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박근혜 대통령, 혹시 미스김에게 꽂힌 걸까

'직장의 신'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사회…미스김이 될 수 없는 이들에게

13.06.05 17:51최종업데이트13.06.05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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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종영한 KBS 2TV 월화드라마 <직장의 신>의 한 장면.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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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놀랐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은 알고 보면 '시간제 일자리'도 나쁜 것이 절대 아닌데 그 놈의 표현이 부정적인 게 문제라는 명언을 남겼다. 고용 불안정성, 열악한 노동환경, 저임금, 부족한 복지체계로 모든 양육과 노후의 부담을 가족이 짊어져야하는 사회구조. 대체 무슨 수로 이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고도 비정규직이나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것일까?

혹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TV 드라마를 너무 보다가 그 속의 특정 인물에 '꽂혀서' 저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인기리에 종영한 KBS 2TV 월화드라마, <직장의 신> 속 미스김 말이다.

을 속의 슈퍼 갑, 미스김의 등장 

<직장의 신>은 갖은 직장 내 애환을, 특히 비정규직의 솔직한 삶과 처지를 그려 직장인들의 깊은 공감을 얻었다. 그런 맥락에서 사람들이 가장 이입한 캐릭터는 극을 이끌어가는 화자, 정주리(정유미 분)였다. 그녀는 3개월짜리 비정규직으로 월급은 고작 1백만 원 받지만 갚아야할 학자금과 이자는 산더미다. 그러나 지방대 출신에 스펙도 형편없는 그녀에게는 이 계약직 자리도 감지덕지, 재계약에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지난 21일 막을 내린 KBS 2TV 월화드라마 <직장의 신>에서의 미스김(김혜수 분). ⓒ KBS


그러나 드라마에는 비정규직 주제에 감히 '을'이 아닌 그녀, 미스김(김혜수 분)도 등장한다. '국내 최초의 자발적 비정규직'인 그녀는 특정 회사와 단 3개월만 계약하고, 계약기간이 끝나면 미련 없이 직장을 떠나 외국에서 쉬다가 돌아온다. 재계약에 미련이 없기에 그녀는 회사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그녀는 직장 회식에 대해 시간 외 근무 수당을 청구하고, 사내 체육 대회 피구 경기에서는 회사 상무 얼굴에 주저 없이 강슛을 날린다.

그녀가 이런 '갑질'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그녀가 모든 회사가 너나할 것 없이 재계약을 하고 싶어 하는 인재이기 때문이다. 항공기 정비사 자격증·구조요원 자격증·살사댄스 자격증·1종 대형 운전 면허증·미용사 자격증·크레인 기사 자격증…. 그녀는 딱히 굉장한 학력이나 집안 배경도 없어 보이지만, 어째서인지 엄청나게 많은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며, 그 덕에 매 회마다 특수 기술로 위기에 빠진 동료들과 회사 업무를 구출해냈다.

미스김을 꿈꾸지만, 우리는 대개 정주리

박근혜 대통령은 모든 직장인들이 유사 미스김처럼 되어야한다는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녀는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형 경제상에 아주 잘 들어맞는다. 인재는 유능하고, 고용은 유연하다. 미스김은 못 먹고 못 살겠다고 징징거리며 복지 어쩌고 하는 떼를 쓰지도 않고, 인생을 즐기는데 열중이니 돈 없다고 허리띠를 졸라매며 소비를 위축시키지도 않는다.

물론, 평범한 직장인 시청자들에게도 미스김은 마찬가지로 꿈의 인재상이다. 3개월만 일하고 나머지 몇 달은 놀고 싶은 대로 외국에서 놀고 온다니, 직장 상사에게 싫으면 "노(No)"라고 말할 수 있다니! <직장의 신> 팬들은 월화 밤 10시가 되면 집에 돌아와 꿈속의 자신인 미스김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다음 날 오전 6시가 되면 현실의 자신인 정주리로 돌아가 직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직장의 신>에서 계약직 사원 정주리 역을 맡은 정유미 ⓒ KBS


그러나 사람들은 누구나 현실에서 미스김의 십분의 일만큼 닮은 인물이 되기도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녀의 비현실적인 자격증 개수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실제로 현실 직업 세계에서 '갑질'할 수 있는 자격증은 사실 따로 있기 때문이다. 또 이런 '사'자 들어가는 전문 자격증 같은 것은 사실 집안과 학벌 좋고 돈 많은 이들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기에 정주리는 이렇게 읊조린다.

"누구나 한 때는 자기가 크리스마스트리라고 생각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곧 자신은 그 트리를 밝히던 수많은 전구 중 하나일 뿐이라는 진실을 알게 된다."

<직장의 신>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사회

그런데 이 사회의 힘 있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미스김처럼 살라고, 그게 안 되면 사는 게 힘들어도 경제가 어려우니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대통령의 시간제 일자리 옹호론도 따지고 보면 그 연장선이다. 하지만 물가는 계속 오르고 학자금 대출은 쌓여 있는데, 대체 시간제로 일하고 남는 시간에 우리더러 어디 가서 어떻게 무슨 일을 해 돈을 벌란 말인가.

이런 고용 모델은 영미에서 시작되어 한국에도 IMF 이후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이 나라가 영국이나 유럽 여러 나라보다 훨씬 더 복지나 사회 안전망이 부실하다는 점은 이 모델의 비극성을 더 극적으로 만들었다. 많은 노동자들이 잔혹한 모양새로 잘려나갔고, 그들은 비정규직이 되거나 동네의 숱한 피자·치킨집 사장님, 혹은 택시와 대리 운전기사님이 되었다. 어떤 이들은 아예 지하철 역사 로비나 이 사회의 잘 보이지 않는 어딘가로 사라져갔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는 지난 16년의 세월은 이 사회가 일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잔인하게 고공첨탑 여기저기로 몰아세울 수 있는지, 젊은이들을 얼마나 팍팍한 절망 속으로 던져 넣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아마 이런 사회적 변화가 없었다면, 애초에 일본으로부터 <직장의 신>의 원작인 <파견의 품격>이 수입될 리도, <직장의 신>이 대중적 인기를 얻었을 리도 없었을 것이다.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다르게 다가왔을 미스김의 이런 대사는 이제 솔직한 우리의 가슴 속 말이 됐다. "회사, 소속, 조직 같은 것은 아무 것도 해주지 않습니다. 믿을 것은 나 자신 뿐입니다."

조직의 칼날, 장규직도 예외는 아니다

KBS <직장의 신> ⓒ KBS <직장의 신>


물론 이런 사회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미스김과는 반대로 회사·소속·조직을 갈구하고 그것의 소중함에 집착하게 되기도 한다. 미스김을 좋아하는 장규직(오지호 분)은 그렇게 산다. 그는 회사 없이는 못 사는 그런 인물이며, 회사의 질서에 복종하고,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해 열심히 일한다. 그는 단지 먹고 살기 위해 회사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자신의 삶이자 터전이 되어 주리라 믿고 헌신한다. 최소한 정규직에 한해서라도 말이다.

그러나 그의 이런 공동체주의적 애사심은 비정규직이라는 낱말이 없던 경제 호황의 시대, 연공서열제도와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더 익숙하던 시대에 어울리는 것이었다. 그의 바람과 현실의 간극은 드라마 끝부분에서 비정하게 드러난다. 회사는 유능한 미스김에게는 계약 연장을 해달라고 매달리는 반면, 정작 미스김에게 평소 애사심을 설교하던 장규직은 지방으로 좌천시켜버린다.

회사는 계약직 정주리가 낸 기획안을 본인의 것으로 훔쳐오라고 장규직에게 지시하지만, 장규직이 결국 양심상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토록 헌신한 그라고 할지라도, 회사는 단 한 번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결국 자신의 책상의 모든 짐을 박스에 정리해 담고는 애써 동료들에게 웃으며 자리를 비운다. 그의 그 작은 박스 안에는 그가 회사에 바쳐온 모든 시간과 열정이 담겨있다. 그러니 휑하니 비워진 그의 책상을 우리 모두는 쓸쓸하게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정규직이라고 해도 비정한 이윤과 회사의 논리 앞에서는 결국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직장이 버리거나, 방패막이가 되어 주거나 

미스김과 장규직은 현실을 사는 직장인들의 분열되고 모순된 두 개의 자아다. 우리는 직장이 우리 삶을 지켜주기보다, 우리에게서 단물만 빼먹고 우리를 버릴까봐 불안해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직장이 내 삶의 방패막이가 되어 주리라는 기대를 갖고 살아남으려 전력투구 한다. 이것이 평범한 우리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처할 수밖에 없는 존재의 딜레마이다.

이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일자리를 얻거나 잃지 않기 위해 사회와 직장의 논리에 그저 굴종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히 자신의 몫을 요구하는 길도 분명 있다. 드라마에서는 비록 잠시 등장할 뿐이지만, 장규직의 어머니 진계장(이덕희 분)은 그런 선택을 했다.

그녀는 한 은행에서 십 년 넘게 일한 계약직 노동자였지만, 비정규직 보호법안의 통과 때문에 도리어 해고 통보를 받는다. 그러나 그녀는 도저히 직장을 그만둘 수가 없다. "여기 이렇게 내 책상이 있는데, 내가 어디로 가니."

KBS <직장의 신> ⓒ KBS <직장의 신>


그녀는 동료들과 힘을 모아 은행을 점거하고 파업의 머리끈을 동여매고 거리를 누빈다. 당시 은행 신참 정규직이었던 미스김도 그 자리에 진 계장과 함께 있었다. 그러나 사측이 파업에 동참한 정규직들을 함께 해고하겠다고 위협하자 진계장은 후배 미스김의 두 손을 붙잡고 대열을 이탈하라고 말한다. "너까지 큰일 나면 어쩌니"라며. 그러나 미스김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정규직, 비정규직, 그런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해요. 우린 같이 일하는데."

이 말만큼 바뀔 수 없는 진실이 또 어디 있을까. 이 말은 진 계장도, 과거의 미스김도, 장규직도, 다른 많은 등장인물들도 모두가 하나같이 하는 말이다. "같이 밥 먹고 가" "같이 일하는 동료한테 어떻게 그래요" "같이 일하는 선배잖아요"…. 회사의 논리와 의중을 떠나, 같은 곳에서 함께 부대끼며 울고 웃는 이들 사이에는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동료이다. 같이 일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우리 모두가 언제 잘릴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도. 이를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미스김은 항상 딱딱한 태도를 취하면서도 임신 때문에 계약 해지 위기에 놓인 동료를 구하고, 해고 직전까지 간 정주리를 구하고, 구조조정 대상이 된 무능력한 만년 과장까지 구하기 위해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의 미스김은 더 솔직하게 이런 진실을 당당히 마주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문제도 아닌데 비정규직 동료들을 위해 파업에 기꺼이 합류했다. 그러나 점거 중인 은행 건물 안에서 큰 불이 나 안에 있던 진계장이 숨진 그 날 밤, 그녀의 동료애는 이제 커다란 트라우마로 변해버린다. 동료와 끝까지 함께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동료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 동료를 잃어버린 절망감. 그리고 그녀는 좌절 속에서 더 이상 비정한 회사에 어떤 기대도 하지 않을 것이고, '동료' 같은 것도 만들지 않으리라 결심한다.

그러나 장규직은 어머니의 죽음을 겪으면서 정반대 결론에 도달한다. 장규직은 회사가 없으면 사람은 사람대접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그 울타리 안에 들어가고야 말겠다고,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비정규직의 멍에 같은 것은 물려주지 않겠다고 이를 악문다.

전구가 없다면 트리는 빛날 수 없다

현실에서도 이 드라마에서처럼 같은 사회적 비극 속에서 정 반대의 결론을 내리는 두 유형의 인물들을 종종 마주하게 된다. 물론 사회와 회사를 불신하든 그렇지 않든, 각 개인의 가치관을 불문하고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된 경쟁은 모두가 감내해야 하는 처지지만 말이다. (오로지 드라마는 미스김이 몇 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그 숱한 자격증을 따는 과정을 생략함으로서만, 그녀의 캐릭터가 갖는 비현실적 매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만일 드라마와 달리, 그리고 실제 역사와도 달리, 진 계장 같은 이들의 싸움이 패배가 아닌 승리로 막을 내렸다면 어땠을까. 그런 싸움들 하나하나가 승리로 누적될 수 있었다면, 우리는 이 드라마를 볼 기회는 잃었을지언정 더 살맛나는 사회에서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 24명, 그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드라마 마지막 회에서 미스김은 장규직에게 "당신 어머니는 내가 죽인 것"이라고 고백한다. 그녀의 고백에는 쌍용차 노동자의 죽음을 지켜만 봐야했던 살아남은 우리의 슬픔과 죄의식이 한꺼번에 모두 담겨있는 것만 같다. 그러나 장규직은 미스김에게 결국 이렇게 답한다. "당신 탓이 아니야."

그녀의 죽음이 미스김 탓이 아니라면, 누구의, 무엇의 탓인 걸까? 사실 우리는 모두 좀처럼 떠올리고 싶어 하지 않지만, 이미 다들 가슴으로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 드라마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정주리의 마지막 내레이션이다. "중요한 사실은 크리스마스 트리는 전구가 없으면 불을 밝힐 수가 없다는 것, 우리는 모두가 빛나는 전구다."

나는 머지않은 시기에 패배의 좌절을 딛고 우리 전구들이 다시금 일제히 불을 꺼 버릴 그 날을 꿈꾼다. 한 직장, 두 직장의 전구 몇 개들이 아니라, 더 많은 숱한 전구들이 하나로 힘차게 뭉치는 동료애를 발휘하는 그 날을 소망한다. 전구가 없다면 트리도 없다는 것을, 제멋대로 전구를 떼어내고 꺼 버릴 권리를 트리는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이 세상에 똑바로 알려주기 위해서.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빨간우체부>(redpostie.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직장의 신 드라마 비정규직 쌍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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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에서 미국 노동운동사와 한미관계를 공부했고, 지금은 노동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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