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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이상민, 농구계 대표 스타 감독들의 시련

KCC와 삼성, 나란히 리그 9, 10위로 부진... 반등 기회도 잘 안 보여

14.11.26 09:12최종업데이트14.11.26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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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대통령' 허재(전주 KCC), '산소같은 남자' 이상민(서울 삼성). 설명이 필요없는 한국농구 최고의 스타 출신 감독들이다. 역대급으로도 손색없는 실력과 인기를 겸비했던 두 사람은, 지금도 현역 선수 이상으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지도자가 된 두 사람은 올시즌 약속이나 한 듯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두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KCC(5승 13패)와 삼성(4승 14패)는 나란히 리그 9위와 10위에 머물고 있다. KCC는 현재 7연패, 삼성은 8연패의 부진에 빠져있다.

KCC는 전신인 현대 시절을 포함하여 프로농구 역대 최다우승(5회)에 빛나는 명문이며, 삼성은 실업농구 시절부터 팀명 변동없이 30년 역사를 잇는 유일한 구단이다. 최고 스타 출신 감독들이 지휘봉을 잡고 있음에도, 체면이 말이 아니다.

위기의 허재, 복장(福將)의 운은 다했는가

허재 감독은 2005년부터 KCC의 2대 감독으로 지휘봉을 잡았다. 올해로 정확히 10시즌째 KCC를 이끌고 있는 허 감독은 프로 감독 경력만 보면 전임 신선우 감독(1994~2005, 현대전자 시절 포함)의 9시즌을 이미 뛰어넘었다. 프로 역사상 단일팀에서 가장 오래 지휘봉을 잡은 것도 유재학 울산 모비스 감독(2004~현재)에 이어 두 번째.

허 감독은 KCC에서 2009년과 2011년 두 번 정상에 올라 프로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차지한 최초의 인물이 됐다.

허 감독의 지도자 인생을 수식하는 단어로 복장(福將)을 빼놓을 수 없다. 허 감독은 현역 시절부터 선수복이 많기로 유명했다. KCC 첫 부임 때부터 이상민, 추승균, 조성원 등 당대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 했으며 이후에도 서장훈, 하승진, 강병현, 전태풍같은 특급 선수들이 허재 감독을 거쳤다.

특히 전력보강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각종 드래프트(신인, 외국인, 귀화)에서, 특급 선수들이 나올 때마다 매번 1,2순위를 독점하다시피했다.

그런데 올해는 허 감독의 운이 예전같지 않다. KCC는 올시즌 최장신 센터 하승진이 공익근무를 마치고 복귀한데다, 특급 포인트가드 김태술을 영입했다. 기존의 국가대표 가드 김민구까지 막강 '빅 3'를 구축한 KCC는 올시즌 강력한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하지만 김민구가 국가대표 차출기간 동안 음주운전 사고를 일으키며 중상을 입고 전열에서 이탈하면서 KCC의 행보는 꼬이기 시작했다. 김민구는 올시즌 출전이 날아간 것은 물론이고 선수로서 재기 여부도 불투명하다. 

농구월드컵과 아시안게임 출전으로 장기간 자리를 비운 김태술은 최악의 슬럼프에 빠졌다. 평균 29분 출장에 평균 6.6득점 3.9어시스트는 프로 데뷔 이후 최악의 성적이다. 특히 슈팅 성공률은 야투 30.6%(38/124), 3점슛 12.5%(4/32), 자유투 65.0%(26/40)인데, 프로 수준이라고 믿기 어려운 기록이다.

설상가상으로 팀의 중심인 하승진마저 지난 21일 안양 KGC전에서 발목 부상을 당해 당분간 결장이 불가피해졌다. 골밑 기둥 역할을 하던 하승진의 공백은 대체 자원이 없는 KCC에게 치명타였다. 이로서 빅3는 사실상 붕괴됐다.

KCC는 허재 감독 부임 이후 '슬로우 스타터'의 이미지가 강했다. KCC는 08~09시즌에도 한때 8연패의 수렁에 빠졌으나 중반부터 전세를 뒤집으며 그해 플레이오프에서 우승까지 차지했다. 팀 중심인 하승진의 컨디션이 정점에 올라오는 시기와 팀 전력이 일치했다.

하지만 당시와 지금의 차이는 동료들이다. 당시 KCC는 하승진이 없어도 추승균, 전태풍, 강병현 등 화려한 멤버들이 뒤를 받쳤다. 하승진의 부상 공백은 마이카 브랜드, 테렌스 레더, 크리스 다니엘스 등 센터 역할까지 소화할 수 있는 외국인 빅맨들이 메웠다.

현재 KCC의 외인 듀오인 타일러 윌커슨과 드숀 심스는 모두 공격 성향이 강한 포워드형 선수들인데다 플레이스타일도 겹친다. 토종 백업인 김일두도 빅맨으로서는 언더사이즈에 가깝다고 했을 때, 사실상 궂은 일을 해 줄 정통 빅맨이 전무하다.

슈터진의 한 축을 담당해 줄 것으로 기대했던 김지후는 시즌 초반 5경기 중 4번이나 10점 이상을 올리며 반짝했지만, 이후 한 번도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리지 못했다. 김효범, 신명호, 김태홍도 이렇다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김태술과 맞바꾼 강병현-장민국(이상 KGC)의 이적으로 백업 선수층이 더욱 약해졌고, 팀 공헌도가 높던 노장 임재현(오리온스)까지 떠나보내면서 어려울 때 팀 분위기를 잡아 줄 경험 많은 구심점이 사실상 사라졌다.

이상민, 초보 감독에겐 너무 험난한 리빌딩

이상민 감독은 지난 2년간 삼성에서 코치를 맡은 뒤 올해 감독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삼성의 전력이 약하다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됐다. 다만 외국인 선수 전체 1순위로 리오 라이언스를 뽑았고 국내 신인드래프트에선 전체 2순위를 얻어 장신 빅맨 김준일을 지명한 것은 희망적이었다. 이상민 감독은 공격적이고 빠른 농구를 컬러로 내세우며 승부수를 걸었다.

삼성은 개막 후 7경기를 1승 6패로 불안하게 출발했다. 라이언스가 지나치게 외곽 지향적인 플레이로 빅맨의 역할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조직력이 흔들렸다. 그나마 골밑에서 궂은 일을 해주던 키스 클랜턴은 발가락 부상으로 어센소 엠핑으로 교체됐다. 이상민 감독은 라이언스를 스몰 포워드로 돌려서 득점력을 살리고, 신예 김준일을 주전 센터로 기용하는 전술변화가 성공을 거두며 3연승의 상승세를 달리기도 했다.하지만 김준일이 독감증세가 악화되며 3경기 연속 결장한 사이 팀이 다시 추락했다.

삼성은 경기당 81.1실점으로 최다실점을 허용하고 있다. 리그에서 80점대 실점을 허용하고 있는 팀은 삼성뿐이다. 득점(71.9)보다 약 10점 이상을 상대에게 더 내주고 있다. 리바운드 역시 9위(34.2)에 불과하다. 경기 템포 자체는 빨라졌지만 골밑 장악과 득점력에서 열세이다보니 오히려 상대에게 더 많은 공격 기회를 주는 비효율적인 농구가 되고 있다.

이상민 감독은 개인 능력과는 별개로 감독직을 맡은 시기가 다소 이른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2년간 김동광 전 감독 밑에서 코치를 거치며 감독 수업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현재 삼성은 경험이 부족한 초보 감독의 시행착오를 기다려 줄 만큼 여유있는 상황이 아니다. 공격적이고 빠른 농구를 추구한 것 자체는 좋았지만 문제는 삼성의 선수 구성이 이상민 감독이 원하는 스타일과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삼성은 현재 각 포지션에서 경쟁팀에 우위를 점할 만한 곳이 하나도 없다. 특히 가드진은 최대 약점으로 거론된다. 김승현-황진원의 은퇴 이후 더욱 취약해진 가드진은 이정석이 전성기가 지난데다 박재현까지 부상을 당하며 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상민 감독의 현역시절만 해도 가드왕국으로 통했던 삼성이지만, 이제는 박빙의 승부처에서 오히려 가드가 경기를 망치는 확률이 가장 높은 '가드지옥'이 되어버렸다.

빅맨과 포워드진은 상대적으로 가용 자원은 풍부하지만 김준일을 제외하고 확실한 붙박이 주전으로 믿고 기용할 만한 선수는 없다. 산전수전 다 겪은 김동광 전 감독도 고전을 면치못했을 만큼, 지금으로서는 단기간에 팀을 재건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삼성은 이번주 SK, 오리온스를 연이어 상대한다. KCC는 모비스를 만난다. 두 팀 모두 상위권팀을 상대해야 하는 험난한 일정이다. 허재와 이상민 감독 모두 구단의 신뢰가 두텁다. 하지만 팀의 연패 사슬과 부진을 빨리 극복하지 못하면 선수시절의 명성에도 흠집이 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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