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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해? 그래, 그냥 이런 젊음도 있다

[다시 보는 영화] 대니 보일 감독의 <트레인스포팅>

13.04.14 16:59최종업데이트13.04.1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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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이런 광고가 있었다. 젊은 남녀가 손을 잡고 골목길을 급하게 달린다. 틈틈이 시계를 봐 가며 쫓기듯 달려온 그들은 어느 집의 대문 앞에 멈추고, 가쁜 숨을 고른다. 남자는 마지막으로 시계를 보고 씩 웃는다. 여자친구의 통금시간에 늦지 않은 것.

"지킬 건 지켜야지!"

'지킬 건 지킨다.' 시대를 불문하고, 이런 모습은 언제나 이상적인 청춘의 표본이 되어왔다. 즐길 줄 알지만, 정도를 지킬 줄 아는 건전함과 순수함은 바람직한 젊은이가 가져야 할 미덕이었다. 여기에 열정과 부지런함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단정하고 열정적으로 사는 청춘의 모습은 또래들에게 그야말로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반대로 젊은이들이 자신을 표현할 때, '게으름' 이나 '무기력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일종의 금기로 치부된다.

젊은 시절에 열정적으로, 그리고 적당히 자제하며 바르게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가끔씩, 그 빈틈없는 '젊음'의 전형에 피곤함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젊은이에게 게으를 자유는 없는 걸까. 이따금씩 답답함이 커질 때면, "젊은 놈이 왜 이렇게 게으르고 패기도 없어!"라는 기성세대의 흔한 질책에도 '게으른 건 성격이지, 그게 젊은 거랑 무슨 상관이야?'하는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러던 와중에,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영화를 만났다.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이 영화

▲ 영화 <트레인스포팅> 다섯명의 친구 중 세 명이 마약에 중독되어있다. 대니 보일 감독은 이들의 방황을 비난하지도, 미화하지도 않는다. ⓒ Miramax Film


철저하게 무절제하고 불건전하며, 무기력한 청춘들의 이야기. 너무도 많이 엇나가 있어서 우리는 절대로 저렇게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지만,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들의 제멋대로인 모습에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영화. 대니 보일 감독의 1996년작, 트레인스포팅이다.

마크(이완 맥그리거 분), 스퍼트(이완 브렘너 분), 토미(케빈 맥키드 분), 식보이(sick boy, 조니 리 밀러 분), 벡비(로버트 칼라일 분)는 스코틀랜드에 살고 있는 이십 대의 청년들이다. 이들은 또래들이 선망할 만큼 모범적인 인생을 살고 있지도 않고, '이유없는 반항'의 제임스 딘처럼 폼 나게 비뚤어진 것도 아니다. 다섯 중 셋이 마약중독자이며, 모두 꿈도 직업도 없다. 실업수당을 계속 받기 위해 취업공단에서 주선해준 일자리의 면접을 일부러 엉망으로 보고, 양로원의 티비를 훔쳐다 팔아 그 돈으로 마약을 맞는, 속칭 '찌질한' 인생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그런 스스로의 현실에 주눅들지 않는다. 제도권 안에 포함된 주류들을 부러워하지도 않는다. 세상에 순응하며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답이 거의 정해진 선택만을 하며 살고 있다고, 이들은 생각한다. 최신형 가전제품을 선택하고, 좋은 직장을 선택하고, 깔끔한 옷과 정돈된 생활습관을 선택하고, 알맞는 배우자를 선택해 함께 늙어가고, 결국 가족들에 둘러싸여 죽는 것을 선택하는 대다수의 사람들 속에서 이 청년들은 당당히 소신을 밝힌다. '나는 인생을 선택하지 않기를 선택한다.'

항상 더 좋은 것을 고르는 데 골몰해 있던 우리에게 있어서는 충격적인 답안이다. 이것이 가능할까 싶지만, 이들은 정말 그 말처럼 '되는 대로' 살아간다. 몰려다니며 마약을 하거나 괜히 지나가는 사람을 놀리고, 가끔은 술집의 싸움에도 휘말리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에 특정한 이유는 없다. '그러고 싶어서', 혹은 '어쩌다 보니' 하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관객도 눈살을 찌푸리기보다는 어이없는 실소를 먼저 터뜨리게 된다.

▲ 영화 <트레인스포팅> 장난감 총으로 행인들을 괴롭히는 마크와 식보이. 제도권 속에서 보호받으며 살아가는 이들을 부러워하지는 않지만, 이따금씩 그들을 괴롭히는 심술을 부린다. ⓒ Miramax Film


이 영화는 '마약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혹은 '이들의 비행은 도덕적으로 바람직한가?'에 대한 논쟁을 벌이지 않는다. 평가도 내리지 않는다. 주인공인 다섯 명의 청년은 세상의 기준으로는 건전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으나, 극악무도한 무뢰배는 아니다. 오히려 무기력하며 약에 빠져 산다는 것 이외에는, 또래의 젊은이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장난기 넘치고, 가수와 영화배우에 빠져 있으며 여자를 두고 밤새워 고민한다. 이런 모습들을 통해, 대니 보일 감독은 흔히 '한심하다고 여겨지는' 청춘들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솔직하게 보여준다.

▲ 영화 <트레인스포팅> 각자의 고민으로 머리가 복잡해진 주인공들은 교외로 나간다. '한심하게' 여겨지는 인생들이지만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은 또래들과 다르지 않다. ⓒ Miramax Film


물론 이들 또한 현재의 생활에 완전히 만족하지는 않는다. 종종 현실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모습도 그려진다. 무리들 중 마크는 마약에 점차 심하게 의존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정신을 맑게 하기 위해', 약을 끊으려는 시도를 하지만 늘 제자리로 돌아오는 인물이다. 그는 결심과 포기가 반복되는 일상에 회의를 느끼다가, 결국 독한 마음을 먹고 과거의 모든 것에서 떠나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결심한다. 탕아가 드디어 세상으로 돌아오는가 싶다.

열정을 택하지 않았다 해서 청춘이 아니라 할 수 있을까

▲ 영화 <트레인스포팅> 친구들을 배신하고 밀거래로 번 돈을 모두 챙긴 마크는 새로운 인생을 살 것임을 다짐하며 떠난다. ⓒ Miramax Film


그러나 이 시점에서 다시, 영화는 관객들의 뒤통수를 친다. 그는 과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친구들을 배신하고, 마약 밀매를 통해 번 거금을 혼자 몽땅 챙겨 달아나는 길을 택한다. 이전의 행동에 대한 참회나 반성은 하지 않는다. 그는 젊은 날의 삶을 부정하고 바른 길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여태껏 제멋대로 살기를 선택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 남들과 같은 삶을 살기로 '선택'한 것 뿐이다.

<트레인스포팅>의 이 같은 시각은 보는 이들을 잠시나마 도덕적 잣대에서 자유로워지게 한다. 관객은 주인공들의 탈선을 비난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나고, 그들의 뼈아픈 참회를 보며 자신이 제대로 살고 있다는 것에 안도를 느낄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그들의 비행을 선망하게 되지도 않는다. 그저 우리에게는 불가능할 삶, 가끔은 답답하게 느껴지는 세상의 틀을 전혀 신경쓰지 않고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인생을 보며 잠깐의 통쾌함을 느낄 뿐이다.

영화 속에서 꿈과 열정, 건강한 생활 등은 절대적으로 옳은 기준이 아니라 하나의 선택지에 불과하다. 주인공들은 그것을 고르기도, 무시하기도 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열정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을 청춘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무기력한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가장 서툴고 궁상맞은 모습조차 유쾌하게 느껴지는 것 또한, 그들이 젊기 때문이 아닌가. <트레인스포팅>은 게으른 청춘들을 다그치는 작품이 아니다. 그들을 섣불리 다독거리지도 않는다. 그냥 이런 젊음도 있다고, 어떤 편견도 없이 이야기한다.

얼마 전 <트레인스포팅>의 속편을 제작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지금은 모두 중년의 나이에 들어선, 본편의 출연진이 그대로 등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각자의 방식을 선택했던, 이 제멋대로인 젊은이들이 어떻게 자라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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