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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남자가 되지 못한 까닭

[리뷰]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통해 본 <인셉션>

10.07.29 15:55최종업데이트10.07.29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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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의 놀라운 역작, 영화 <인셉션>을 보았다. 영화의 줄거리야 어찌됐든, <인셉션>은 '성장하지(남자가 되지) 못하는 소년의 이야기'로 정의할 수 있다. 최근 국내외를 막론하고 나타나는 피터팬 신드롬의 반복·변주이며, 전 세계적으로 감지되고 있는 지구 종말론, 세기말 증상을 징후적으로 보여주는 또 하나의 텍스트인 셈이다.

세기말 증상과 관련해서는 좀 더 광범위한 논의가 필요하지만 2012년 지구멸망 논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회의, 전세계적 환경위기, 경제위기 이후 자본주의에 대한 위기감 등에 의해 나타나는 불안감으로 요약할 수 있다. 특히 최근 등장한 수많은 소설, 영화, 회화 등에서 이러한 증상의 징후를 확인할 수 있다.

4단계의 꿈이 만들어내는 환상의 스펙터클

▲ 인셉션 인셉션은 반복되는 소년의 귀환을 다룸으로써 성숙을 지연시키는 소년들만의 판타지를 그려낸다. ⓒ 워너브라더스

<인셉션>의 기본 줄거리는 한 거대 기업의 향방을 바꾸기 위해 상속자의 무의식에 침투하는 주인공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와 그를 돕는 팀원들의 모험담이다.

부인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쫓기던 코브는 아이들이 있는 미국으로 돌아가게 해주겠다는 조건으로 석유재벌의 후계자 피셔에게 생각을 심으라는 사이토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코브는 아버지의 수제자인 아리아드네를 비롯한 다섯 명의 팀원과 함께 피셔의 무의식의 심층에 기업 분할이라는 하나의 생각을 심기 위해 꿈 속에 꿈, 그 꿈 속에 또 다른 꿈이라는 3단계 꿈을 조직한다.

영화의 재미는 피셔를 노리고 만들어낸 3단계 꿈에 코브의 꿈까지 더해 총 4단계의 꿈이 뒤섞여 만들어내는 스펙터클과 각각의 꿈이 가지는 시간차(꿈에서 두뇌활동이 평소 때의 20배인 것처럼 꿈에서의 시간은 현실보다 20배가 빠르다)를 이용해 가까스로 작전을 완수하는 과정을 보는 쾌감에 있다.

여기에 코브의 트라우마라 할 수 있는 죽은 아내 맬과 두 사람의 추억, 코브의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환영 등이 추가되면서 이야기는 좀 더 복잡하고 난해해진다.

우선 크리스토퍼 놀란이 이 영화를 '마음의 건축'이라 표현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꿈꾸는 이가 만들어낸 세계가 당사자의 의식적·무의식적 세계를 표출한 것이라 할 때, 코브의 꿈에서 확인되는 것은 무너져가는 그 자신의 위태로운 상태일 것이다. 인간이 만든 꿈은 스스로가 신이 되는 세계이지만, 무의식으로 인해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세계이면서 이전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영화는 다분히 프로이트적이다.

이 모든 꿈의 설계자는 '아버지'

영화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전진 배치하는 듯하면서 실제로는 이를 교묘히 뒤집는다. <인셉션>은 마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소개하듯 인간 무의식에 대한 이야기를 강론하고 그것의 심층에 '아버지-아들' 관계가 있다고 역설한다. 하지만 곧이어 프로이트의 핵심이론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뒤집고 아버지의 질서 안으로 들어가는 코브를 보여준다.

영화에서 꿈의 설계자는 아리아드네로 설정되어 있지만, 아리아드네는 아버지의 분신일 뿐이다. 애당초 그에게 마음의 건축을 가르친 이는 아버지이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찾아간 사람도 아버지, 그를 집으로 안내하는 이도 아버지이다. 코브는 아이들이 보고 싶고 아버지가 되고 싶어 집으로 돌아간 듯 보이지만, 정확하게는 아들의 자리로, 아버지의 질서 속으로 안착한 것이다. 따라서 이 모든 꿈의 설계자는 '아버지'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누구인가. 질문을 던지기 전에 영화 속 여성, 정확하게는 어머니가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를 보자. 죽은 맬은 코브의 꿈 속에서만 등장하는 환영이다. 맬은 코브의 아내로서만 불러들여질 뿐 어머니의 모습으로 환기되지 않는다. 코브의 어머니는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로만 존재한다.

어머니는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아이들과 자신을 떼어놓는 원망의 대상이다. 아리아드네 역시 코브와 이성적 관계로 발전하지 못했다. 이렇듯 영화에서는 기원으로서의 어머니가 철저히 제거되어 있다. 어머니의 부재는 아버지-코브-제임스(코브의 아들)로 재생산된 직선의 역사가 반복 순환된 것임을 상기시킨다. 이제 아버지는 코브이며, 코브는 곧 제임스가 된다.

아버지-코브-제임스가 종적 반복이라면, 코브 자신을 증식시키는 횡적 반복은 다름 아닌 꿈이다. 횡적 반복은 영원히 젊은 자신의 모습을 반복해서 살기 위해 동원된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피터팬이나, 영원히 아이로 머물고 싶었던 양철북 소년처럼 아버지 되기는 계속해서 지연되고 오이디푸스 신화는 완성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코브를 종적·횡적으로 증식해내는 것은 유성생식이 아닌 '무성생식'이다. 다음 세대의 탄생으로 증식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다만 마주 보는 두 거울 앞에 자신을 비추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띠... 남자가 되지 못한 소년

그렇다면 이제 두 번째 질문을 할 차례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 있는 사이토는 누구인가. 코브의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 버리는 그는 결정적으로 코브를 꿈 속으로 안내하는 사람이다. 사이토는 1단계 꿈에 들어가자마자 부상을 입고 모든 팀원들의 보살핌을 받는다.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사이토의 부상은 여성성으로 은유되고, 코브가 끝까지 찾으려 하는 대상 역시 사이토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리하여 같이 늙어 가자던 맬에게 한 프러포즈가 사이토에게서 "다시 젊어져서 같이 늙어가길 바란다. 홀로 고독하게가 아니라"라는 말로 반복되어 나오고, 수십 년의 세월을 견디며 코브를 기다리는 사이토를 보노라면, 사이토는 코브의 '이상형'일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 든다. 두 사람은 거울의 이쪽과 저쪽처럼 마주 보고 있다. 환상 속에서 코브의 나르시시즘이 만들어낸 인물, 그가 바로 사이토인 것이다.

이처럼 소년의 자아는 증식하는 동시에 분열한다. 분열된 자아는 종적으로는 아버지-아들-손자의 형태로, 횡적으로는 소년시절의 무한반복으로 나타난다. 아들 제임스는 아버지 코브를 불러오지만, 코브가 돌아가는 것은 아버지에 의해서이다. 영화의 결론은 집나간 코브가 아버지에게로 안착하고, 아버지를 잃은 피셔가 유사 아버지(삼촌)를 세우는 과정이 완성되는 것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 분열된 그 자신이다. 이 돌고 도는 뫼비우스의 띠는 자아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고로 소년은 남자가 되지 못한다.

남자의 자격을 획득하지 못하는 소년의 모습은 피셔가 철통 방어를 뚫고 금고에서 찾아낸 것이 바람개비와 그의 어릴적 사진이라는 점, 집으로 돌아온 코브가 비로소 대면하는 것이 아이들의 얼굴이라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더군다나 코브가 돌아간 곳은 미국이다. 미국은 원래 아비 없이 세워진 나라, 소년들의 나라이며 <노인과 바다>의 프론티어 정신이 아버지의 질서를 대체한 나라가 아닌가. 또한 가업을 이은 피셔에게 남겨진 일은 아버지의 제국을 분열(분할) 시키는 일이다. 마침내 코브와 피셔가 도달한 곳은 성장을 지연시킨 채 그들 자신만을 분열하면서 반복하는 소년들의 세계인 것이다.

시간을 모티브로 증식하는 무한대의 세계

▲ 접혀지는 거리 꿈에서는 설계자가 마음 먹은대로 세계를 비틀 수 있다. ⓒ 워너브라더스


<인셉션>에서 반복과 분열은 꿈이라는 소재에서도 찾을 수 있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매트릭스>, <아바타>에 이르기까지 SF영화들의 배경인 실재-환상이 현실과 기술이 만들어낸 환상이라는 두 축을 기본으로 서로 다른 '공간'을 구성한다면, 인셉션은 '시간'을 주요 모티브로 하면서 훨씬 더 많은 차원을 구성해낸다.

마치 현대물리학의 주요 이슈로 등장한 '끈이론'처럼 수많은 차원의 시공간이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꿈'의 공간에서 물리학 법칙은 쉽게 뒤집힌다. 걷고 있던 거리의 끝이 접히고 위아래가 닿는 M.C. 에셔의 계단이 가능해지며 무중력상태가 되기도 한다. (피셔의 이름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현실을 되찾기 위해 환상을 만들어낸 누군가(아버지·신)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리는 기존 영화들과 달리, <인셉션>에서 환상을 대체한 꿈의 설계자는 다름 아닌 그 자신이다. (함께 공유하는 꿈에는 설계자가 있지만, 꿈의 설계자가 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다시 말해 세계는 꿈을 꿀 수 있는 이들의 수만큼 존재하고 그 꿈에서 또 다른 꿈을 꾸면서 무한증식된다. 아리아드네가 만든 마주 보는 두 거울에 비친 코브의 상(像)처럼 무수히 많은 내세계가 있을 뿐 아버지·신은 없다.

마주보는 거울의 반복 투사되는 상이 의미하는 세기말적 징후

이밖에도 영화 속 환상과 실재가 교차하는 요소를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환영으로만 존재하는 맬과 환영에서 깨어나는 주문인 '라 비앙 로즈'는 맬을 연기한 마리온 꼬띠아르가 과거 연기했던 에디뜨 삐아프의 노래이다. 코브와 그의 동료, 아리아드네가 지닌 토템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왔던 체스 말과 주사위라는 점, 아리아드네가 아버지 미노스가 만든 미궁에서 테세우스를 구하는 신화의 인물 아리아드네와 동일한 이름을 갖는다는 점도 흥미롭다.

<인셉션>은 코브의 토템인 팽이,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M.C.에셔의 그림, 미노스가 만들어놓은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와 같다. 성숙을 지연시키는 소년의 판타지가 마주 보는 거울의 상처럼 자신의 모습만을 반복투사하는 것은 세기말적 분위기가 팽배한 현재 우리 사회와 닮았다.

모험을 떠난 소년은 집으로 돌아와 온순한 아들이 되고 꿈 속의 꿈, 또 그 속의 꿈으로 도망치며 영원히 늙지 않는 길을 택한다. 이 벗어날 길 없는 미궁 속에서 '아리아드네의 실'은 무엇일까. 문득 영화가 심어놓은 바이러스보다 강력한 하나의 '기억'을 떠올린다. 바로 거울을 깨는 아리아드네의 모습이다.

인셉션 크리스토퍼 놀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소년의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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