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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집 하수구 물소리는 달콤해

[리뷰] PIFF '아시아 영화의 창', 프라사나 자야코디 감독의 <카르마>

10.10.21 11:40최종업데이트10.10.2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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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 PIFF


고통스러운 삶의 흔적

업(業)은 사전 풀이를 빌리면, 불교에서 중생이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선악의 소행을 말한다. 혹은 전생의 소행으로 말미암아 현세에 받는 응보(應報)를 가리킨다. 업은 산스크리트어로 카르마(Karman), 혹 갈마(羯磨)라고도 한다.

카르마는 살아 있는 존재라면 그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는 고통스러운 삶의 흔적, 혹은 업식이다. 이 업은 불가에서는 계속 윤회한다고 믿고, 윤회하는 인연에서 만나는 나라는 존재는 결국 또 다른 나로서 타인과의 만남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카르마 ⓒ PIFF


너무나 스리랑카적인 영화

인도의 스리랑카는 불교의 나라. 그 불교의 나라 스리랑카에서 신인으로 주목 받고 있는 프라사나 자야코디( Prasanna jayakody) 감독은 스리랑카에서 태어났고, 21세의 젊은 나이에 <인간의 그림자>로 수상하며 연극계에서 첫 이력을 쌓았다.

감독은 TV 방송업계에서 작업을 계속하며 국영방송상을 여러 차례 수상했다. 카이로국제영화제 실버피라미드상 수상작인 <산카라> (2006)로 감독 데뷔했다. 이번 <카르마>가 두번째 작품이다.

불교의 나라, 스리랑카의 영화 <카르마>는 불교의 사상을 영화의 근저에 깔고 있다. 때문에 영화가 약간은 어렵다. 감독 역시 관객에게 친절하지 않다. 추상화법으로 주인공 파얄의 내적심리의 절규들을 몽타지 수법으로 보여준다. 쉽게 감독의 의도를 읽을 수 없으나,  영적 기운이 서사와 이미지로 재현된다.

카르마 ⓒ 송유미


이 영화의 대략 줄거리는 이렇다. 허름하고 어둡고 습한 창고 같은 방에서  살아가는 청년의 이름은 피얄. 피얄은 얼마 전까지도 죽어가는 모친과 한 침대를 사용하며 생활했다. 피얄이 사는 낡은 건물의 윗층에는 노래하는 유부남 가수와 미모의 젊은 여자가 동거하고 있다.

건물이 워낙 낡아서 윗층에서 내려보내는 목욕물 따위가 피얄이 기거하는 벽을 타고 온종일 축축하게 흘러내려 바닥은 흥건하고, 이 하수구를 통해 죽은 고양이가 발견되기도 한다. 벽과 벽 사이는 전혀 방음이 되지 않아 금이 간 틈으로 말소리, 발소리, 싸우는 소리, 신음 소리 등 한방처럼 들린다.

그녀의 집 하수구 물소리... 달콤해

혼자 살아가는 피얄에게 이 소리들은 존재를 확인하는 소리. 그래서 피얄은 이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종국에는 지붕 위에 올라가서 윗층 여자와 동거하는 남자와의 정사 장면을 지켜보다 심한 매를 맞기도 한다.

<카르마>에서 내러티브를 풀어내는 방식은 지극히 절제된 대화를 통해 심미적인 묘사와 행동을 극대화하며 서사를 풀어나간다. 피얄은 자신의 공간에 존재하는 수도꼭지 달린 수조에 뛰어 들어 종종 엄마 뱃속에서 헤엄치는 태아처럼 웅크려 있길 좋아한다.

그리고 매일 윗층 여자가 목욕하고 흘러 보내는 물소리를 듣기 좋아한다. 그는 벗은 여자의 몸을 상상하며 그 하수구의 하얀 물거품 속에 자신의 발을 담근다. 이러한 내면의식을 표현하는 방법의 카메라의 시선은 어둡다. 마치 엄마 뱃속에 든 태아가 느끼는 영적 기운이 감돌고, 파얄의 어두컴컴한 공간은 세상과 단절되어 고립된 피안에 닿아 있다.

카르마 ⓒ PIFF


이 영화의 초반으로 돌아가 보자. 캄캄한 암전 속에서 영화가 시작된다. 조명이 서서히 밝아오면 피얄은 커다란 침대 위에 태아처럼 웅크리고 있다. 이 피얄 곁에는 거친 숨소리를 뱉으며 죽어가는 피골 상접한 어머니가 누워있다. 피얄은 곧 숨을 끊을 듯 말듯 힘들게 이어지는 앓은 숨소리(신음소리)를 들으면서도 그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런 피얄은 이렇게 고백한다.

"어머니가 죽고 난 이후 일종의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영화 속에 숨은 연극의 의미가 주제를 확산한다

불교적 해석에 의거하면, 피얄은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업)을 이웃 여자에 돌려 받아 닦는 셈.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덜고자 남몰래 이웃 여인에게 의지한 파얄의 업은 다시 고스란히 부메랑처럼 돌아온 것이다.

해서 이웃 여자는 심각하게 깊은 병을 앓고, 회생이 힘들 정도로 병든 남의 여자에게 피얄은 어머니에게도 베풀지 못한  간호를 혼신을 다해 쏟아 붓는다. 이를 감독은 대담한 실험 형식을 빌려 업(業) 심상화시키는데 성공한다.

이렇게 프라사다 자야코디 감독은 피할 수 없는 업에 갇혀 수레 바퀴를 굴리는 인간의 죽음, 생명, 죄의식, 성적 욕망, 고통, 헌신 등 추상적 개념을 과장된 표현주의 방식으로 다양한 이미지를 연출한다.

수시로 하혈을 콸콸 쏟아내는 이웃의 병든 여자를 사랑하게 된 파얄. 그러나 여자가 아픈 곳은 자궁만이 아니라 유방도 수술에 의해 절제 되어 전혀 여성성을 느낄 수 없다. 이런 여자는 없어진 가슴으로 충분히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데, 파얄은 없어진 여자의 유방을 보고 단말마를 지르며 흐느낀다.

공중에 매달린 배에 타고 있는 일행의 남자는 별 의미 없는 말을 반복한다. 계속 죽고 싶은가?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반복한다. 이와 같은 반복된 질문은 감독의 영화 주제에 다름 아닐터. 그렇다면 <카르마>는 어려운 영화가 아닌 것이다.

덧붙이는 글 PIFF에도 송고 할 예정임.
카르마 스리랑카 영화 프라사나 자야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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