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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배우다’...'배우' 그 이상을 보여준 이준

[영화리뷰] 이준이 연기로 채운 영화'배우는 배우다'의 완성도

13.11.18 15:52최종업데이트13.11.18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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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4일 개봉한 영화 <배우는 배우다>의 한 장면. 주인공 오영(이준 분)이 마네킹을 보며 연기를 하고 있다.

▲ 10월 24일 개봉한 영화 <배우는 배우다>의 한 장면. 주인공 오영(이준 분)이 마네킹을 보며 연기를 하고 있다. ⓒ (주)김기덕필름


<오마이스타>는 스타는 물론 예능, 드라마 등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시민기자들의 리뷰나 주장을 폭넓게 싣고 있습니다. 물론 그 어떤 반론도 환영합니다. 언제든지 '노크'하세요. <오마이스타>는 시민기자들에게 항상 활짝 열려 있습니다. 편집자 말 

극과 현실을 혼동하는 연기 초보 오영(이준 분)은 연극 무대 위에서 자신의 감정에 취해 상대 여배우의 목을 사정없이 졸라댄다. 이 광경에 놀란 감독과 스태프는 무대로 뛰어나가 그를 말리고 순간 공연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공연을 망친 후, 감독은 그에게 연기의 '연'자도 모르는 '돌아이'라고 힐난한다. 그래도 오영은 연기가 좋다. 자신이 하고 싶은 연기를 할 수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다. 매니저 김장호(서범석)가 그런 오영의 매력을 알아보고 같이 일할 것을 제안한다. 처음에는 제안을 거절하던 오영도 스타가 되지 않고서는 원하는 연기를 할 수 없는 것이 이 바닥의 생리라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닫고는 매니저의 손을 잡는다. 한순간에 단역에서 조연으로 급부상, 오영은 주연보다 주목받는 연기로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다.

극과 현실을 혼동하는 무명 배우 오영처럼 영화도 극과 현실을 뒤섞는다. 영화는 타이틀 롤을 띄우기 전까지, 극장 밖에서 마네킹에 말을 거는 오영과 실제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하고 있는 오영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준다. 이때 희한한 것은 무대에서 오영은 실제상황처럼 몰입해 연기를 하는 느낌인데, 반대로 극장 밖에서 오영은 마네킹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누가 봐도 연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거나, 미쳐 보이거나 한다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한 아이가 휴대전화 카메라로 오영을 찍고 있다. 영화는 이 장면을 통해 '무대'와 '카메라'라는 장치의 존재가 배우의 연기를 '진짜 연기'로 보이게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영화 중반에도 이와 비슷하게 연출된 장면이 한 번 더 나온다. 오영이 연기를 못하는 여배우(민지오 분)와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인데, 둘은 투덕거리다가 생뚱맞게 차에서 성관계를 맺는다. 교묘한 편집은 이를 영화가 아닌 실제상황처럼 묘사한다. 진짜처럼 한바탕 구른 둘이 차에서 내리면 감독이 컷 사인을 주고 스태프들이 따라붙는다. 이 시퀀스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이 둘이 찍는 영화의 제목 역시 '배우는 배우다'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다.

영화는 이처럼 극과 현실을 섞어놓은 장면을 통해 우리의 인생도 한 편의 영화와 같고 우리 역시 저마다의 영화에서 연기를 하는 배우와 다를 바 없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각자의 영화 안에서 우리 역시 배우다"

영화는 연기만을 순수하게 좇던 무명 배우 오영이 '인기'라는 독을 맛보게 되면서 순수했던 본질을 잃고 타락하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극 초반의 무명 배우 오영이 선보인 날 것 그대로의 거친 매력은 유명 배우 오영이 되면 술에 취해 부리는 객기로 변질된다. 또, 하기 싫은 것은 안 하겠다고 패기 좋게 말하던 그의 '깡'도 더러운 뒷거래가 난무하는 약육강식의 장막 안에선 그를 '깽'하게 만들 뿐이다.

10월 24일 개봉한 영화 <배우는 배우다>의 한 장면. 조직폭력배 두목으로 등장하는 카메오 마동석과 모종의 거래를 위해 오영과 마주앉아 있다.

▲ 10월 24일 개봉한 영화 <배우는 배우다>의 한 장면. 조직폭력배 두목으로 등장하는 카메오 마동석과 모종의 거래를 위해 오영과 마주앉아 있다. ⓒ (주)김기덕필름


영화는 무명의 오영이 인기를 업고 스타가 돼가는 과정을 비추면서 연예계의 추악한 이면을 하나씩 까발린다. 배우 캐스팅을 뒷거래, 역할을 따내기 위해 접대를 하는 배우들, 스타가 되지 못해 술집에서 생계를 잇는 여자 등등. 한바탕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불편한 진실들이 죄다 오영의 주변에 득실거린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영화가 이러한 상황들을 특별한 개연성 없이 나열만 한다는 점에 있다. 특히 조직폭력배 두목으로 분한 마동석과 오영이 붙는 장면은 '카메오 소비용' 장면으로만 보일 뿐 극 전개에 어떠한 도움을 주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이외에도 강박적으로 거칠고 세게 연출된 장면들이 눈에 거슬리기도 하는데, 부러 과장된 세계를 구현해 현실을 가리고 싶었는지 아니면 현실은 이보다 더 끔찍하기에 최대한 과장을 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그런 장면들의 등장으로 영화 전체가 애매모호해진 구석이 있다.

마찬가지로 오영의 굴곡을 그리는 에피소드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면서 영화는 정작 오영의 인생을 집중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배우들의 세계가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아름답지 않다는 역설에 무게를 두고 싶은 것인지를 확실히 말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오영에 집중하면 오영의 역할을 연기한 이준만 보이고, 영화 내용에 집중하면 빤히 알고 있는 연예계의 실상만 보인다.

오영을 연기한 이준은 이 영화의 부족분을 충분히 채웠다. 엠블랙의 이준, <우리 결혼했어요>등의 예능 프로그램 속 이준만 보이지 않아도 갈채를 보낼 작정이었는데, 이준은 그 이상을 해냈다. 첫 주연인데다가 거의 모든 장면에 등장해야 하는 부담감을 짊어졌음에도 그의 연기는 딱히 흠 잡을 데 없이 훌륭했다. 이준 외에도 의리 있는 친구이자 듬직한 매니저를 연기한 강신효와 악랄한 매니저 역의 서범석도 매력있는 연기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극 중 오영은 자신이 발을 들인 이 세계가 되레 자신을 잡아 삼킬 것 같을 때마다 과거를 찾는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친구를 찾고, 연극 무대를 찾아가는 것은 더러운 세계에 길들여진 자신을 부정하는 행위이면서도 본래 연기만을 좇던 순수성을 회복하고 싶은 의지를 나타낸다. 결국 오영이 나락으로 떨어졌음에도 다시 배우라는 이름으로 현장에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의지가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여배우(서영희 분)가 뱉은 단 한 줄의 대사로 모든 것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오영을, 우리를 위로한다.

"우리는 항상 제자리걸음이에요"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블로그(http://jksoulfilm.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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