는 '인터뷰 안 할래' 하셨다. 제가 연극하는 걸 반대하신 걸 미안해하셨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을 수상하면 속으로는 기뻐했을 텐데 겉으로는 언짢아 하셨다.

어머니는 인터뷰할 때 '딸이 힘들까봐 무대에 오르는 걸 반대했다. 딸이 평범한 삶을 살기를 바랐다' 하면서 민망해 하시다가 결론은 '내가 애 다 키워줘서 네가 연극할 수 있었잖아'로 마무리하셨다. 극단 후배들이 당시 수상식에 참석했는데 그 어떤 상보다도 이 상을 받고 싶어했다. 어머니가 이 상을 수상하신 게 참으로 자랑스럽다."

카트 길해연 먼로, 엄마 강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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