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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녀석들' 정태호에게 풍자를 허하라!

[주장]풍자 개그를 해명해야 하는 시대는 그 자체로 '비극적 희극'이다

12.12.27 11:01최종업데이트12.12.27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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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잘 배우고 갑니다." 제14대 국회의원을 지냈던 코미디언 고 이주일 선생이 국회를 나오며 한 말이다. 당시 이 말은 정치라면 지긋지긋해했던 대중의 마음을 뻥 뚫리게 한 촌철살인으로 인구에 회자됐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또 다른 '코미디 발언'이 다시 한 번 화제를 모으고 있다. 바로 KBS 2TV <개그콘서트>에서 정태호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던진 말 때문이다.

KBS <개그콘서트> '용감한 녀석들'의 정태호 ⓒ KBS


정태호의 '코미디 발언', 그렇게 무례했나?

지난 12월 23일, <개그콘서트> '용감한 녀석들' 코너에서 정태호는 "드디어 18대 대통령이 결정됐다.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이번에 대통령이 된 박근혜님, 잘 들어. 당신이 얘기했듯이 서민들을 위한 정책, 기업을 위한 정책, 학생을 위한 정책들 잘 지키길 바란다. 하지만 한 가지는 하지 마라. 코미디. 코미디는 하지마. 우리가 할 게 없어. 왜 이렇게 웃겨. 국민들 웃기는 건 우리가 할 테니까 나랏일에만 신경 쓰길 바란다. 진짜 웃기고 싶으면 개콘에 나와서 웃기던지"라고 발언해 화제를 모았다.

문제는 이 방송이 나간 직후, 박근혜 지지자들을 비롯해 각종 보수 언론과 평론가들은 하나같이 정태호의 발언이 "무례하다"며 문제 제기를 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한국일보는 "여론에 편승해 인기를 이어가는 개그맨보다 건강한 웃음을 주는 개그맨이 진정 공영방송의 희극인"이라며 앞장서 비판했고, <개그콘서트> 시청자 게시판은 정태호의 사과를 요구하는 글로 도배가 되다시피 했다.

논란이 생각보다 커지자 서수민 PD는 "특정인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다. 박근혜, 문재인 모두 언급했다"며 촬영 원본까지 공개했지만, 논란은 나흘이 지난 지금까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세계일보는 "정태호는 희생양, 문제는 서수민 PD"라고 쏘아붙였고, 보수논객 변희재는 오히려 "대체 KBS 사장, 제작본부장, 예능국장은 뭐 하고 있었나요. 모두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라며 전선을 확대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정태호가 출연하는 광고 상품의 불매 운동을 벌이며 방송 퇴출까지 요구하고 있다.

KBS 2TV <개그콘서트>를 이끌고 있는 서수민 CP ⓒ KBS


하지만 이건 너무 가혹하다. 이번 정태호의 발언이 방송 퇴출 운운할 만큼 충격적이었던 건 아니기 때문이다. 반말과 삿대질을 섞어 쓰는 등 다소 과격한 면이 있기는 했으나 코너 콘셉트를 이해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게다가 <개그콘서트> 제작진 역시 원본 공개를 포함한 성의있는 조치는 모두 다 했다. 그렇다면 반대쪽에서도 어느 정도 논란을 정리하는 제스추어를 취해 줘야 맞는 것이다.

코미디에서 풍자와 해학은 기본이다. 그 중 정치는 풍자와 해학의 대상 1순위다. 권력에 대한 비판은 조선 시대부터 있었던 대중 유희이며, 정태호의 발언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이다. "정치 좀 잘해달라"는 원론적 발언에 박근혜 당선인을 의도적으로 깎아내리려는 고의성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 코미디에 정치색을 입히고 진영 논리를 대입해 매도하는 건 옳은 태도가 아니다.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 스티븐 콜베르는 부시 대통령 시절 열린 백악관 기자 만찬 행사에서 부시의 면전에 대고 욕설까지 섞어가며 정권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부시를 아주 존경하는 보수주의자인척하며 부시의 실정을 조목조목 따지는 풍자 코미디로 부시와 관계자들을 아주 난감하게 만든 것이다. 그 사건 이후로 콜베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정답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다. 이것이 바로 제대로 된 민주국가에서 코미디를 받아들이는 태도다.

KBS <개그콘서트>의 '용감한 녀석들' ⓒ KBS


풍자 개그를 해명해야 하는 시대의 비극

재미있는 것은 지금의 논란을 벌인 쪽이 박근혜 당선인이나 새누리당이 아니라, 박근혜의 지지자들 혹은 언론과 정치 논객들이란 사실이다. 비판을 받은 당사자는 정작 가만히 있는데 언론이 나서서 풍자 코미디에 재갈을 물리고 논란을 키워 뭇매를 때리고 있다. 이런 식의 대응은 박근혜 당선인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칫하다간 사소한 코미디까지 통제하려 든다는 오해마저 살 수 있다.

특히 단순한 풍자 코미디를 한 개그맨에 대해 방송 퇴출 요구를 한다거나, 불매 운동을 진행해 밥줄을 끊어놓으려 하는 건 너무 감정적인 처사다. 기분은 나쁠 수 있어도 이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 이런 전례를 만들면 풍자 코미디는 존재 근거를 잃고 점점 위축되어 갈 것이다. 이건 너무 비극이다. 적어도 풍자 코미디엔 성역이 없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유로운 비판과 견제는 당연히 보장되는 것이다. 박근혜 당선인이 내걸었던 슬로건인 '100% 대한민국' 역시 다양한 의견과 비판이 공존하는 속에서 충분한 합의점을 도출해 나가자는 의미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박 당선인의 지지자들 역시 더 넓고 큰 아량으로 상대방을 보듬는 미덕을 발휘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풍자 개그마저 '설명'하고 '해명'해야 하는 시대를 만드는 것이 그들의 책무는 아닐 터다. 개그의 한 표현수단인 풍자가 눈치를 보는 그런 사회를 좋은 사회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니 정태호의 풍자 코미디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 대상이 누구든.

2002년 '우리 쌀 지키기 전국 농민대회'에 참석해 연설대에 올랐던 노무현 전 대통령(당시 민주당 후보)이 농민들이 던진 달걀에 맞아 큰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이후, 달걀을 맞은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노 전 대통령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맞은 부당함보다 던진 사람의 심정을 헤아려 줘야지요. 정치하는 사람들, 한 번씩 맞아줘야 국민들 화가 좀 안 풀리겠습니까?"

지금 박근혜 당선인과 그 지지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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