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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철 시즌2' 계속되는 한 MBC 미래는 없다

[주장]훼손된 신뢰, 시청률 지상주의...김재철을 극복하라

13.04.14 09:41최종업데이트13.04.15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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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철이 MBC 사장에서 해임된 지 벌써 3주가 지났지만 MBC는 여전히 '김재철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바꾸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가 남긴 어두운 그림자를 좀처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시청자가 가장 사랑했던 방송 MBC는 지금 어디쯤 와 있나.

 정치적 문제로 불방 조치 돼 논란을 일으킨 MBC <컬투의 베란다쇼>

정치적 문제로 불방 조치 돼 논란을 일으킨 MBC <컬투의 베란다쇼> ⓒ MBC


망가진 신뢰, 무너진 공정성

김재철 시대에 MBC가 입은 가장 큰 상처는 지난 50여 년간 켭켭이 쌓아올린 신뢰가 한 순간에 무너졌다는 것이다. 작년 12월 시사인의 보도에 따르면 김재철 취임 이 후, MBC의 신뢰도는 3분의 1 수준으로 급락했다. 2010년 18.0%를 기록했던 신뢰도가 2년 만에 6.1%로 떨어지며 퇴행을 거듭했다는 것은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다. 일반 대중조차 MBC의 역주행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후 플러스><W> 등의 시사 프로그램 폐지,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보복인사, MBC 노조와의 격렬한 대립, 해고·파면 등의 무자비한 언론인 탄압 등이 계속 되면서 MBC는 언론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잃고 휘청거렸다. 대선 기간에는 노골적인 정치색을 드러내며 특정당을 지지하는 행태를 보였고, 이 때문에 <뉴스 데스크>의 시청률이 반토막 나기도 했다. 한 마디로 수습불가의 상황이 계속된 셈이다.

불행한 사실은 김재철 해임 이 후에도 이런 경향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3월 MBC는 정치권의 거짓말을 풍자의 소재로 삼았다는 이유로 <컬투의 베란다쇼>의 방송을 일방적으로 취소해 논란을 빚었다. 김현종 교약제작국장이 담당 PD의 '정치 편향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이미 아이템 선정까지 마친 방송을 편성에서 뺄 것을 요구한 것이다. 방송 역사 상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파행적 행태다.

<컬투의 베란다쇼>의 '거짓말' 편은 이상득, 정두언 전 의원을 비롯해 김병관, 심재철 등 최근 대중적 관심을 받은 정치인들의 부정부패와 거짓 해명을 아이템으로 다룬 에피소드로 알려졌다. 김 국장은 여권 인사가 상대적으로 많이 포함돼 있는 이 아이템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했으며, 담당 PD가 언론의 중립을 어겼다는 이유를 들어 경위서 작성을 요구하기까지 했다. 국장이 개인적 판단을 근거로 시청자들과의 약속을 져버렸다는 비판을 면키 힘들게 됐다.

최근 문제가 된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 사태 역시 마찬가지다. MBC 사측은 김재철의 사장 사퇴를 풍자하는 방송을 내보낸 라디오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의 담당 PD의 일방적 교체를 결정해 파문을 일으켰다. 해당 PD는 인사위원회에 회부되어 라디오 편성기획부 발령이 결정됐다. 김재철은 나갔지만 안광한 부사장을 위시한 '김재철 체제'는 여전히 공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아직 MBC는 짙고 깊게 드리운 김재철의 그림자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방송 9년만에 갑작스런 폐지를 당한 MBC <놀러와>

방송 9년만에 갑작스런 폐지를 당한 MBC <놀러와> ⓒ MBC


'시청률 지상주의'가 남긴 폐해

김재철은 사장 재임 기간 동안 무너진 신뢰와 공정성을 만회하기 위해 '수익성 강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시청률이라도 1등을 해서 MBC의 명성을 되찾으려는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MBC 내부에 시청률 지상주의가 만연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때부터다. 그러나 대책 없는 폐지, 졸속 편성, 자극적인 프로그램의 남발은 시청률 상승은커녕 '드라마 왕국 MBC' '예능천국 MBC'의 명성을 크게 훼손시켰다.

특히 시트콤 <엄마가 뭐길래>를 시작으로 <놀러와><최강연승 퀴즈쇼Q><배우들>이 마지막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쫓겨나 듯 폐지된 것은 제작진과 시청자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시청률이 절대적인 판단 근거로 자리 잡으면서 프로그램에 내재 되어 있는 잠재력과 가능성은 완전히 무시된 것이다. '없애고 보자' 식의 졸속 행정은 결국 채널 경쟁력 약화로 직결됐고, 내부의 제작의욕을 위축시키는 부작용만을 낳았다.

기존의 편성표를 완전히 뒤집는 변칙 전략도 서슴지 않았다. 시청률 회복을 이유로 <뉴스 데스크>가 8시대로 옮겨가면서 여러 프로그램의 시간대가 동시 다발적으로 이동했고, 그 결과 일일극은 물론이거니와 뉴스 시청률까지 떨어지는 등 큰 혼란이 야기됐다. KBS 9시 뉴스를 견제하기 위해 방송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신설한 일일사극 <구암 허준>은 기대와 달리 한 자릿수 시청률에 머무르며 MBC의 애물단지로 전락해 있다. 반칙과 편법이 난무했지만 괄목할만한 성과를 얻지 못한 셈이다.

막장 드라마도 전에 없이 횡행했다. '시청률만 잘 나오면 만사 오케이' 식의 제작 풍토가 자리를 잡으면서 <사랑했나봐><오자룡이 간다><백년의 유산> 등 시청자들의 말초 신경을 건드는 드라마들이 대거 만들어졌다. 불륜, 복수, 배신 등의 자극적 소재는 물론이거니와 인간미를 발견할 수 없는 수준 이하의 등장인물들이 TV 안방극장을 장악한 것이다. 한 때 창조적이고 실험적 소재로 한국 드라마의 선구자 역할을 했던 MBC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이렇듯 김재철이 절대반지로 내세운 '시청률 지상주의'는 시청률을 올리기는커녕 건전한 방송문화와 활기찬 제작 분위기를 심각하게 저해하는 결과만을 가져왔으며, 질 낮은 소재와 저속한 표현만이 가득한 작품을 수도 없이 양산했다. 절차와 과정은 상관없이 눈에 보이는 결과만을 강조하는 김재철 식 경영이 낳은 폐해였다.

이제는 '김재철 체제'를 극복해야 할 때

MBC가 시청자들의 신뢰를 복원하고 예전의 1등 방송사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뿌리 깊게 남아있는 '김재철 체제'를 철저히 극복해야만 한다. '김재철 시즌2'가 계속되는 한 MBC의 미래는 희망이 없다. 언론으로서 중립성과 공정성을 지키고 품격 있는 방송사의 자세를 견지하며, 방송 문화를 선도하는 양질의 작품을 만드는 것은 지금의 MBC가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과연 MBC는 김재철의 어두운 그림자를 떨쳐내고 새 시대에 걸맞는 방송사로 다시 거듭날 수 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방송을 권력의 시녀로 두려는 정치 권력의 야욕이 계속 되는 한 제 2의 김재철, 제 3의 김재철은 계속 등장할 것이란 사실이다. 올바른 방송문화를 위해 정부와 정치권, 국민이 하나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할 때다.


김재철 놀러와 구암 허준 컬투의 베란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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