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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 없었던 원더스, 끝내 동반자도 못 됐다

3년간의 아름다운 도전... 원더스의 '기적'은 계속되어야 한다

14.09.12 10:27최종업데이트14.09.12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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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12일 김성근 고양 원더스 초대 감독이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고양 원더스 창단식에서 유니폼을 입은 뒤 허민 구단주(왼쪽)과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무명의 선수가 화려하게 비상할 수 있는 '야구 사관학교'를 지향하며 내일의 국민타자, 내일의 국민투수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던 고양 원더스(이하 원더스)의 아름다운 도전이 3년 만에 멈추었다.

야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벤처기업을 통해 얻은 성공의 결실을 사회에 돌려줄 방법으로 독립야구단 창단을 선택했던 허민 구단주는 원더스를 창단하며 "기회를 잃고 좌절했던 선수가 불굴의 의지로 재기하고 화려한 1군 무대에서 스타로 발돋움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국민들에게 이보다 더 멋진 희망의 선물은 없을 것"이라며 "한 명의 선수만이라도 프로에 갔으면 좋겠다"라는 작은 소망도 드러냈다.

원더스의 초대 사령탑이자 마지막 사령탑이 되어버린 '야신' 김성근 감독 또한 "여기 있는 선수들이 모두 프로에 진출해 이 구단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라며 지도자로써 포부를 밝혔고 원더스에서 새로운 기회를 얻은 선수들은 벼랑 끝에 서서 마지막 한 조각 희망을 갖고 매일같이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고된 훈련을 견뎌냈다.

그리고 2012년 퓨처스리그(프로 2군) 팀과의 첫 교류전에서 원더스는 20승 7무 21패 승률 0.488를 기록하며 잃어버렸던 자신감을 되찾았고 2013년 27승 6무 15패 (0.643), 2014년 43승 12무 25패 (0.632)를 기록했다. 6할이 넘는 승률에서 알 수 있듯 원더스는 퓨처스리그 팀을 압도하며 창단초기 경기력에 의구심을 가졌던 프로구단들의 눈길마저도 돌려놓았고 이는 곧 원더스 선수들의 프로구단 진출로 이어졌다.

원더스는 2012년 7월 이희성(LG)을 시작으로 그해 5명, 2013년 12명, 2014년 5명 등 총 22명의 선수를 프로무대로 보냈다. 지난 8월에 열린  2015 신인지명회의에서 정규식 선수가 독립구단 최초로 프로구단의 지명을 받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원더스는 코치(4명)와 프런트(1명) 직원 까지도 프로구단에 진출시키며 야구사관학교로서의 역할을 다 했지만 KBO와 프로구단으로부터는 인정받지 못한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창단 권했던 KBO와 프로구단, 그런데...

돌이켜보면 허민 구단주가 원더스를 창단할 때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IT업계에서 성공한 돈 많은 벤처사업가가 사회 환원을 빌미 삼아 자신이 좋아하는 야구단을 운영하는 것으로 받아들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 해체할 것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이 사령탑으로 부임하며 허민 구단주의 야구에 대한 열정과 진정성을 서서히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원더스의 창단 취지에도 공감하게 되었다. 김성근 감독 또한 계속되는 프로구단의 러브콜을 뿌리치고 3년 내내 선수들과 동거동락 하며 열정적으로 선수들을 지도했고 기대이상의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독립리그가 없는 독립구단의 존재 이유는 여전히 물음표였다. 독립구단의 창단을 제안했을 뿐 뚜렷한 운영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KBO와 프로구단이 독립구단 운영에 대한 부담을 떠안지 않을 것이란 의견은 지배적이었고 이 같은 우려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실전만큼 좋은 훈련은 없다'라는 말처럼 선수들은 실전을 통해 자신의 단점을 빨리 찾아내고 경기력도 끌어올릴 수 있지만 창단초기 뚜렷한 운영방안이 없었던 KBO와 프로구단들은 원더스의 경기력을 빌미삼아 쉽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결국 원더스는 창단 첫 해 퓨처스팀과 겨우 48경기를 하는데 만족해야만 했고 대학팀과의 연습경기를 통해 부족한 실전경험을 만회하기는 했으나 경기력 부분에서 대학리그와 퓨처스리그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었다.

야구사관학교를 자처하며 프로구단 선수 공급 역할도 마다하지 않은 원더스 입장에선 퓨처스리그 팀과의 경기수 확대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또 다른 독립구단이 창단되지 않는 한 경기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 원더스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퓨처스리그 진입을 희망했다.

그러나 원더스가 지향하는 꿈과 KBO와 프로구단이 원더스를 바라보는 시각은 서로 달랐고 이는 결국 원더스의 해체로 이어졌다. 원더스는 성과를 바탕으로 당당하게 퓨처스리그 가입을 희망했지만 KBO와 프로구단들에게 원더스는 선수공급의 또 다른 창구이자 외인구단일 뿐이었다.

열정에게 기회를, 지켜주지 못한 독립야구단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이 11일 경기도 고양시 국가대표 야구훈련장에서 열린 선수단 미팅에서 팀 해체 결정을 선수들에게 알린 뒤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다. ⓒ 연합뉴스


우리 사회가 그늘진 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땀 흘리는 사람들과 약자를 배려했던가. 모두가 화려함을 좇을 뿐 약자를 생각하거나 배려해주는 모습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어쩌면 지난 3년 동안 원더스에게 필요했던 것은 단순한 응원이나 돈 몇 푼의 후원이 아닌 진심어린 관심이었을 수 있다.

매일 매일 이어지는 프로야구만큼의 관심은 아니더라도 원더스 선수들이 뛰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고 선수들의 열정에 진심어린 박수를 보냈던 팬들이 더 많았다면 허민 구단주도 원더스를 포기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가혹하기만 했던 IMF시대 취업난과 경제위기를 견뎌내고 어느덧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어 이 사회의 중심에 서있는 1982년 프로야구 원년의 어린이 팬들에게 원더스는 대기업 위주의 성적지상주의에 물든 이 사회와 비슷한 프로야구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작은 희망과도 같았다.

독립리그 없이 만들어진 독립야구단 원더스의 도전을 무모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희망을 안겨줬다. 그들은 지난 3년간 자신들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 매일 굵은 땀방울을 흘렸던 원더스 선수들의 위대한 도전과 열정을 빼앗아갈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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