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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 큰 죄수가 옷을..."그럼 성폭행 당한 거야?"

[리뷰] 딸과 함께 본 <부러진 화살>

11.12.27 18:05최종업데이트11.12.2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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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화살> 포스터 ⓒ 아우라픽쳐스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10월 6일~14일)를 통해 그 존재를 알게 된 영화 <부러진 화살>(정지영 감독, 2012년 1월 19일 개봉 예정) 시사회 표를 얻고 무척 설렜다. 석궁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인지라 꼭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22일, 딸과 함께 <부러진 화살>을 봤다. 이미 많이 알려진 것처럼 2007년 1월 15일에 발생한 '석궁사건'을 바탕으로 극중 이름만 바꾼 영화다. 전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 김명호씨는 김경호(안성기 분)로, 박홍우 부장판사는 박봉주(김응수 분), 박훈 변호사는 박준(박원상 분) 등으로 나온다.

대학입시에 동료 교수가 출제한 수학문제 하나가 오류임이 밝혀진다. 이 문제로 김 교수는 부당하게 해고된다. "밝히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는데 스스로 들춰 학교의 명예를 더럽힐 수 있느냐?"는 대학 관계자들과 몇몇 교수들의 의견과 달리 "잘못이 있으면 시인하고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 학생들 보기에 부끄러운 일이다"는 의견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부당하게 해고된 김 교수는 교수지위 확인소송에서마저 패소하고 항소심마저 정당한 사유 없이 기각되고 만다. 이에 울분을 참으려고 석궁을 쏘던 김 교수는 2007년 1월 15일 저녁 6시 30분 무렵에 해당 판사인 박 판사를 찾아가 엘리베이터 앞에 멈춰 서 있던 그를 불러 공정한 재판을 요구하며 석궁으로 위협한다.

이어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지고 달려온 아파트 경비원 등에게 김 교수는 제압당한다. 박 판사는 "이 사람 경찰에 신고하라"는 말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탄다. 영화는 김 교수가 쇼핑백에 석궁을 담아 들고 박 판사의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보이는 계단으로 가는 것으로 시작, 이와 같은 그날의 사건 과정을 보여준다. 보도를 통해 우리들이 접했던 그날의 사건 경위와 다소 차이가 많은 그날의 사건 과정을.

사건의 영향은 일파만파로 번져나간다. 사법부는 정식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회의를 열어 김 교수의 행위가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이자 테러라며 피의자를 엄중 처벌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한다. 하지만 알려진 사실과는 달리 김 교수는 화살을 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런 김 교수에게 가해진 죄명은 살인미수. 그런데 살인미수임을 뒷받침하는, 박 판사 측이 제시한 증거물들이 허점투성이이다.

박 판사는 김 교수가 자신을 쏜 증거로 '부러진 화살'을 이야기하나 사건 현장에서 발견했다는 화살은 멀쩡한 화살 3개, 정작 그가 화살을 날렸음을 뒷받침해주는 부러진 화살의 행방은 묘연하기만 하다. 상처로 인한 피 묻은 옷의 존재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 속옷에는 피가 묻고 그 위에 입은 셔츠에는 피가 묻지 않고 셔츠 위에 덧입는 조끼에는 피가 묻은 이상한 증거물이기 때문이다.

이에 김 교수와 박 변호사는 증거물들이 조작되었음을 주장하며 행방이 묘연한 부러진 화살과 피의 주인을 묻지만 판사는 "박봉주의 피를 어떻게 구하는가?"와 같은 어이 없는 답변과 함께 피고 측이 요구하는 것들은 무조건 기각하고 마는데….

이상한 증거물들... '석궁사건'의 진실은?

사법부 가장 보수적인 판사로 유명한 모판사로 나오는 문성근씨의 일그러진 표정연기, 인상깊었다 ⓒ 아우라픽쳐스


교도소에서 한 죄수에게 폭행을 당한 김교수를 1주일만에 면회하게 된 가족과 변호사 등은 그의 망연자실한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 아우라픽쳐스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

김 교수는 법정에서 이처럼 말한다. 비상식적인 재판을 참관하는 사람들 중에 김 교수처럼 "이게 재판이냐?"며 판사에게 항의하는 사람도 있고 달걀까지 던지는 일까지 발생한다.

딸이 "꼭 보고 싶다"고 했지만, 사실 이 영화를 딸과 함께 갈까 말까 적잖이 망설였다. 재판 장면이 많은 부분을 차지할 것이고 그렇다면 좀 딱딱하고 지루할 수도 있겠다고 지레짐작, 아이가 재미없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이들도 분명하게 알아야 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 딱딱하고 지루한 영화 때문에 관심을 거두게 해선 안 된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런데 공연한 우려였다. 사법부의 권위적인 태도와 오만함, 판사마저 직무태반으로 고발하는 김 교수, 진실과 사법부 사이에서 궁색한 검사, 누가 변호사이고 누가 피고인인지 분간을 할 수 없는 김 교수의 변론, 팽팽하게 엇갈리는 진술 등, 김 교수 말대로 재판이 아닌 개판이기 때문인지, 흔히 떠올리기 쉬운 진지하고 엄숙하며 딱딱한 법정의 이미지와 달리 긴장감도 있어 좋았다. 참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거듭 들 정도로.

게다가 안성기씨의 어설픈 춤, "이름을 적지 말라"는 교도관의 명찰에 적혀 있는 전 국민이 다 아는 그분의 이름, "법을 안 지켜서 문제이지 법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재판장에서 법조항까지 서슴없이 거론할 정도로 해박한 김 교수와 "법은 쓰레기"라는 자칭 '양아치' 변호사인 박 변호사의 묘한 어울림, 사법부에서 가장 보수적인 꼴통 판사로 등장한 문성근씨의 권위적이며 독재적인 모습과 일그러진 표정 등도 이 영화를 재미있게 하는 요소.

솔직히 '100만 민란' 때문인지 문성근씨의 보수 판사 역할은 충격인 한편 신선했다. 그런데 영화의 취지와 맞물려 생각해보니 이상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하간 영화를 보는 중 드문드문 웃음이 터져나왔다. 나도 딸도 웃었다. 그런데 한 순간 울컥,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말았다.

김 교수가 재판 시 사법부에 마땅한 대응을 위한 준비를 워낙 철저하게 해오곤 하자 교도소는 특단의 급작스런 조치를 한다. 법전 등을 뒤지며 법조항 등을 미리 준비할 수 있는 독방의 김 교수를 다른 죄수들과 함께 감금해버리는 것. 수긍할 수 없는 변명과 함께. 그날 밤 한 죄수가 엎치락뒷치락 김 교수를 겁박한다. 그리고 영화는 한동안 침묵. 충격으로 그의 눈동자는 풀리고 그는 말을 잃고 만다.

그 순간 왈칵 걱정이 앞섰다. '저러다 영영 말을 잃어버리는 것 아냐?' 다행이 급하게 귀국한 아들과의 만남으로 그는 다시 힘을 얻는다. 김 교수와 아들의 포옹, 묵묵하고 뜨거운 눈물. 아마도 이 장면에서 눈물 훔쳤을 사람들 많을 것 같다.

당해본 사람은 안다, 석궁교수의 마음을 

재판을 거듭하며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다. 하지만 구형 판결 재판을 앞두고 나가기로 했던 특집방송과 기사가 무산되고 만다. ⓒ 아우라픽쳐스


<부러진화살> 마지막 장면은 유쾌하다. ⓒ 아우라픽쳐스


당시 석궁사건 보도를 보면서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했다. 진실은 모르지만 막연히 그 교수의 그럴 수밖에 없는 그 심정에 동감했다. 2004년에 이웃집의 화재로 우리 집이 전소했는데 화재 처리와 보상 과정에서 약자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허울뿐이며 효율성이라곤 전혀 없는 나라의 정책과 법에 대단한 실망을 했다. 그런 터라 우리나라 사법부를 대단히 불신했던지라 아마 그도 나처럼 너무나 억울해 화살을 날릴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때 나에게 석궁이 가까이에 있는 물건이었다면 나 역시 자신들의 부주의로 아무런 잘못도 없는 이웃을 하루아침에 알거지로 만들고도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 없는, 저 살기에만 바쁜 그들에게,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 그들을 향해 화살을 날렸으리라.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말이다. 몇 년 전까지의 내 심정이 그랬다.

실정 모르는 사람들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법으로 처리할 것을 권했지만, 억울함을 하소연하기에 법은 있으나 마나. 너무 멀기만 했다. 한마디로 당해보면 안다. 나나 김교수처럼 말이다. 내가 이 영화를 많은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하는 이유 중 하나다.

"엄마, 그럼 성폭행 당한 거야?"
"…."

돌아오는 길에 함께 간 딸(고1)이 묻는다. 덩치 큰 한 죄수가 김 교수를 힘으로 제압하며 옷까지 벗기는 그 장면, 충격을 받은 눈치다. 어떻게 답해줄까?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까?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잠시 주춤하는 사이 딸이 재차 묻는다.

"옷을 벗겼잖아. 엉덩이도 보였잖아. 성폭행 당한 거 맞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석궁사건 김명호교수 안성기 정지영감독 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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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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