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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맛본 <돈의 맛>...'모욕'이었다

[영화리뷰]'특권상'의 비정상적인 모습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관객의 인식

12.06.14 10:20최종업데이트12.06.14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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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되는 이야기의 현실성

▲ 영화 <돈의 맛>의 포스터 조금은 불편한 ⓒ 휠므빠말

여기 속칭 '개족보'가 하나 있다. 엄마와 성관계를 맺은 연하남(최소 20살 이상 차이난다)을 이혼한 딸이 사랑하여 다시 관계를 맺고, 엄마의 남편은 아내가 보든 말든 상관없이 집안 한 구석에서 외국인 가정부와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고, 그 아들은 아버지를 아버지로 취급하지 않은 채 오직 돈 많은 어머니와 외할아버지만 바라보며, 외할아버지는 그 모든 것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넘어간다. 세상은 원래 그런 거라고.

올바른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위와 같은 가족이 존재할 수 있느냐고 핀잔을 줄 것이다. 대충 들어도 벌써부터 현실성이 부족한 가족관계이기 때문이다. 이게 과연 말이 되는 관계 설정인가?

그런데 더욱 기가 막힌 건 위의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많은 이들에게 엄연한 현실로서 공감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 <돈의 맛>이라는 제목을 걸고 절대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이야기가 그럴싸한 현실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왜?

그것은 바로 '돈' 때문이다. 사람들은 엄청난 돈이 바탕에 깔리면 위와 같은 '개족보'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돈이란 모든 것을 창조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돈 앞에서는 도덕이고 나발이고 모든 걸 벗어 던진 천박한 사회.

▲ 딸과 사랑하는 영작 속칭 개족보 ⓒ 휠므빠말


관객들은 돈 때문에 영화 <돈의 맛>을 하나의 현실로 인식한다.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주인공이라면 한낱 헛소리로 치부될 이야기가, 돈을 매개로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세상의 그럴듯한 현실로 둔갑된다. 그것은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다는 믿음과 사회 0.001%의 특권층은 그럴 수도 있으리라는 합리적인 추론의 결과이다.

감독은 영화 속 인물들에게 현실감을 부여하기 위해 영화 중간 중간 삼성이나 장자연 등 그들의 모델이 되었던 현실 속 인물들의 이미지 등을 차용하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작업일 뿐이다. 관객들은 이미 그 풍자와 상관없이 돈에 대한 개인적인 개념과 인식에 따라 영화에 스스로 현실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영화 <돈의 맛>의 주인공은 결코 등장인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연기자가 아니다. 바로 영화를 사실의 연장선으로 만드는 돈인 것이다.

▲ 영화의 주인공 부러운가? 부러우면 지는 거다 ⓒ 휠므빠말


따라서 영화 <돈의 맛>에서 우리가 중요시해야 하는 것은 영화에서 그리고 있는 특권층의 모습이 아니라 그런 특권층의 모습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관객의 인식이다. 그 말도 안 되는 관계들마저 현실로 수용할 수 있는 관객들의 인식이야말로 영화 <돈의 맛>이 관객들에게 묻고 있는 또 다른 질문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 이야기가 현실 같습니까? 당신은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과연 영화 <돈의 맛>이 이야기 하는 돈의 맛은 어떤 맛일까? 도대체 어떤 맛이기에 사람들은 이 영화를 덥석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일까?

돈의 맛, 그 씁쓸함에 대하여

영화는 돈의 맛을 본격적으로 이야기함에 앞서 관객들로 하여금 분명한 감정이입의 대상을 정해준다. 김강우가 연기한 주영작이 바로 그 인물로서 그 외의 인물은 어디까지나 주영작의 관찰 대상일 뿐 감정이입이 불가능한 존재다. 그들은 99.9%의 관객들이 도달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아주 특소수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는 자연스럽게 주영작이 느끼는 돈의 맛에 집중한다. 그것이 바로 관객들이 느끼는 돈의 맛이며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돈의 일반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 돈의 맛에 빠지는 영작 탐욕스러운 눈빛 ⓒ 휠므빠말


영화 초반부 주영작이 처음 접한 돈의 맛은 달콤함이다. 현실은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으며, 백씨 가문은 백금옥(윤여정 분) 여사의 말대로 한낱 찌그래기 돈으로 공무원이나 기자 교수 등을 배려놓음으로써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한다. 모든 것이 이미 짜놓은 각본대로 흘러가는 사회. 그 기저에는 돈에 대한 탐욕이 웅크리고 있다.

윤회장(백윤식 역)은 금고에서 엄청난 액수의 현금을 꺼내며 주영작에게 너도 몇 다발 가지고 가서 돈의 맛을 보라고 하는데, 이는 곧 영화의 관객에 대한 물음이자 조롱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과연 당신은 그 돈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물론 주영작은 처음에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지만 이내 그 돈다발을 움켜지고 만다. 자신의 얼척없는 행동에 대한 보상심리도 있겠지만 그것은 결국 돈에 대한 탐욕 때문이다.

▲ 윤회장의 돈의 맛 모욕적인 그 맛 ⓒ 휠므빠말

그러나 영화는 한편 그런 돈의 달콤함이 무엇을 희생으로 하고 있는지 또한 여실히 보여준다. 바로 자존감. 영화에서 돈의 반대어는 자존감이다. 자신의 능력보다 많은 돈을 얻기 위해서는 바로 그 자존감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윤회장은 말한다. "돈, 원 없이 펑펑 썼지, 근데 그게 그렇게 모욕적이더라고. 모욕!" 결국 그의 모욕이란 자존감을 버릴 때 느끼는 감정이다. 나의 자존감이 돈으로 치환되어 타자에게 금액 액수로 휘둘릴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좌절감.

이쯤 되면 관객들은 영화가 서서히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내 스스로가 자존감을 지키고 살고 있냐는 질문으로부터, 모욕을 참아가면서까지 돈을 벌고 있느냐는 질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라는 당연한 명제 앞에서 차마 No라고 외칠 수 없는 월급쟁이의 무력감. 과연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국내 유수의 기업에 취업하여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이들도 궁극적으로는 재벌의 한낱 하인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있을까? 어쨌든 직장 상사의 모진 꾸지람에 모욕감을 느껴도 돈은 그렇게 해서라도 벌어야 하는 것 아니던가.

▲ 모욕감의 극치 그래도 참을 수밖에 없다면 자존감을 버려야 한다 ⓒ 휠므빠말


감독은 이와 같은 좌절감도 모자랐는지 영화의 말미에 아예 쐐기를 하나 박아 넣는다. 주영작이 윤나미(김효진 역)와 함께 그의 동생 윤철(온주완 역)을 구치소로부터 빼내오는 장면을 통해 우리의 비극적인 현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것이다. 윤철이 누나에게 묻는다. 주영작이 그들의 어머니와 성관계를 맺었던 사실은 알고 있는지. 이에 대해 흥분하여 급기야는 차를 세운 뒤 윤철을 끄집어내는 영작.

그러나 그 뒤 상황은 기대했던 바와 전혀 반대다. 주영작이 서민의 대표로서 윤철을 패고 관객들에게 대리만족도 제공할 만 하건만 감독은 잔인한 현실을 보여줄 뿐이다. 비실비실해 보이는 재벌가의 아들 윤철이 오히려 괴상한 복싱 실력으로 주영작을 패는 것이다. 공부 잘 하는 놈이 싸움도 잘 한다는 이 비극적인 현실. 윤철은 말한다. "너희들은 안 돼. 그러니까. 그냥 무릎 꿇고 머리 조아리고 살라"고.

아마도 감독은 이 장면을 통해 모욕적인 돈의 맛이 어떤 건지 관객들에게 보여주고자 했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행복의 가치로 둔 이상, 우리는 항상 모욕적인 상황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상기시키고자 했을 것이다. 돈을 가진 자들이 모든 면에서 우월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사회 전체 구성원이 돈의 탐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시대. 영화 <돈의 맛>은 말한다. 우리가 돈의 모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아예 기준 자체가 변해야 한다고. 돈이 행복의 척도가 되는 순간 우리 모두는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말도 있지 않은가.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

돈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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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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