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뿌리깊은 나무>의 한 장면밀본의 수장 가리온(윤제문 분)SBS
<뿌리깊은 나무>의 밀본은 공포스럽다, 어느 사극에서 이런 막강한 악인들이 존재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두려움 그 자체다. 그들은 최고위층 관료부터 말단 관료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구석구석에 파고들어 있다.
극 속, 그들은 목적을 위해선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궁궐을 넘나들며 학자들을 죽이고, 궁궐 연못에 죽은 학자의 시체를 놓는 엽기스런 행각도 벌인다. 어디 그뿐인가. 영악하기까지 하다. 사대부의 권위는 버리지 못했으면서, 오로지 권력을 위해 서민 깊숙이 파고드는 '꼼수'를 부린다.
'빈촌'에, 빈촌 당사(?)를 세운 가리온은 '백정'으로, 또 다른 핵심 측근들은 빈촌의 구성원이 가장해 살아가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이보다 더한 친서민 행보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 빠졌다. 이들의 서민 행세에는 진정성이 없다. 그들의 행위가 '서민 코스프레'에 불과한 이유다.
세종은 처음 이 밀본이라는 집단에 두려움을 느꼈다. 이들이 가진 '대의명분' 때문이었다. 왕을 견제하는 재상, 성리학의 나라. 왕으로서 얼마나 살 떨리게 무서운 말인가. 하지만 밀본이 가졌던 고고한 기상은 권력욕 때문에 희석됐다. 말로만 명분을 떠든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극 중 세종의 '겨우, 폭력이라니' 라는 한마디 말에선 차가운 분노가 느껴진다.
모두가 글을 읽는 세상, 그래서 모두가 좀 더 나은 사회로 나가기 위한 한글 창제에 대항해 밀본 집단이 보여준 행동은 세종의 말대로 '겨우 폭력'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남을 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편인 유생을 자진의 길로 이끄는 밀본에게 더이상 기댈 미래는 없어 보인다.
폭력의 밀본에게서 세종은 식지 않는 분노로 '한글 창제'를 이뤄냈다. 이는 오늘날 사람들에게 용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한다. 이것은 그저 '허구'가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살아 숨쉬는 한글의 역사가 사실이라는 것은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그런 의미에서 30일 방영된 <뿌리깊은 나무>는 폭력의 사회에 맞선 분노의 힘을 느낄 수 있어 특별했다. 드라마를 보고 가슴 뛰는 당신, 당신에겐 부당한 현실에 맞설 분노가 남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