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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처참한 학살사건, 왜 외면하는지 궁금했다"

[인터뷰] 영화 '청야' 김재수 감독, 귀농 결심하고 떠났다가 거창사건을 만나다

13.12.31 11:22최종업데이트13.12.31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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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청야>의 메가폰을 잡은 김재수 감독. ⓒ 마노엔터테인먼트


2009년 6월 25일, 김재수 감독은 정든 충무로를 뒤로 한 채 귀농을 결심하고 경남 거창군 신원면으로 내려갔다. 한데 귀농을 결심한 김재수 감독이 하나 몰랐던 게 있다. 신원면이 과거 피로 물든 지역이었다는 것.

6.25 당시인 1951년 2월 9일부터 사흘간 국군은 공산당 부역자를 색출한다는 명분 아래, 신원면 일대 주민을 모아놓고 총질을 시작했다. 719명의 목숨을 앗아간 거창양민학살사건이다. 시신의 주위에 모여든 까마귀 떼가 3년 동안이나 토실토실했다고 하니, 당시의 참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을 터.

하지만 광주민주화항쟁이나 제주 4.3과는 달리 거창양민학살사건은 아직까지도 국가적인 사과나 배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역사의 큰 상처로 남아있다. 거창 양민 학살 사건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조명한 영화 <청야>의 메가폰을 잡은 김재수 감독을 20일 여의도에서 만났다. 

- 거창양민학살사건에 관심을 기울인 계기를 들려 달라.
"용어 정리부터 할 필요가 있다. 거창 '민간인' 학살사건으로 사건을 정정해야 하지 않을까. 충무로에서 영화 활동을 하다가 거창으로 귀농을 했다. 한데 귀농한 지역이 거창사건이 일어난 지역이었다. 거창에서는 거창사건이라고 하지 않고 '신원사건'이라고 부른다. 거창 사람들이 거창사건을 외면하려 하다 보니, 신원면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의미에서 신원사건이라고 부른다.

거창 사람들이 왜 양민학살사건을 외면하려 하는지 궁금했다. 알고 보니 연좌제를 부담스러워 해서다. 1980년대 전두환 군사 정권까지 암묵적인 연좌제로 연루시켰다. 몇 십 년 동안 연좌제로 괴롭힘을 당하다 보니, 같은 거창 사람이라도 신원면의 사람은 멀리하려는 경향이 생겼다. 거창에서 자란 학생도 거창양민학살사건을 모른다. 농사짓는 것도 중요했지만 영화를 통해 거창사건을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 거창 양민 학살 사건이 일어난 장소인 줄 모르고 귀농했다가 충격적인 사건을 접하고는 영화를 만들었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청야>를 찍기 위해 거창으로 내려간 셈이다.
"지역민의 오해를 살 법한 부분이기도 하다. 거창군에서 영화 제작비(1억 2500만 원)로 큰 돈을 지원했다. 거창의 문화예술인에게 지원되어야 할 돈을 영화 제작비로 받았기에, 제가 밥그릇을 빼앗아가는 걸로 오해를 살 수도 있다. 영화를 찍기 위해 귀농이라는 핑계를 대고 내려왔다고 보는 시각도 있었다.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오해 아닌 오해를 받았다."

"잊혀진 역사는 반복된다...아픔 있었다는 것 알아야"

영화 <청야>의 한 장면. ⓒ 마노엔터테인먼트


- 영화에 비석 장면이 등장한다.
"학살당한 양민을 제 때 묻지 못했다. 사건이 일어난 후 3년 만에 묻으려고 하니 유골을 분간할 수 없었다. 뼈가 큰 걸 모아서 남자 합동묘를 만든다. 중간 크기의 뼈들을 모아서는 여자 합동묘를 만들고 작은 뼈들은 어린이들 뼈라 묘를 만들지 않고 비석을 세운다.

4.19 혁명 때 거창 유족들이 억울한 죽음에 대해 보상해달라고 일어섰다. 유족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비석을 세웠다. 1년도 안 되어 5.16 군사정변이 일어났는데, 군인들이 봉분을 파헤치고 비석을 땅에 파묻었다. 피해의식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 학살 사건 장면은 영화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했다.
"주인공인 지윤(안미나 분)은 거창에 내려왔다가 할아버지의 숨겨진 진실을 하나씩 찾아가는 인물이다. 극 중 애니메이션은 거창양민학살에 대한 증언을 듣고 머릿속에서 형상화한 장면이다.

어린이나 학생은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젊은 세대들에게 친숙하게 접근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 애니메이션으로 거창 사건을 알게 되면 '거창에서 이런 일이 있었구나' '앞으로 이런 비극이 두 번 다시 일어나면 안 되겠구나' 하는 지의식이 싹틀 게 아니겠는가."

"유족분들이 고백하는 장면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한다. 유족들이 고백할 때 감독은 원래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봐야지 감정이입하면 안 된다. 그런데 그 고백을 들으면서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 ⓒ 마노엔터테인먼트


- 영화에 삽입된 거창양민학살사건의 생존자들 증언이 인상적이다.
"거창사건 당시 생존한 얼마 되지 않는 유족이다. 유족분들이 고백하는 장면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한다. 유족들이 고백할 때 감독은 원래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봐야지 감정이입하면 안 된다. 그런데 그 고백을 들으면서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신원초등학교 전교생 23명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영화 마지막에 있다. 당시 신원면에서 학살당한 양민 중에는 초등학생 또래의 어린이도 있었다. 신원초등학교 전교생이 노래 부르는 장면을 촬영할 때 학살사건 당시 희생당한 어린이의 비명소리가 겹쳤다. 이때도 눈물을 글썽였다."

- 영화를 만든 감독의 입장으로 관객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인천 상륙작전이 있기 전까지 우리 국토의 많은 부분은 3개월 동안 인민군의 지배 아래 있었다. 인민군에게 부역한 민간인의 개념을 되짚을 필요가 있다. 인민군이 총부리로 위협하며 밥을 달라 하고 옷을 달라 하는데 주지 않을 민간인이 어디 있겠는가.

거창사건 당시 부역에 가담한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도망갔다. 도망가기 힘든 부녀자와 할머니, 어린이가 집에 남는 경우가 많았다. 좌우라는 이데올로기가 결부되지 않은 양민을 국군이 거창에서 학살했다. 하지만 국가적인 차원에서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가적인 사과 하나 없는데 어떻게 화해와 용서를 할 수 있겠는가. 거창사건 특별법을 국회위원 33명이 국회에 계류시켰다.

거창사건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서 대부분의 사람이 모르는 우리 역사의 처참한 사건을 되새김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억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잊혀진 역사는 반복된다. 역사가 잊혀지면 안 좋은 역사는 반복될 수 있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대한민국에서 이런 역사의 아픔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은 마음이다. 영화관이 아닌 IPTV를 통해서라도 반드시 보고 역사의 아픔을 자라나는 세대들이 알아주었으면 한다."

청야 거창양민학살사건 김재수 제주 4.3 신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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