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디태치먼트>의 한 장면. 아이들을 '바꾸려는' 강압적인 교육 속에서, 우리에게 남는 것은 어쩌면 폐허 뿐인지도 모른다.
(주)프레인글로벌
바스는 자신이 맡은 학급의 학생들에게 강압적인 태도로 명령하듯이 지시하지 않는다. 그 덕에 학생들은 느리게나마 조금씩 변해간다. 물론 영화라고 해서 간단하고 드라마틱하게 아이들의 태도가 달라지는 억지스러운 해피엔딩을 그려내지는 않는다.
<디태치먼트>(detachment)는 영화 제목처럼 '무심'하고 '분리'된 듯이 영화 속 상황을 우리들이 바라는 모습과 떼어놓는다. 다만 아이들에게 '강요'가 아닌 '공감'으로 서서히 다가가는 선생 바스의 모습에서는 분명 배울 점이 있지 않을까. 또한 가정과 학급에서 소외된 상황을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자살하는 여학생의 모습에서 우리의 사회가, 그리고 학교라는 공간이 아이들에게 어떤 대우를 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결국 어른들의 권위주의와 '성인-청소년'으로 선을 그어놓은 서열의식을 지켜내고자 만든 '강압적인 교육'이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영화가 보여주는 셈이다. 아이들을 어른들의 입맛에 맞게 '바꾸려는' 교육방식 속에서 우리에게 남는 것은, 어쩌면 그저 폐허뿐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디태치먼트>의 미덕이라면 그런 편견을 지워놓는다는 점이다. 학생들이 아이라고 해서 성인보다 미성숙하고, 그렇기 때문에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간섭해도 정당하다는 잘못된 생각 말이다. 영화 속에서 선생이든 학생이든 누구나 자신만의 고민으로 괴로워하고 방황하는 모습은, 결국 우리 모두가 서로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영화 <디태치먼트>가 미국의 교육을 바라보듯이, 한걸음 물러서서 한국의 교육현실을 바라보자. 우리는 과연 학생들에게 어떠했나? '이게 다 너희들을 위한 것'이라며 아이들을 성적만능주의 경쟁 속으로 떠밀고 학교가 싸움판이 되어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았나? 그래서 성적이 오르고 좋은 대학에 진학하면 '성공'이라며 치켜세우지 않았던가? '어떤 아이로 자랐는가' 하는 관심은 다른 과목들과 함께 묻어두고, 수치로 알아보기 쉽게 드러나는 국영수 점수에만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나?
그래서 한국의 학교는, 그 아이들이 자란 우리 사회는 더 살 만한 곳이 되었을까? 마지막 질문에 쉽게 고개를 끄덕이고 웃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상태이지 않은가. 이제는 솔직해지자. 우리는 지난 세월 동안 어른들의 방식으로 학생들을 재단하고, 그 아이들에게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우리 욕망을 투영하는 것을 교육이라 불러왔다. 초라하고 부끄럽게도 말이다.
지난 4일 지방선거에서 진보교육감이 대거 당선된 것을 두고 보수언론은 '여도 야도 아닌 전교조의 승리'라며 당선자들의 업무가 시작되기도 전에 공포감을 조성한 바 있다. 하지만 진보교육감들의 교육공약은 그들의 말처럼 학생들을 좌우로 갈라놓거나 강압적으로 어느 한쪽의 사상의 주입하기 위한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다만 학생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이 들여다 보일 뿐이다.
권위가 아닌 이해를 추구하는 교육정책으로 영화 속의 '바스'와 같은 선생님이 더 많아지기를, 그래서 학생들이 더 자유롭게 자랄 수 있기를, 한국 교육에서도 희망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한 기대가 이루어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섣부른 색깔론이 아니라 비판적 지지와 응원일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