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다닐 때 '중앙미술대전'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어요. 그 당시 작품 제목은 '생생한 얼룩' 이었고요."
이정민
"여름방학이 지나고 9월께 아버지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3개월 동안 보태주겠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열심히 해보라'고 하셨어요. 다행히 92학번으로 서울대 서양화과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당시 합격생은 남녀 각각 13명. 재수하던 해만큼은 정말 최선을 다해보자는 마음가짐으로 "군대에 있을 때보다 더 열심히" 살았다는 안중경. 그는 그렇게 서울대 92학번이 됐다.
대학생이 되면 뭔가가 다 해결될 것 같고, 엄청나게 자유로울 것 같지만 막상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인생이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당시만 해도 시위가 많았다. 그는 대학교를 "회색빛"에 비유했다.
"답답한 게 대학 오면 해결될 줄 알았지만 아니었고, 뭔가 사회 구조적인 원인이 있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서클에서 책도 읽고 토론도 많이 했죠. 그림보다 오히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시위를 많이 나가게 됐어요. 대학 시절에 도서관 가서 공부하는 파와 데모하는 파, 뭔가 자유를 꿈꾸는데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파, 이렇게 세 부류가 있었습니다. 저는 '데모 같은 거 하는 거 아니지?'라는 부모님의 걱정에 특별한 조직에 들어가지는 못했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면서도 답답해하는 제3의 부류였습니다."당시 안중경은 시대적인 분위기 때문에 화실에 앉아서 그림을 그린다는 게 더 답답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가끔 데모하러 나가고 술을 마시면서, 틈틈이 닥치는 대로 책을 봤다고.
그는 서양화과 학생이었지만 '어떤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막연하게 "온 세상을 떠돌면서 그림을 그리고 자유롭게 살아야겠다"는 꿈을 꾸고 있었다.
대학교 1,2학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보헤미안처럼" 살았다는 그는 이대로 살다가는 술을 많이 마셔서 "죽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부모님 생각, 고생하는 형 생각에 군대에 가기로 했다. 육군 포병으로 군대를 다녀온 후, 그는 3, 4학년 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꾸준히 그림을 그렸다. 학교 앞 작업실 겸 집에서 그림만큼은 열심히 그렸다.
▲ "온 세상을 떠돌면서 그림을 그리면서 자유롭게 살아야겠다"는 꿈은 늘 꾸고 있었다.
이정민
"제대하고 그림을 안 그린 날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림은 항상 열심히 그렸어요. 실기실에 한 번은 들러 붓을 잡고 갔습니다. 그림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졸업을 하고 그림을 쌓아두던 그는 친구의 권유로 2001년 2월 동기 중에서는 제일 먼저 인사동 한 갤러리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다. 문학 동아리 선배들이 그림을 할부로 사주었고, 그는 전시한 그림을 판 돈 1000만 원가량을 가지고 프랑스로 떠나 1년 정도 머물면서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그림을 그렸다. 귀국해서 지인의 권유로 대학원에 진학하고부터는 매일 같이 실기실에서 그림을 그렸다.
"대학원에 다닐 때 중앙미술대전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어요. 작품 제목은 '생생한 얼룩'이었어요. 중앙미술대전, 동아미술대전, 대한민국미술대전 등이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큰 규모의 미술 대전입니다. 중앙미술대전에서 상을 받으니까 단체전 제의도, 개인전 제의도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알아봐 주시는 분들도 있고 신기했어요."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꿈꿨던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던 안중경. 그는 개인적인 작품 활동과 전시 활동 외에도 서울예술고등학교 강사로 9년 동안 일하고 있다.
▲안중경 화가가 9일 오후 서울 연희동에 위치한 자신의 화실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며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정민
화가 안중경이 추구하는 작품 세계는 어떤 것일까.
"처음에는 황량한 들판 같은 것을 많이 그렸어요. 그러다가 재료를 다루는 자체가 재미있어서 재료 탐구를 많이 했어요. '천이나 종이 등 다른 재료가 만나면 어떻게 될까' 연금술 같은 느낌으로요. 재료를 다루는 게 재밌어서 이것저것 시도했습니다. 한때는 측백나무에 꽂혀서 불타오르는 모양을 많이 그렸어요. '언젠가 사람을 그려야지' 했는데 측백나무를 그만 그려야겠다 싶더라고요. '사람을 그릴 때가 됐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는 사람만 그리게 됐습니다. 우선 해부학책 같은 것을 보고 개와 고양이를 먼저 그렸어요. 스케치북 같은 데 드로잉을 좀 하다가, 어느 정도 됐다 싶어서 유화로 사람을 그리고 있어요. 피부를 중심으로 얼굴을 그리고 있습니다."안중경은 서울대 서양화과 동문이 주축을 이루는 '앙가주망' 활동도 함께하고 있다. 앙가주망은 1년에 한 번씩 정기적인 전시회를 연다.
"장욱진 선생님의 그림을 되게 좋아하는데 앙가주망의 회원이셨어요. 기존 회원의 추천을 받으면 포트폴리오를 보고 의견을 나눈 뒤 회원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룹으로서는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단체입니다. '앙가주망'은 불어로 '참여'라는 뜻이에요. 그림으로 사회 참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취지죠."
▲"우선 사람을 계속 그릴 것 같고 제가 느끼고 파악한 제 방식대로 표현이 되기를 바란다. 그림 그리는 거 자체가 재미있고 좋아서 하는 건데 그게 사람들이 좋아해주면 다행이고 고맙지만, 평가는 저의 몫은 아닌 것 같다"
이정민
안중경 화가는 "우선 사람을 계속 그릴 것 같다"면서 "내가 느끼고 파악한 방식대로 표현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어 그는 "그림 그리는 것 자체가 재미있고 좋아서 하는 것"이라면서 "사람들이 좋아해 주면 다행이고 고맙지만, 평가는 내 몫이 아닌 것 같다"고 미소를 지었다.
안중경 화가는 마지막으로 그림을 보는 방법 한 가지를 덧붙였다.
"느끼는 대로 보는 게 맞는 거 같아요. 배경 지식이 필요한 작품도 있기는 하지만, 보통은 느끼는 대로 당당하게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숨은사람찾기⑬] 김정한 작가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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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안중경은 다음 숨은 사람으로 서울대 서양학과 동기인 김정한 작가를 추천했다.
"지금 서울여자대학교에서 일합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봤는데 항상 진지하고 열심입니다. 저보다 한 살 많아서 형이라고 부르는데, 형의 전시 중에 제일 인상 깊었던 게 타워 크레인 기사를 주제로 한 작품이었어요. 타워 크레인 기사가 생활하는 공간 자체를 갤러리에 그대로 만들어 놓고, 타워 크레인에서 생활하는 것을 영상으로 찍었거든요. 시도 자체가 좋았습니다. 김정한 작가는 진지하고 좋은 작가예요. 지금도 계속 실험적인 영상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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