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존엄사 다룬 연극, 유쾌함 속에 담은 고민

창작 뮤지컬<미라클> 공연을 보고

09.12.30 18:17최종업데이트09.12.30 18:17
원고료로 응원

눈이 쏟아지던 지난 27일 대학로에서 뮤지컬을 보았다. 멋보다는 건강을 지키는 것이 더 우선인 중년이다 보니 뮤지컬을 보러 간다면서 등산화를 신고 길을 나섰다. 대학로에 들어서니 눈과 함께 들뜬 젊은 기운이 넘쳐난다. 미끄러운 길을 조심하며 뮤지컬이 공연되는 '미라클 씨어터' 극장에 도착했다. 미리 온 몇 명의 일행들이 극장 좁은 로비에서 기다렸다. 더러 등산화를 신고 온 사람들이 보인다.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과 만남은 즐겁다.

 

여덟 쌍 비슷한 연령대의 부부가 모여 함께 등산도 하고 가끔 여행도 한다. 회비를 모았다가 이렇게 연말에 문화생활도 함께 한다. 많은 사람이 모이기에 모두 보지 않은 공연을 택하기가 쉽지는 않다. 비용문제도 있고 해서 대형극장에서 하는 유명한 공연은 따로 형편에 따라 갈 수밖에 없고, 이렇게 모여서 볼 때는 주로 소극장에서 하는 공연을 찾아서 본다.

 

작년에 보았던 '그 자식 사랑했네'였던가. 바로 앞에서 젊은 배우들이 훌훌 벗는 성행위 퍼포먼스에 너무 민망해서 올 해는 조금 신중하게 선택을 해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전 연령대를 감안한 공연이나 특별히 중년을 겨냥한 것이 아니면 대학로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이 볼 만한 프로그램을 찾기가 쉽지는 않다. 작년에도 그랬다. 극장 안에 들어가 보니 조그만 공연장에 자리도 맨 앞자리였다. 16명의 중년 남녀가 쭉 앉아서 젊은 배우들이 벌이는 사랑 타령을 보고 있자니 우리도 민망했고, 연극을 하던 배우들도 나이든 관객 때문에 시선처리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 오히려 그들에게 미안한 느낌이 들었었다.

 

▲ 공연 포스터 극장 벽면에 붙어 있던 <미라클>포스터. ⓒ 박금옥

올 해는 연극보다는 뮤지컬을 보자고 했다. 창작 뮤지컬이라는데 사전정보가 전무하다. 극장 로비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읽어 보니 여러 번의 앵콜 공연을 했고 지금도 오픈 런 공연 중이라는 선전 문구가 들어온다. 하트 모양과 남녀 배우의 맞잡은 손 그림은 작년 연극을 떠 올리게 해서 혹시 그런 종류가 아닐까 내심 걱정도 되었다.

 

다행히 좌석이 맨 앞자리가 아니었다. 맨 앞자리는 극 내용에 따라 배우와 관객이 서로 주고받아야 할 장면들이 종종 있어서 부담스러운데 그 부담에서는 벗어나게 되었다. 특히 마당극이나 소극장에서 하는 연극은 그런 장면이 꽤 많다. 작년에는 맨 앞자리 중간에 앉아 있던 한 분이 계속 그 담당을 했고, 연극이 끝난 후에 배우들 측에서 고마웠다는 뜻으로 조그만 선물을 주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뮤지컬도 꽤 많은 장면이 앞자리 관객들의 반응을 이끌어 내는 것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소극장은 맨 뒷자리 좌석이라 해도 무대와 너무 가깝다. 마당극 같은 극이나 중년을 위한 극이 아닌 경우에 중년의 사람들이 한 줄을 다 차지하고 앉아 있을 때, 무대에 처음 입장하고 관객들을 죽 둘러보는 순간 배우들은 어떤 느낌이 들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시작 전 방송멘트가 흘러나온다. 휴대폰을 꺼달라 해서, 진동으로 바꾸려고 핸드폰을 꺼내는데, 진동은 옆 사람에게는 아주 크게 들리니 아예 끄란다. 웃으면서 핸드폰을 껐다. 혹시 극 중간에 화장실 가고 싶으신 분은 의자 아래 부분에 버튼이 있으니 누르란다. 고개를 숙여 의자 아래에 있는 버튼을 찾았다. 잠깐 시간이 흐르고 멘트가 나온다. "버튼은 없습니다. 무조건 참으십시오" 하하 웃음이 터졌다. 센스 있는 대화법에 젊음이 묻어나는 것 같아 좁은 공간의 답답함이 가시고 기분이 좋아졌다. 

 

뮤지컬 <미라클>은 무대가 병원이다. 굉장히 무거운 주제가 될 수도 있는 존엄사 문제를 다뤘다. 환자와 환자를 책임져야 할 주변인물들 입장을 코믹한 상황 속에 버무렸다. 어느 누구도 죄의식에 빠뜨리고 싶지 않다는 연출자의 의지가 보이는 듯했다.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있는 환자와 그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와의 영혼사랑이라는 틀을 빌려서 존엄사에 찬성하는 것이 얼마나 가벼운 판단인가 얘기했고, 또 그런 환자를 돌봐야 하는 가족들의 피폐해지는 생활을 드러내면서 무조건 반대하는 것도 참으로 견디기 어렵다는 뜻도 드러냈다. 극은 무엇이 더 좋고 나은지를 판단하지 않았다. 존엄사는 어느 누구에게 한정된 책임지우기가 아니라 이 시대에 사는 우리 모두가 고민하고 책임져야할 문제였다.

 

<미라클>은 노래와 대사가 적절히 가미되었다. 생동감 넘치는 배우들 열연에 웃기도 하고 박수로 화답하기도 했다. 재미있었다. 끝마무리 가슴이 먹먹하고 코끝이 찡해지는 것 말고는 코믹 뮤지컬이었다. 한 마디로 장기공연이 무색하지 않게 느껴졌다. 노래 속에 나오는 '식어버린 핫초코 맛'은 어떨까 생각하면서 주인공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식물인간이 되어있는 내가 일어나는 게 기적이 아니라, 이렇게 당신을(간호사) 만난 것이 내게는 기적이예요."

 

▲ 대학로 연극을 보고 나오니 사방이 온통 눈으로 덮여 하얗다. 차도 사람도 엉금 거렸다. ⓒ 박금옥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으며 산 중년의 사람들을 감동시키기가 쉽지는 않을 것인데 보고난 느낌은 대체로 가슴 한편 찡했다고 하니, <미라클>은 퍼석한 가슴들도 잠깐 촉촉하게 만들은 기적을 이룬 셈이다.

 

눈발이 아직 완전히 걷히지 않은 대학로 길을 비록 투박한 등산화를 신고 걸었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과 기억에 남는 뮤지컬로 해서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었다.

 

길 가의 남녀 젊은이들이 눈 속에 서로 구르며 깔깔거리는 풍경이 낯설지 않았다.

2009.12.30 18:17 ⓒ 2009 OhmyNews
미라클 창작뮤지컬 대학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민기자가 되어 기사를 올리려고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