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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어디가', 점점 무서워지는 아이들의 해맑은 독설

[TV리뷰] MBC '일밤-아빠! 어디가?',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본 '술 마시는' 아빠

13.06.24 09:53최종업데이트13.06.24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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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3일 방송된 MBC <일밤-아빠! 어디가?>에서 아이들은 토론 교실을 열어 '어른들은 왜 술을 마실까?'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23일 방송된 MBC <일밤-아빠! 어디가?>에서 아이들은 토론 교실을 열어 '어른들은 왜 술을 마실까?'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 MBC


<오마이스타>는 스타는 물론 예능, 드라마 등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리뷰, 주장, 반론 그리고 인터뷰 등 시민기자들의 취재 기사까지도 폭넓게 싣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노크'하세요. <오마이스타>는 시민기자들에게 항상 활짝 열려 있습니다. 편집자 말

서투른 솜씨지만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들을 아빠들이 정성스레 준비하는 장면은 언제 봐도 훈훈하다.

지난 23일 방송된 MBC <일밤-아빠! 어디가?>(이하 <아빠 어디가>)에서 아빠들의 요리 실력도 처음과는 많은 차이를 보였다. 재료를 가지고 응용할 줄도 알고, 보기에도 먹음직스럽게 만들어 낼 줄도 안다. 물론 보이지 않은 곳에서 엄마들의 코칭을 받은 덕분이겠지만, 아무튼 이들의 모습은 긍정적으로 여길만한 변화임은 분명하다

템플 스테이를 하면서 발우공양이라는 식사 예절을 배운다거나, 마음을 수련하는 시간을 갖는 것 등은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는가' 와는 상관없이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만한 것이기도 했다. 다소 경직된 분위기인 듯했어도, 규칙적인 생활을 공부한다는 쪽으로 생각해 보면 의미 있는 여행이었을 테다. 

잘 놀아주지도 않았던 아빠가 여행지에서 요리를 해주고, 산사에서 깍듯함을 배우는 아이들의 기특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마음은 또 한 번 정화가 됐다. 이번 주에도 변함없이 후·민국·준·준수·지아, 다섯 명의 아이들은 어른들의 힐링전도사가 되어 마음 속 묵은 때를 씻어주고 짜증과 근심으로 상처받은 부위를 살갑게 어루만져 주었다.

'아빠는 왜 술을 마실까' 열띤 토론 벌인 아이들

반면 이와는 반대로 참으로 무서운 아이들이기도 했다. '아이들의 토론교실' 에서 다섯 아이들은 '어른들은 왜 술을 마실까?' 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들의 이야기에 아빠들은 잔뜩 긴장하게 되었고, 표정관리가 제대로 안 될 정도로 얼굴이 굳어져 버렸다. 그들은 뜨끔했고 미안했으며 부끄러웠다. 아주 해맑은 모습으로 나눈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빠들에게는 더없이 충격적인 독설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민국이가 아이들에게 주제가 되는 질문을 던진다. '어른들은 왜 술을 마시는 걸까요?' 이에 가장 먼저 준수가 대답을 했다. '바보니까!' 라고.

그렇다. 말도 안 되고 어이없는 딱 일곱 살배기 아이가 할 수 있는 대답이다. 준수는 자신의 눈에 이해가 가질 않고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바보라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준수의 이 말이 그냥 넘어가지질 않았다. '바보니까? 맞다. 때로는 부어라 마셔라 해대는 우리의 모습이 실로 바보 같아 보이지 않은가!' 순간 이런 생각이 들면서 준수의 헤벌쭉 웃는 모습을 다시금 보게 됐다.

놀랍게도 '아이들의 토론 교실' 에서는 아빠들이 술을 마실 때의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공개가 됐다. 지아는 아빠가 술을 마시고 화장실에 들어가 토하는 것을 봤다고 했고, 후는 '만날'이라는 말을 반복하며 아빠가 거의 매일 술을 마신다는 것을 강조했다. <아빠 어디가>의 대부분의 아빠들은 술과 아주 친한 사이인 듯했다. '어른들은 왜 술을 마실까?'였던 주제는 '아빠들은 왜 술을 마실까?'라는 주제로 어느새 바뀌어 '아빠와 술'이라는 제목으로 열띤 토론을 벌이게 됐다.

아이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영민했다. 술이 사람에게 얼마나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민국이는 술을 많이 마시면 간이 활동을 못하고, 몸 안에 나쁜 세포들을 만들어 암에 걸리게 한다고도 했다. 비록 술 안에 병균들이 살고 있다거나, 술을 마시면 40살까지 밖에 살지 못한다거나 하는 등의 어처구니없는 낭설들도 나왔지만, 술이 건강을 해친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누구보다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다섯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아빠들이 왜 술을 마시는지에 대해서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다. 준이는 기분이 좋을 때 더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서 마신다고 했고, 습관이 돼서 마신다고도 했다. 민국이는 본인이 노력하지 않는 이상 계속 마실 수밖에 없고, 술을 마실 때 '괜찮겠지' 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도 했다. 아이들의 관찰력은 소스라칠 만큼 뛰어났다. 아이들의 토론을 지켜 본 아빠들은 모두들 '저 정도로 알고 있을 줄이야'라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당혹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아빠 어디가>의 윤후

<아빠 어디가>의 윤후 ⓒ MBC


'어른들에게는요. 술은요. 어린이들보다 더 중요한 거 같아요' 후가 한 이 말에 윤민수는 상당히 놀라는 눈치였다. 후가 그렇게 생각할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내가 지금 쟤보다 술을 사랑한다, 그런 거죠?' 답답한 마음에 윤민수는 다른 아빠들에게 질문을 던졌고, 아무도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착잡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볼 뿐이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건 그렇게 생각을 함에도 불구하고 후가 아빠를 걱정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빠가 100살까지 못 살까 봐 걱정돼요' 자신보다 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빠를, 아들은 술 때문에 오래 살지 못 할까 봐 염려하고 있다. 후의 생각은 틀렸다. 어떻게 윤민수가 아들보다 술을 더 좋아하겠는가. 그런데 후가 오해를 하고 안 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아빠를 생각하는 아들의 마음이 얼마나 극진하고 깊은지, 그걸 느끼는 순간 이미 마음은 또 한 번 뭉클해진다.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라는 말, 괜한 소리 아냐

토론이 끝나고 아이들은 아빠들을 만났다. 아빠들은 아이들에게 술을 자제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자제가 아니라 아예 끊으라고 말을 한다. 타협도 없고 절충도 없다. 그들은 가지고 싶은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던 때보다 훨씬 단호하고 고집스러웠으며 확고했다. 그만큼 술이 싫은 거다. 그 술이 자신들의 아빠를 이상하게 만드는 것도 싫고, 토하도록 만드는 것도 싫고, 건강을 위협해 오래 살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싫은 것이다.

혹시 '아이들의 토론 교실' 을 보며 '그래 너도 아빠 나이 돼봐라. 어른이 돼봐라. 그럼 이해할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는가. 그러면서 그저 철없는 아이들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치부하지는 않았는가. 그런데 우리의 마음속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정말 내 아이가 어른이 되어 나처럼 혹은 어른들처럼 흥청망청 하길 바라는가. 그렇게 되는 것이 으레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는가. 정말 그것이 '너도 그 때가 돼봐라'하며 이해를 요구할 만한 것인지 한 번 깊게 고민해 볼 일이다.

아이들의 동심을 보면서 '힐링'이 되는 것까지는 참 좋았다. 그런데 가끔씩 어른들을 뜨끔하게 하는 말과 행동을 하더니, 이번엔 작정을 하고 어른들의 '술'에 관해 거침없는 독설을 퍼부어댄다. 욕을 하고 거친 말을 하는 것만이 독설이 아니다. 나쁜 것은 나쁜 거라고 밖에 말할 줄 모르고, 싫은 것은 곧 죽어도 싫은 것일 뿐인 거짓 없고 해맑은 생각이 진짜 독설을 만들어내는 게다. 그걸로 인해 아빠들 모두가 당혹스러워서 고개를 못 들고 민망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지 않은가.

점점 아이들이 무서워지고 있다. 그들의 해맑은 독설들이 들키기를 꺼려하는 어른들의 못된 구석구석들을 낱낱이 밝히고 있다. 열 번이고 백 번이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자극적이고 흥미를 유발하는 독설보다 천만 배 듣기 좋으니까. 채찍과 당근이 언제나 겸해져야 하듯이, 아이들을 통해 '힐링'을 받았다면 그 만큼의 '쓴 소리' 도 들을 줄 알아야 한다고 여겨진다.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다'라는 말. 괜히 나온 말은 아닌 듯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블로그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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