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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피만 62개..."보았니? 김구라의 굳은 표정을"

MBC 방송연예대상의 잊지 못할(?) 순간들

11.12.30 14:32최종업데이트11.12.3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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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연예대상을 차지한 <나는 가수다> 멤버들 ⓒ MBC


이변은커녕 예상 그대로였다. <나는 가수다>였다. 29일 방송된 2011 MBC <방송연예대상>의 대상인 '올해의 프로그램'은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가 수상했다. 시상식 이틀 전 부랴부랴 대상을 연기자 개인이 아닌 프로그램에 시상한다고 발표했을 때부터 특정 가수에게 줄 수 없는 <나가수>를 위한 배려가 아니냐는 추측이 난무했던 터다.

2부 축하무대 오프닝에서 정성호 등 <나도 가수다>의 개그맨들과 묘하게 부자연스러운 합동 공연(?)을 펼친 윤도현은 "이렇게 연예대상 무대에 선 건 처음"이라고 했다. 그건 김갑수, 윤유선 등 시트콤에 출연한 연기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예능인들의 한 해 마무리 자리에 함께한 가수들과 배우들. 그래서 MBC는 올해도 여전히 수 십 개의 트로피를 마련해 1년 동안 고생한 연기자와 가수들의 공로를 치하(?)했다.

"1년 동안 수고한 예능인들에게 골고루 상을 다 드리는 것 같아서 조금은 지루했지만, 잔칫날 두루두루 떡을 나눠 먹는 잔칫집 같아서 기분이 좋았어요. 시청자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고요. 후배들과 웃고 떠들 수 있는 터가 있어서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박미선의 수상 소감에 이번 시상식의 본질이 숨어있었다. 골고루 상을 나누는 건 분명 1년 간 고생한 이들을 폭넓게 배려하고 격려하는 당근일 수 있다. 하지만 PD와 작가를 제외한 스탭들 없이 방송사가 차려놓은 연기자들만의 잔치상에 아카데미상 시상식에 버금가는 무려 200여 분이 넘는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전파낭비 수준 아닌가.

방송사에서 그렇게 시청률에 목숨을 걸곤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보자. 탈도 많고 말도 많은 기준이지만 오히려 이번에 시청률을 기준으로 시상을 하지 않아 불만을 가진 이가 있었으니, 바로 <무한도전>의 박명수다. 그는 시청자가  뽑은 베스트 커플상을 정준하와 수상한 뒤 이런 소감을 남겼다.

"체면치레 했네요. 이게 진정한 대상이라고 생각해요. 시청자가 직접 주는 상 아닙니까?"

하루 이틀 얘기는 아니지만, 자기 식구들도 불신하며 의미가 퇴색되어버린 MBC <방송연예대상>. 이러한 속내를 확인할 수 있는 주목할 만한 장면을 꼽아봤다.

29일 저녁 일산 MBC드림센터에서 열린 2011 MBC연예대상 레드카펫에서 <무한도전>팀이 "무한도전"을 외치며 인사하고 있다. ⓒ 이정민


 - '내가 봤어', 김구라의 굳은 표정을

내심 대상을 노렸을 김구라다. 오죽했으면 방송에서 "유재석에게 또 주는 건 식상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을까. 그러나 강호동의 빈자리를 메운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게 난데없는 MC 부문 특별상이 돌아가자, 무대에 올라가는 김구라의 표정은 심하게 굳어 있었다.

1부 말미 일찌감치 상이 수여되자 '이럴 줄 알았다'는 김빠진 얼굴색이 역력했다. 한술 더 떠 소감을 얘기할 기회도 없었던 유세윤은 "소녀시대를 소개해드립니다"며 마이크를 잡는 고도의 '안티'(?) 작전을 폈다. 우정상, 특별상, 공로상에 단체수상까지, 우리나라 상 이름 참 다양하다.

- 2011년은 고영욱의 해?

룰라 이후 "15년 만의 상"이라는 고영욱은 신인상을 수상했다. 고영욱은 코미디·시트콤 부문 신인상을 수상한 <나도 가수다> '방정현' 정명옥과 함께 상의 의미가 빛을 발한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과 <세바퀴>에서 맹활약한 그는 여장도 불사하고 "하선씨 행복하십시오"와 같은 불꽃 애드립을 날리며 자리를 즐겼다. 물론 그를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해준 성대모사의 대상 이현우, 김지현에게도 감사를 잊지 않았다. 

- 연예대상을 점령한 가수들

흡사 <10대가수 가요제>로 돌아간 줄 알았다. <나가수>가 대상을 수상하자 MC 윤종신을 비롯해 박정현·윤도현·김범수·김경호·박완규·BMK 등 가수들이 무대에 올랐다. 누구는 시청자들, 누구는 김영희 PD에게 공을 돌렸다. 그리고 <나가수>가 화제가 된 것 또한 분명하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개그맨, 코미디언, 희극인 등 통칭 예능인들의 잔칫상을 손님들이 차지한 꼴이랄까. 어찌됐건 <가요대제전> 무대 대신 연예대상 무대에서 연예인들 간의 크로스오버와 화합을 몸소 실천한 MBC 관계자들의 도전 정신에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방송인 김제동인 MBC 방송연예대상에 참석해 유재석의 최우수상 수상을 축하하고 있다 ⓒ MBC


- "방송통심심의위원회를 웃기는 그날까지"

<무한도전> 팬들이 뿔났다. <나가수>가 대상을 수상하자, MBC 홈페이지내 검색창에 갖은 욕설과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자 MBC 홈페이지 실시간 검색에 반영됐고, 그 캡쳐 화면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쇼·버라이어티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유재석은 작년 대상 수상 때와 마찬가지로 "죄송한 분들이 많다"고 운을 뗐다. 아마도 <무한도전> 팬들이라면 '최우수상 밖에, 그것도 혼자 받아서 죄송하다'고 들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찌됐건 <무한도전>은 좀 더 열심히 달려야만 될 것 같다. "내년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도 웃음을 안겨드리겠다"는 유재석의 소감을 실현시키려면. 그나저나 내년에도 올해와 별반 큰 변화가 없다면, 그때는 <무한도전>이 대상을 가져갈 수 있을까? 그의 수상은 또 뒤늦게 참석한 '동생' 김제동의 박수로 더욱 빛났다.

- "이제는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이지 않습니까?" 

대통령 국정 연설로 착각할 뻔 했다. <코이카의 꿈>의 취지를 설명하던 김재철 사장의 멘트다. <나가수>에게 대상을 주며 모든 사람이 예상했지만 자신만 의외라는 듯 "예상치 못한"이란 설명은 실시간 검색 순위를 달렸다.

김재철 사장은 이날 시상식에 나와 <나가수> <코이카의 꿈> <위대한 탄생> 등 자신의 재직 기간 만든 프로그램을 치하하는 세심함(?)을 보여줬다. 작년 같은 자리에서 연예인들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다 고현정에게 "그냥 여기 있는 분들 하나하나 다 부르시죠"라는 구박을 받으며 음주방송 의혹까지 샀던 것에 비한다면 장족의 발전이다.

진행 미숙과 나눠먹기, <무한도전> 홀대까지 갖가지 풍성한 화제를 낳은 2011 MBC 방송연예대상. 이날 개인과 팀, 그리고 프로그램에 대상을 안긴 모든 트로피의 숫자는, 무려 62개였다.

방송연예대상 무한도전 나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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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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