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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 딜레마, 애국심과 현실 사이

12.12.26 10:19최종업데이트12.12.26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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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대회가 열릴때마다 프로 선수들의 국가대표팀 차출에 대한 잡음은 항상 나올 수밖에 없다. 몸이 재산인 선수들, 그리고 그 선수들을 데리고 팀을 운영해야하는 구단들 입장에서는 단지 애국심이나 대승적 차원에서의 희생으로 합리화하기는 힘든, 어쩔 수 없는 현실적인 고민이다.

내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구성을 두고도 여지없이 이런저런 뒷말이 나오고 있다. 대표팀은 연이은 부상자 속출과 엔트리 교체로 인하여 혼란을 겪고 있다. 지난 대회에 비하여 대진운이나 상대팀들의 전력이 약화되었다는 호재에도, 오히려 우리 대표팀의 전력이 더 약해졌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류현진, 김광현, 봉중근, 김진우 등에 이르기까지 연이은 주축 선수들의 이탈로 그동안 한국대표팀의 강점이던 마운드 전력의 약화가 두드러진다.

선수를 참가를 원하더라도 어쩔수없이 대표팀에 불참해야하는 사정도 있다. 내년 메이저리그에 처음 진출하는 류현진이나, FA를 앞둔 추신수, 부상으로 인하여 참가가 어려운 봉중근이나 김광현까지. 저마다의 사정이 다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자리를 메워야하고, 이 과정에서 공정성이나 형평성문제를 두고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해외에 나가는 선수들은 이해해줘야하고, 국내파 선수들은 무조건 대표팀 소집에 응해야하나?' 'OOO은 과연 정말 WBC에 참여하지못할 정도의 부상인가, 아니면 몸을 사리는 것인가?' '왜 특정팀만 유독 많은 선수들을 대표팀에 차출당해야하나.' '만일 병역혜택이 걸려있다면 선수들이 WBC를 대하는 분위기 자체가 달리지지 않았을까.' 등등의 지적들이다.

물론 모두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다. 사실 비시즌에 대표팀에 차출된다는 것은 일정 부분 개인과 조직의 희생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모두가 원하는 형평성의 기준을 배려하고 맞추기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저마다 자기 이익의 관점에서만 해석하려다보면 대표팀은 처음부터 존재할 수가 없는 조직이다.

1,2회 대회때 대표팀을 이끌었던 김인식 KBO 기술위원장은 당시 아무도 맡으려하지 않던 대표팀 감독직을 떠맡으며 "국가가 있어야 야구도 있다"는 명언을 남겼다. 김인식 위원장은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라면 자부심이 있어야 하고, 태극기를 보며 울컥하는 마음이 있어야한다. 선수 개개인의 국가관이 바로서야 대표팀이 강해진다"고 말했다.

김인식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그해 WBC에서 예상을 깨고 준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김인식 감독은 정작 소속팀 한화를 돌보지 못했고 팀성적이 리그에서 꼴찌로 추락하며 결국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하지만 이후로도 김인식 감독은 한번도 당시 WBC 대표팀 감독직을 맡은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객관적 전력에서 미국이나 일본, 쿠바 등 다른 야구강호들에 비하여 열세라고 평가받던 한국이 WBC에서 매번 좋은 성적을 거둘수 있었던 것도, 이처럼 전력을 뛰어넘는 단단한 팀워크와 대표팀에 대한 자부심으로 뭉친 야구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시대는 달라졌고 가치관은 변화한다. 여전히 많은 선수들이 대표팀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지만, 막연히 '애국심'만 강조하는 것으로 대표팀에 대한 동기부여가 모두 충족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선수들의 책임감과 동기부여를 끌어낼 제도적인 보완책도 필요하다.

많은 이들이 WBC의 가치에 대하여 반신반의하고 있다. WBC가 과연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 준하는 가치가 있는 국제대회인가. 아니면 그냥 이벤트성 대회일뿐인가. 심지어 야구인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엇갈리는 대목이다. 사람마다 가치판단은 다르겠지만 현실적으로 가장 큰 차이는 어쨌든 지금의 WBC는 선수들이 피부로 느낄만한 보상혜택같은 것이 없다는 점이다.

2006년 1회 WBC때는 병역혜택이 있었다. 물론 사전에 예정된 것은 아니었고, 당시 대표팀이 기대이상의 호성적을 일으키며 국민적 지지를 받자 정치권에서 포퓰리즘에 기대어 선심성으로 급조된 혜택에 가까웠다. 2회 WBC때도 병역혜택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기는 했지만 반대여론으로 무산됐다. 대표선수들이 모두 미필자이거나 혜택만 바라고 뛰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병역혜택이 있고 없고가 선수들의 동기부여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번 대표팀 선수들은 병역특혜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고 3회 대회에 참가한다. 몇몇 선수들은 벌써 부상과 개인사정을 이유로 대표팀 차출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이들중에는 이미 베이징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참여를 통하여 병역혜택을 받은 선수들도 대다수다. 만일  WBC가 병역혜택이 걸린 대회였고 이들이 아직 미필자였다고 해도 똑같이 처신했을지는 미지수다.

WBC에만 다시 즉흥적인 포퓰리즘으로 병역혜택을 추진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국가대표에 대한 책임감과 동기부여를 위한 현실적인 개선책은 필요하다. 예를 들면 국제대회 참여로 병역혜택을 받은 선수들의 경우, 부상 등을 제외하고 향후 5년에서 6년 정도 대표팀 차출을 의무화하는 식이다. 정당한 이유없이 대표팀 차출을 거부하거나 이에 응하지않을 경우, 언제든 병역혜택을 박탈할 수 있는 제도적 대안이 있어서 선수들도 책임감을 가진다.

아니면, 야구같은 프로스포츠의 경우, 국제대회 입상에 따른 병역혜택을 특정대회에 1회성으로 한정하는게 아니라, 포인트제를 도입하여 아시안게임이나 WBC 출전과 공헌도에 따라 차등배분하여 기준치를 충족한 선수들에게만 혜택을 주는 식이다.

대표팀에 별달리 공헌한 것도 없이 운좋게 병역혜택이 걸린 대회에 참여한 것만으로 다른 선수들이 차린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선수들이 생기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또 병역혜택을 얻은 이후 개인 이익만 챙기며 국가의 부름을 나몰라라하려는 얌체형 스타 선수들의 행태도 방지할 수 있다.

대표팀에 대한 올바른 국가관과 제도적인 보상책, 둘중 어느 하나 빼놓을수 없는 필수 요소다. WBC만이 아니라 앞으로 수많은 국제대회때마다 돌아올 대표팀 차출에 대한 논란을 방지하기위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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