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스가 도망치지 아니라고, 절망에 굴복하여 죽음을 택하지 아니하고 버텨주어 고맙다. 그리고 그의 버팀목이 되어준 사람들이 정말이지 눈물겹게 고맙다.
노르디스크 필름
영화 내내 루카스는 위태롭다. 허물어질 듯 위태롭지만, 그는 여전히 담담하고 꼿꼿하다. 동네 마켓에서 부당한 모욕과 폭행을 당하면서도 그는 끝내 물러서지 않는다. 살해 당한 애견에 대한 울분도, 아들을 엄마에게 보낸 후에야 홀로 땅에 묻으며, 오래 참았던 감정의 격동을 세찬 빗줄기에 묻어 토해낼 뿐이다. 한편, 감독은 루카스에 대한 지나친 감정이입을 경계하는 듯 하다. 루카스의 억울함에 가슴이 먹먹해질 즈음이면 아름다운 풍경을 쉬어갈 공간으로, 혹은 시간을 격리하고 뛰어넘어 관객을 배려한다. 아마 감독은 루카스의 진실을 담담하고 객관화된 시선으로 지켜내고 싶었을 것이다.
영화를 보며 나의 예상은 번번이 빗나갔다. 집단 린치를 당했던, 크리스마스 저녁. 세면대 앞에서 간신히 얼굴의 핏자국을 씻고 옷과 구두를 단정히 차려 입을 때, 난 그의 죽음을 예상했다. 보통 사무치는 억울함은 자살이란 비극으로 종종 끝나니까. 하지만, 루카스는 가지런한 옷차림으로 교회를 향한다. 사람들은 그를 피하고 수근거린다. 마침 자신이 가르쳤던 유치원 아이들의 캐롤 합창이 있다. 그의 건너편 뒤쪽엔 그의 오랜 벗 테오가 앉아있다. 아이들의 노래를 들으며, 친구에게 시선을 돌리던 그는 결국 흐느낀다. 그리고 테오와 시선이 마주친다. 테오는 그제서야 무엇인가 크게 잘못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교회에서조차 거세당해 홀로 남은 그날 밤, 테오가 찾아온다. 누구도 그 자리에서 진실이 무엇인지 묻지 않지만 적어도 그날 밤, 그들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아닌, 다시 친구로 돌아갔다.
또한 루카스란 존재가 그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아들 마르쿠스가 대견했다. 아들이지만 부모를 믿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원래 가장 가까운 이들이 가장 먼저 의심하는 법이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마르쿠스의 신뢰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아버지의 친구들을 찾아가 읍소하고, 주먹을 날리고 얻어 맞으면서, "친구들이 뭐이래!"라며 우리가 그토록 소리치고 싶었던 울분을 대변한다. 마르쿠스의 대부이자 루카스의 친구였던 부룬도 그 우정을 끝까지 지켜낸다. 그가 루카스의 결백을 정말 믿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우정은 믿을만 했다. 때로, 실체없는 진실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적인 우정이다. 모름지기 우정은 현실적이어야 한다. 루카스가 도망치지 아니하고, 절망에 굴복하여 죽음을 택하지 아니하고, 버텨주어 고맙다. 무엇보다 진실을 포기하지 않은 그가 고맙다. 그리고 그의 버팀목이 되어준 사람들이 정말이지 눈물겹게 고맙다.
여전히 거짓이 진실을 압도하는 세상"1년 뒤"란 자막이 흐르고, 성년이 된 아들 마르쿠스를 축하하려 루카스와 그의 친구들이 다시 만났다. 마치 첫 장면에서 유쾌하게 펼쳐지던 그 즐거움이 연상되었다. 루카스의 곁엔 다시 시작된 로맨스였던, 그의 연인 나디아가 있다. 클라라와 조우하던 장면에서 마음 조아렸지만, 루카스는 친절한 선생님으로 클라라를 의연하게 맞이했다. 우정을 노래하던 친구들의 얼굴 하나하나, 특히 테오의 얼굴을 카메라는 놓치지 않고 주목한다. 즐겁다. 모두가 즐겁다. 그리고 그들은 다같이 사슴 사냥에 나선다. 이 즈음에서, 난 "1년 뒤"의 이 상황들이 혹시 루카스의 기대 어린 상상은 아닐까, 꿈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니면, 1년 사이에 루카스에 대한 진실이 밝혀졌던 것일까?
그런 상상과 의심 속에서 서성이던 순간, 루카스를 겨냥했던 누군가의 총소리가 가슴을 새차게 놀래킨다(난 이 장면이, 나와 같은 관객을 향한 감독의 배려라고 생각한다). 집단 속에 숨은 누군가는 여전히 그를 죽이거나, 혹은 위협하여 쫓아내고 싶어한다. 아, 진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루카스는 여전히 진실을 움켜진채, 고통스럽지만 의연하게, 다시 그 꼿꼿한 성실함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거짓이 진실을 압도하는 이 지극한 현실 속에서 말이다.
ps. 언젠가 어떤 영화의 악역으로 그를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주인공 루카스 역의 매즈 미켈슨은 연기는 최고다. 2012년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은 결코 넘치지 않는, 그의 연기에 대한 지극히 합당한 찬사일 것이다. 그리고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의 이름도 기억해 놓는 것이 좋겠다. 빼어난 영상으로 이런 소재를 다루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넘치지 않는 감정선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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