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너의 목소리가 들려', 기름기 쭉 뺀 이야기의 맛

[드라마리뷰] 빠른 이야기 전개+물오른 열연+법정드라마란 색다른 소재 3박자

13.07.17 09:33최종업데이트13.07.17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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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네 주인공.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배우 이보영, 이종석, 이다희, 윤상현. ⓒ SBS


<오마이스타>는 스타는 물론 예능, 드라마 등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리뷰, 주장, 반론 그리고 인터뷰 등 시민기자들의 취재 기사까지도 폭넓게 싣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노크'하세요. <오마이스타>는 시민기자들에게 항상 활짝 열려 있습니다. 편집자 말

수목드라마의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연출 조수원·극본 박혜련)가 왜 이렇게 재밌냐는 말을 자주 듣는다. 제목이 길다보니 <너목들>이라는 축약형 제목까지 마치 대명사처럼 떠돌고 있을 정도다. 하긴 시청률이 22%를 넘어섰다고 하니, 대박 드라마는 분명하다.

<너목들>이라고 누가 말하면 대화에 끼어드는 사람 중 한 명 정도는 "그게 뭐야?"라고 물어볼 법도 한데, 토를 다는 사람이 별로 없는 걸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오히려 원 제목보다 더 자연스럽게 들릴 정도라면, 이 드라마 뜯어보고 다시 조립해보는 과정이 분명히 필요해 보인다.

이 드라마의 성공요인은 한 마디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드디어 해답을 찾았다. 치킨과 맥주를 먹다가 답을 찾았다는 것이 아이러니 하지만, 이 드라마가 성공한 이유는 기름기가 쭉 빠진 데 있다는 것이다. 기름기가 알맞게 배어있는 치킨처럼, 이 드라마는 먹기 좋을 만큼 기름기가 쭉 빠졌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 빠른 이야기 전개

특히 빠른 이야기 전개가 요즘 시청자들의 눈높이와 제대로 맞았다. 최근에는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풀어내는 걸 좋아하지 않는 드라마 마니아들이 있다. 주저리주저리 아주 세심하게 원인과 결과를 설명해 주는 '친절한' 작법이 따분함을 주기 때문이다. 클라이맥스와 다음 정점에 이르기까지 중간의 이야기는 없어도, 건너뛰기를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스피디한 템포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은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상상력을 자극하는데 의외의 이점도 있다.

처음 이 드라마를 접하면 마치 세상에 선과 악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이분법적 사고를 강요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을 따뜻한 사랑과 정의, 인류애, 동료애, 모성애가 메우고 있음을 알게 된다. 물론 질투와 시기라는 감정도 드러내지만 이러한 감정은 매우 코믹하게 승화해내는 성숙함이 있다.

극 중 민준국(정웅인 분)이 국선전담 변호사 장혜성(이보영 분)의 어머니(김해숙 분)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 받고 이어 무죄로 석방된 뒤의 장면은 우리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재판과정에서 민준국의 변호를 맡은 바른생활 사나이 차관우(윤상현 분)의 고통은 시청자로 하여금 직접 사건을 수임한 변호사가 된 듯한 느낌을 주는 진정성이 있다.

다음 이야기는 무려 시간이 1년이나 건너뛴다. 기억을 상실한 초능력 소년 박수하(이종석 분)가 민준국을 살해했다는 검사의 기소과정으로 곧바로 넘어가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시청자는 이 드라마의 놀라운 스피드를 만끽하게 된다. 구구절절, 가타부타 중간 과정이 너저분하게 나열되지 않아 마치 롤러코스터를 텔레비전 앞 소파에서 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어 새로운 재판이 시작된다. 장혜성은 구치소에 있는 박수하가 기억을 상실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지난 1년간의 상세한 내용을 시청자에게 일일이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상황과 등장인물들의 행동, 즉 시나리오 상 지문을 통해 간접적으로 행간을 읽어내라고 할 뿐이다. 다분히 불친절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불친절은 고맙다. 지문을 통한 간접적 암시만으로도 시청자는 충분히 드라마에 몰입할 수 있다. 이제 시청자들은 극의 빠른 전개를 사랑할 뿐, 지루함은 저주하니까.

제대로 망가진 이보영과 심금을 울리는 윤상현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한 장면. 장혜성(이보영 분)이 차관우(윤상현 분)의 볼을 꼬집고 있다. ⓒ SBS


'허당' 국선 변호인 장혜성 역의 이보영. 그녀는 사실 이전 드라마에서 연기력보다는 예쁜 얼굴로 더 인정받고 있는 배우였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통해 이보영은 배우로 불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입지를 다졌다는 평가를 내리고 싶다. 도도하다 싶은데 허당이며, 까칠한데 매력 있다.

연기란 무엇일까? 극중 캐릭터에 몰입해 매력을 발산하는 것이라는 교과서 적인 정답이외의 것이 무엇이 더 있을까? 배우가 추함을 드러낼 줄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배우의 진정한 매력은 추함을 미학으로 승화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보영은 드디어 이 드라마에서 제대로 망가졌다. 이러한 그녀가 너무나 아름답다.

내게 심금을 울린 또 한 명의 배우는 차관우 역의 윤상현이다. 특히 장혜성이 재판을 끝낸 뒤 화장실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회상하며 울고 있을 때, 화장실 바깥에서 처절하게 울 줄 아는 그의 모습이 심금을 울렸다. 부드러우면서 강단 있는 인간의 내적인 면과 외적인 면을 작가의 지문에 따라 자유자재로 표현해 내는 '인간 악기'라고 할 수 있다.

흥미진진한 논리공방, 법정드라마의 상식을 깨다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이나 <로 앤 오더>와 같은 미국드라마를 통해 우리는 법정 드라마의 맛을 보았다. 이들이 펼쳐내는 논리의 대결을 통해 알 수 없는 법률용어의 홍수 속에서도 곧잘 드라마에 몰입하곤 했다. 내가 얼마나 내용을 이해했을까. 아마 이해도를 평가해 보면 매우 낮은 점수를 받을 것이다. 때문에 법정 드라마는 내용의 난이도를 떠나 소재의 다양함에 더 이끌린 측면이 없지 않다고 본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도 법정드라마다. 치열한 법리 공방이 전개되며 일상생활에서 접해 보지 못한 법률용어들이 난무한다. 거부감이 들어야 당연하지만 오히려 재판 장면이 길어질수록 흥미진진해지는 것은 왜일까.

국민 참여재판으로 이어지는 지난 11회의 법정 장면도 매우 길었지만, 검사와 변호사간의 배심원 마음잡기 전략과 전술은 지루하기보다 감성적 터치가 황홀했다. 검사의 치열한 증거들이대기에 맞서 국선 변호사 장혜성과 차관우가 최선을 다해 이성적, 감성적 접근을 병행하며 결국 무죄를 이끌어내는 일련의 과정은 '우리 드라마 수준이 이 정도로 높아졌구나!'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이제 드라마 소재가 다양화돼야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기존의 드라마 포맷으로는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등장은 우리도 이제 제대로 된 법정드라마 한 편을 소유하게 됐다는 의미로 여겨진다. 앞으로 4회를 남겨둔 이 드라마가 지금처럼 시청자들에게 롤러코스터를 타는 즐거움을 계속 주기를 바란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너목들 이종석 이보영 윤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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