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홍대클럽에서 공연한다고 다 인디인가?

[오마이 뮤지션①] '제이벨원' 음악생활 10년 만에 싱글앨범 "아직도 처음같다"

11.07.05 19:11최종업데이트11.07.06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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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하와 얼굴들, 국카스텐, 10㎝ 등. 음반 산업의 오랜 침체와 불황 속에서도 인디 뮤지션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는 요즘이다. 이들의 활발한 활동은 충분히 반길만하다. 그렇지만 대형기획사 중심의 시스템, 기형적인 음악 산업 구조 등으로 여전히 좋은 뮤지션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힘든 상황이기도 하다. <오마이스타>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음악성과 진정성' 있는 뮤지션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인디밴드일 수도, 아닐수도 있다. 새롭고 다양한 음악을 접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편집자말]

2010년 8월 25일 홍대 앞 놀이터에서 거리 공연 중인 제이벨원 ⓒ 제이벨원


"하지 말라고 했죠. 가까운 사람일수록 제게 하지 말라고 했어요. 다시 말하면 걱정된다는 뜻입니다. 이게 인디음악의 현실이죠. 음악을 십년 동안 하면서 그저 취미로 생각하자는 마음도 있었어요."

중견 인디뮤지션? 어떤 수식어도 참 어색하다. 기타 메고 홍대 클럽 무대에 섰고, 거리 공연을 해왔다는 제이벨원(이종원, 33)은 흔히 사람들이 아는 유명 인디뮤지션은 아니다. 사람들이 알만한 대표곡도 많지 않았고 클럽보단 거리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음악을 그저 하고 싶어서"라는 말이 단순한 치기가 아님을 지난 세월의 무게가 증명하고 있다. 

뚜벅뚜벅 느리지만 꾸준한 발걸음으로 걸어온 시간이 벌써 십 년. 기타 가방 하나 메고 뒤뚱거리며 다니던 그가 언제부턴가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었다. 그리고 서서히 그를 아껴주는 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혼자를 위하는 것처럼 보였던 음악이 어느새 사람들과 호흡하는 음악이 된 것이다. 그리고 지난 6월 1일 그는 음악 인생 십년 만에 자신의 이름이 담긴 첫 싱글 앨범을 발매했다.

"인디 음악하면서도 인디를 부정했다"

홍대근처 클럽인 '사운드 홀릭'에서 단독 콘서트 중인 제이벨원 이날 클럽을 찾은 인원은 약 160명 정도였다고 한다. ⓒ 제이벨원


2001년 그는 '사이키풀'(psychefool)이라는 이름으로 음악을 시작했다. 초기엔 밴드도 하면서 매우 왕성한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2004년까지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가 50여 곡. 홍대 굴지의 클럽이라는 '프리버드' '빵' 등에서 밴드로 정기공연도 해왔다. 반응도 나름 괜찮았다. 그러다 돌연 음악활동을 쉬어야 하는 때가 찾아왔다.

"슬럼프였던 것 같아요. 그동안 홍대 주류 음악인과의 교류도 별로 없었고 클럽 활동을 위해 오디션을 계속 봤지만 연락이 안 오더라고요. 그들과 어울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디 음악을 하면서도 인디를 부정하는 상황이 된 거죠."

군복무를 마치고 그는 클럽이 아닌 대학원의 문을 두드렸다. 2006년 서울 소재 한 대학의 화학과에 입학 후 박사과정을 밟기로 한 것이다.

"적성을 참고 하기엔 너무 미래가 불확실했어요. 박사 과정도 7, 8년 더 준비를 해야 했죠. 공부하면서 음악을 할 여유가 없었죠. 곧장 대학원을 나와서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중소기업에서 영업직으로 6개월 정도 근무했어요."

대학원 생활 6개월, 직장 생활 6개월 만에 그는 결국 다시 홍대 길거리를 찾았다. 음악에 대한 열망을 다시 확인한 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제이벨원은 지인을 통해 류시화 시인에게 직접 가사를 받았던 때를 소개했다.

"누군가에게 가사를 받은 게 처음이어 긴장했는데 반응 좋았고 곡도 잘 나왔어요. 류시화 시인도 만족하셨는지 바다비 클럽에서 공연할 때 직접 찾아와서 같이 밥 먹자는 말씀도 하셨죠. 그분 말씀 중에 '모든 사람이 내 시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 기억에 남아요. '만 명 중에 천 명이 좋아하면 십만 중에 만 명'이라고 하셨죠.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분도 저런 생각을 하는구나 해서 제 음악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죠."

그렇게 해서 나온 노래가 <지금 시간이 멈춘다면>이다. 여기에 또 하나, 그는 트위터를 통한 변화를 소개했다. 그는 "대외적 활동은 없었지만 트위터를 통해 사람들과 만나면서 그들과 더 가까워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소회를 전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제이벨원은 팔로어 수가 8만이 넘는 파워 트위터리안이다.

그는 "트위터를 하면서 사람들이 자신의 음악을 더 가까이에서 함께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진행된 사운드 홀릭에서의 단독 콘서트. 결과는 어땠을까? 150명 이상이라는 최대 관객이 클럽을 찾았지만 대관비와 장비 대여로 80만원을 손해 봤다는 후문이다.

YB도 독려했던 앨범작업... 천천히 우직하게 간다

그의 싱글앨범 '그녀는 날 사랑하지 않아'는 그간의 곡들보다 다소 대중적이란 평을 듣고 있다. ⓒ 제이벨원

지난 6월 1일 발표한 그의 앨범은 <그녀는 날 사랑하지 않아> 한 곡이 담긴 싱글 앨범이다. 'Realistic Ideal(리얼리스틱 아이디얼)', 'ama(아마)', '노이로제'등의 여러 대표곡이 있는 그로선 다소 아쉬울 수밖에 없을법 했다. "락은 정규앨범을 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제이벨원 역시 동의하는 입장이었다.

"올해 초에 YB의 베이시스트인 태희 형을 만나서 밥 먹은 적이 있어요. 역시 트위터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그 분이 개인적으로 저의 팬이라고 하더라고요. 사람들과 함께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면서요. 태희 형은 제게 싱글이 좋겠다는 생각을 전했어요. 가수 윤종신처럼 매 월(윤종신은 '월간 윤종신'이라는 프로젝트 앨범을 진행 중이다)이 아니라, 몇 개월에 하나씩 내더라도 퀄리티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죠. 그래서 직접 스튜디오를 소개받아 작업을 시작했어요."

앨범 제작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제작과 유통 과정에 대한 자료조사를 모두 혼자서 진행했기 때문이다.

제이벨원은 "10㎝ 같이 인디에서 기획사 없이 유명했던 이들이 일반 가수들보다 많이 벌겠다는 생각도 들었다"면서 "장기하는 기획사에 소속된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부터 기획사에 들어갈 거였으면 거리 공연을 안 하고 다른 방향으로 나갔을 것"이라며 "단독 콘서트도 단순히 사람들이 편하게 내 노래를 들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고 설명했다. 인디에 대한 자신만의 관점과 생각을 밝힌 셈이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겠더라"는 그의 말에서 그간의 고민이 묻어나오는듯 했다.

"십년 동안 활동하면서 앨범을 이제 내는 것은 결국 시작한다는 의미에요. 과외로 생활을 유지하는 모습에 가족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그만큼 빨리 크고도 싶지만 천천히 생각하면서 나가보려고요."

소박한 앞으로의 계획을 밝힌 제이벨원은 우리나라 인디에 대해선 나름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우직하게 걸어온 음악인생에서 나홀로 앨범이라는 결과물을 쥐게 된 제이벨원. 앞으로 계속 주목할만하다.

"솔직히 아이돌 음악이 만드는 과정에서 오히려 더 예술적이지 않나 생각해요. 인디음악이 오버에서 보여지는 것보다 예술적이고 창조적이길 바랐는데 아쉽죠. 지금 인디는 장르보단 사람들과 어떻게 많이 소통하는가에 따라 유명해진 게 아닌가 생각해요. 음악 외적인 것보단 음악으로 알려지는 게 좋지 않을까요. TV에 나오는 음악들보다 편곡이나 프로듀싱 면에서 새롭고 신선하지 않아야겠냐는 생각을 해요." 

제이벨원 제이벨 오마이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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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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