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우리를 분노하게 만든 방송, 고맙습니다

[TV리뷰] 우리 사회 비춘 '궁금한 이야기 Y' '그것이 알고 싶다' 없었다면?

14.01.02 16:33최종업데이트14.01.03 14:21
원고료로 응원
"방송의 기능은 몇 가지가 있다. 오락성과 교양, 시사성, 정서순화 등이 주요기능이다. 우리 방송의 중추라 할 지상파 방송이 오락성에만 치우쳐 있다. 연말이면 온통 시상식, 축제 등 오락성 프로로 도배를 하고 있다. 일 년을 충분히 되돌아보고 새해를 설계하는 프로그램은 찾아 볼 수 없다."

2013년의 마지막 날을 장식했던 KBS와 SBS의 연기대상 시상식을 전하며 작성한 기사에 대해 한 누리꾼이 위와 같은 댓글을 달았다. 읽어 보니 공감 되는 바가 많았다.

연말이면 지상파 방송 3사의 연이은 시상식과 축제들이 파티 분위기를 만들기도 하는데, 여기에 대해서 '그들만의 잔치'라는 비판도 이젠 익숙하다. 화려한 무대 위의 조명 아래엔 스타들만 있을 뿐 밥벌이를 위해 추운 겨울바람을 뚫고 하루를 버텨내는 우리 국민들의 모습은 방송에 없다.

2013년, 우리 사회 되돌아본 두 편의 시사 교양 프로그램

SBS <궁금한 이야기 Y> 2013년 송년특집 방송 가운데 ⓒ SBS


그런 점에서 SBS 시사 교양프로그램인 <궁금한 이야기 Y>와 <그것이 알고 싶다>의 지난해 송년특집은 특별히 언급할 만 하다. KBS <추적 60분>이나 MBC < PD수첩 >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부터 갖은 외압 논란에 시달리더니, 지난해에는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과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관련 보도를 제외하면 딱히 기억에 남을 만한 방송을 내보내지 못했다.

반면 <궁금한 이야기 Y>와 <그것이 알고 싶다>는 지난해 화제를 불러일으킨 내용이 너무 많아서 모두 언급할 수 없을 정도였다. 탐사보도와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감동 코드 등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궁금한 이야기 Y>는 지난해 15%에 가까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역시 사회적인 공분을 불러일으킨 '영남제분 사모님의 이상한 외출' '가락시장의 거지목사' '인천 모자 살인사건의 진실' 등 수많은 탐사보도들이 조명을 받으며 지난해 12%가 넘는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물론 이 프로그램들이 무사히 방영될 수 있었던 이유는 청와대나 국정원 같은 권력의 심장부를 겨냥한 고발성 보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 프로그램에서 조명하는 우리 소시민들의 이야기와 그 주변의 문제들이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성질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 사회 곳곳의 어두운 모습들을 고발하며 구성원들의 각성을 불러일으킨 점에서 충분히 긍정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궁금한 이야기 Y>는 이미 지난 2011년 '낙지 살인사건'을 방송한 후, 단순 사고사로 처리될 뻔 했던 사건을 수면위로 끌어 올려 재수사가 시작되게 하는 등 사회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1심에서는 무기징역 선고가 내려졌던 사건이 항소심에서 무죄로 뒤집히기도 했으나, 사망자가 치아질환 때문에 평소 낙지를 먹지 않았다는 증언 등 몇 가지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다. 당시 방송은 제대로 된 초기수사와 부검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교훈을 남겼다.

이후 꾸준하게 오락성과 고발성 내용들이 버무려진 포맷으로 방송을 이어오던 <궁금한 이야기 Y>는 2013년에도 '냉동시신과 천사 아버지', '27개월 지향이의 죽음' 등 굵직한 사건들로 사회적인 파장과 각성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지난해 '아동학대' 문제에 대한 관심과 제도개선이 뜨겁게 논의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방송된 내용들이 불러일으킨 여론의 공분이 있었다. 결국 아동학대는 중대범죄가 됐고 가해자에게는 무기징역까지 선고가 가능하도록 법이 마련됐다.

<그것이 알고 싶다> 역시 필리핀의 한국인 관광객 납치 조직을 고발하며 신속한 정의의 심판을 요구했다. 파장이 커지자 법무부 장관이 직접 나서 현지의 범인들을 국내로 송환하도록 하는 등 6년여 동안 방치되다시피 했던 수사가 진전되는 성과를 이뤘다.

특히 재벌가의 사모님이 무고한 여대생을 청부살인 하고 그에 대한 처벌마저 제대로 받지 않고 있다는 보도는 국민들로부터 커다란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감옥에 있어야 할 영남제분 사모님의 형집행정지를 둘러싸고 검은 돈이 오고가는 뒷거래와 공모자들의 존재를 밝혀내는 등 방송은 우리사회에 아직도 '유전무죄·무전유죄'가 존재하는 현실을 고발했다.

방송 이후 사모님은 교도소로 돌아갔고 공모자들은 수사와 재판을 받는 중이며, 검찰과 법무부는 형집행정지에 대한 개선안을 마련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사건이 개선되거나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 세상...연대가 필요하다

사모님 앞에서는 관대했던 법이 가진 것 없는 한 소년을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범인로 몰아 10년 이상을 복역하게 만든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했다. 사건 당시 현장 목격자의 증언과 또 다른 용의자를 수사했던 경찰이 존재함에도 재수사는 이뤄지지 않았고, 범인으로 몰려 옥살이를 했던 청년은 사망자의 1억이 넘는 보험금을 물어줘야 하는 처지에 자살까지 기도했다. 방송 이후 익산 경찰서는 사과하는 척만 했다는 비난 여론에 또 다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한해, 우리 사회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각박한 사회에 교훈을 주는 이웃들의 따스한 이야기부터 법을 조롱하며 불법을 저지르고 다니는 가진 자들의 행태들, 그 아래서 고통 받고 신음하는 소시민들의 모습들까지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제 2014년 새해가 시작됐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런 현실의 연장선 위에 서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송년특집 제목처럼 세상은 저절로 좋아질 수 없는 법이다. 방치하면 썩어들어 가고 어디선가 불법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은 지난해를 돌아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부패하고 잘못된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은 저절로 해가 바뀌는 달력의 시간이 아니다. 관심과 분노, 불의에 저항하며 힘을 모으는 연대다. 

한편, 지상파 방송국들이 시끌벅적하고 화려한 연기대상 시상식과 축제를 여는 동안, 한 남자가 칼바람이 부는 서울역의 고가 도로 위에서 "박근혜 사퇴"를 외치며 분신했다. 고가도로에는 '박근혜 사퇴', '특검실시'라고 적힌 플랜카드가 펄럭였다. 남자는 유서를 통해 정부를 비판하며 "두려움은 내가 안고 갈 테니 국민들이여 일어나라"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진실한 사회와 정의로운 나라를 꿈꿨을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것이 알고 싶다 궁금한 이야기 Y 낙지 살인사건 영남제분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