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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공포' 아메리카 제국을 향한 은밀한 경고

[리뷰] 폴 해기스 감독의 신작스럴러 <쓰리 데이즈>

11.01.01 12:37최종업데이트11.01.01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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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쓰리 데이즈> 포스터. ⓒ 롯데쇼핑㈜롯데엔터테인먼트

글을 시작하면서

 

폴 해기스는 이제 한국 관객에게 친숙한 감독이 되었다. 2005년에는 <밀리언달러 베이비>를 제작·각색하여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아카데미 작품상을 안겨 주었다. 한때는 세계의 용광로라는 찬사를 한몸에 받았던 아메리카의 인종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한 <크래쉬>의 감독·제작·각본을 맡음으로써 2006년 아카데미 작품상과 각본상을 받았다.

 

이라크 전쟁을 주제로 한 <엘라의 계곡>(2007)에서도 해기스는 각본과 감독, 그리고 공동제작에 참여했다. 대량 살상무기 해체와 사담 후세인 정권 궤멸, 이라크 민주주의 건설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자행된 이라크 전쟁의 실체를 파헤친 영화 <엘라의 계곡>. 해기스는 무의미한 전쟁과 인명살상, 그것을 강제한 미제국의 존재의의를 날카롭게 제기한다.

 

그는 사회·정치적인 문제작뿐만 아니라, <007 카지노 로얄>(2006)과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 (2009) 같은 흥행성 짙은 대작영화의 각본을 성공적으로 써내기도 했다. 결국 폴 해기스는 액션, 스릴러, 드라마에 이르는 다채로운 장르에서 한껏 물오른 기량을 뽐내면서 오늘날 세계 영화계의 문제감독이자 흥행 보증수표로 인정받고 있다.      

 

탈옥할 것인가, 주저앉을 것인가

 

영화 <쓰리 데이즈>의 한 장면. ⓒ 롯데쇼핑㈜롯데엔터테인먼트

절박한 표정으로 중년 사내가 병원 계단을 뛰어오른다. 감옥에서 자살을 시도한 아내를 만나려는 그를 경찰이 막아선다. 경찰은 감옥에서 실려 온 죄수를 면회할 수는 없다는 규칙을 단호하게 말한다. 애처로운 목소리로 사내가 호소한다. "제발, 2분만!" 사내를 바라보는 경찰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리는가 싶더니 "2분이오!" 하면서 병실 문을 닫는다.

 

살인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아내 라라를 찾아온 존의 표정은 허탈하다 못해 안쓰럽다. 그를 올려다보는 라라의 핏기없는 얼굴과 풀려버린 동공은 너무도 많은 것을 웅변한다. 존은 아내의 결백을 믿는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내를 구출할 방도가 없다. 재판절차는 이미 종결된 것과 마찬가지고, 상황은 돌이킬 수 없다. 당신이 존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쓰리 데이즈>가 던지는 문제는 단순·명쾌하다. 사랑하는 아내가 누명을 쓰고 평생 옥살이를 해야 한다. 그런 고통을 견디지 못해 자살까지 감행한 아내를 위해 남편이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 이쯤에서 우리는 리암 니슨이 주연한 영화 <테이큰>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납치된 딸을 위한 아버지의 목숨을 건 사투와 행복한 결말.

 

존을 괴롭히는 것은 외아들 루크가 엄마를 냉랭하게 대한다는 사실이다. 남편보다도 아들을 더 사랑했던 아내 라라가 겪어야 하는 엄청난 상실감. 존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다. 자신과 아내, 아내와 아들, 자신과 아들로 대표되는 가족 관계를 복원하는 방법. 그것이 아니라면 가족에서 아내와 엄마를 지우고 지금처럼 결손가정을 계속 유지하는 방법.

 

중첩적인 가족 관계와 최종 결정

 

영화 <쓰리 데이즈>의 한 장면. ⓒ 롯데쇼핑㈜롯데엔터테인먼트

존에게도 부모가 있다. 노부부로 평범하게 살아온 그들에게 며느리의 수감은 청천벽력 같은 충격이다. 하지만 그들은 꿋꿋하게 견디면서 손자를 돌본다. 존과 아버지 관계는 그다지 시원찮다. 아버지의 생신날, 축하전화를 할까 말까 하는 문제로 존은 라라와 언쟁을 벌이기까지 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께 드릴 선물을 잊지 않은 착한 아들이다.

 

어느 날 새벽녘에 들어온 존이 손자 루크를 데려가겠다고 한다. 놀라움과 당혹감이 겹친 얼굴로 아버지가 말한다. "루크는 깊이 잠들었다." 손자를 찾아가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덧붙인다. "괜찮은 거냐?" 아들은 계단참에서 "그렇다"고 말하고 이내 사라진다. 아버지의 손길이 아들의 옷과 가방에 미친다. 그의 손에 들어오는 비행기 탑승권 석 장.

 

존과 아버지가 작별한다. 평소와 달리 아버지는 아들에게 악수를 청하고, 그를 깊이 당겨 끌어안는다. 어머니가 영문 몰라 하면서 지청구한다. 그래도 아버지는 아들과 오래 작별인사를 나눈다. <쓰리 데이즈>가 여느 탈주영화나 탈출 드라마와 다른 점 하나가 여기 있다.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중첩적으로 엮음으로써 개인의 고립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그렇게 아들과 작별함으로써 아버지는 존의 최종결정을 존중하고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것이다. (여기서 감독의 남성 중심주의를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논외로 하자.) 끝까지 루크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라라와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는 존의 자세에서도 이것은 되풀이된다. 우리가 가족을 구성하는 일원이라는 사실을 영화는 확고하게 각인한다.

 

자명한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서

 

영화 <쓰리 데이즈>의 한 장면. ⓒ 롯데쇼핑㈜롯데엔터테인먼트

세르반테스의 불멸하는 기사도소설 <돈 키호테>에 대해 존이 강의한다. 그는 문학을 가르치는 대학교수다. 돈 키호테의 돌출행동에 담긴 의미를 학생들에게 묻는다. 왜 돈 키호테는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을 일삼았는지, 그것을 물어보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에 왜 돈 키호테만은 동의하지 않았느냐고 문제를 제기한다.

 

그가 말하려는 핵심은 자명한 진리와 보이는 것 사이의 거리다. 돈 키호테가 돌진했던 풍차와 공주라 여겼던 둘씨네야, 명마로 생각했던 로시난테의 함의가 무엇인지를 말하려는 것이다. 학생들의 대답을 끝까지 기다리지 않고 존은 말한다.

 

"모든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며,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어느 날 불시에 들이닥친 수사관들에게 아내를 빼앗긴 존은 아내를 구출할 방도를 백방으로 찾는다. 하지만 그가 맞닥뜨린 결론은 '출구 없음'이다. 아메리카의 대법원은 지난 20년 이상 살인사건을 심리한 적이 없으며, 살해 물증과 증인 때문에 라라는 풀려날 수 없다는 것이다.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는 그녀에게 유리한 증거를 가져오는 것!

 

하지만 존에게 그런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공소장이나 변호인 기록을 보고 또 보아도 뾰족한 수는 나오지 않는다. 아내의 무죄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확신과 그녀를 감옥에서 빼내야 한다는 명제가 그에게 대상을 바라보는 다른 눈을 찾아준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 예외적인 것, 그리고 목적한 바를 향해 불타오르는 강고한 실행의지다.        

 

경찰과 교수, 두뇌싸움에 대하여

 

영화 <쓰리 데이즈>의 한 장면. ⓒ 롯데쇼핑㈜롯데엔터테인먼트

할리우드 영화의 고전적인 수법 가운데 하나는 늦게 출동하는 경찰이다. 어떤 경우도 경찰이 제때 사건을 해결하거나 용의자를 체포하는 일은 없다. 이것은 영화계의 불문율처럼 보인다. 셜록 홈스나 콜롬보 혹은 마담 마플이나 포와로처럼 놀라운 솜씨로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나 사립탐정이 있기는 하다. 그래도 경찰은 언제나 늦고 서툴며 허둥댄다.

 

<쓰리 데이즈>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경찰은 존보다 매번 한 걸음씩 늦는다. 평생을 도망자로 살아야 하는 라라와 존의 운명이 걸린 물증마저 눈앞에서 놓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테이큰>과 달리 영화의 결말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희대의 탈옥수 데이먼과 존의 대화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자수한 이유를 묻는 존에게 데이먼은 말한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경찰 때문에 늘 마음 졸여야 했다. 그걸 견딜 수 없었다."  

 

흥미로운 점은 경찰과 두뇌싸움을 벌이는 존의 지적 능력이다. 데이먼이 제시한 다섯 가지 기획과 사흘이라는 촉박한 시간 제약에서도 일부러 흘리는 정보가 일품이기 때문이다. 존이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선택하는 최종지점은 어디일까. 영화는 이런 복선을 깔면서 관객에게 미제국과 무관하거나 적대적인 관계를 가진 나라를 맞춰보라고 묻는다.      

 

글을 마치면서

   

영화 <쓰리 데이즈>의 한 장면. ⓒ 롯데쇼핑㈜롯데엔터테인먼트

<쓰리 데이즈>와 관련된 자료에서 강조되는 것은 아내에 대한 사랑, 불가능해 보이는 탈옥, 그리고 리암 니슨과 러셀 크로우의 연기대결 등이다. 하지만 그것은 외려 영화를 제약하는 요인처럼 보인다. 폴 해기스처럼 사회문제에 관심 있는 감독이 흥행만을 노렸다기보다는 흥행성과 사회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염두에 뒀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영화의 배경인 피츠버그에 강력사건이 발생할 경우 용의자 체포를 위한 전면검색에 소요되는 시간은 35분이란 설명이 나온다. 그것이 9.11테러의 결과라는 자상한 설명이 보태진다. 워싱턴 같은 제국의 심장부에서 그 시간은 10분 이내로 좁혀진다. 무슨 말인가. 제국의 대외적인 공포와 불안이 일상화되었음을 명시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다.

 

아무리 철통 같은 감옥이라도 탈출구는 있다는 데이먼의 발언에도 암시는 있다. 제국의 수비망이 은산철벽처럼 완벽하다 해도 약한 고리가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것의 함의는 사회정의가 온전히 실현되지 못할 경우 제국에게 반기를 들 수 있는 개인이나 집단 혹은 국가가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폴 해기스의 은밀한 경고다. 

2011.01.01 12:37 ⓒ 2011 OhmyNews
아메리카 폴 해기스 사회정의 가족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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