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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축구, 2009년 르네상스를 열다

09.12.29 13:58최종업데이트09.12.29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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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축구는 2009년 그 어느때보다 찬란한 한 해를 보냈다. 사상 첫 7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을 이뤄낸 성인대표팀 허정무호를 비롯하여, 각급 연령대 유소년 대표팀들이 일제히 국제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한국축구의 미래를 밝혔다. 포항은 2006년 전북에 이어 3년만에 다시한번 AFC 챔피언스리그를 제패하며 세계축구에 K리그의 자존심을 세웠다.

 

한정된 시장과 인프라, 경기 불황과 우수 선수 유출로 인한 자국리그 위축, 여러 가지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불구하고 찬란한 성과를 거둬들인 올 한해는 한국축구가 오랜 침체기를 벗어나 한단계 더 도약할수 있는 전환점을 마련한 르네상스의 시기로 평가할수 있다.

 

허정무호, 7회 연속 월드컵 본선진출

 

사실 시작은 축복받지 못했다. 2007년 12월, 허정무 감독이 7년 만에 자신을 마지막으로 대가 끊겼던 국내파 감독의 계보를 다시 잇는다고 했을때 기대보다는 우려가 컸다. 외국인 감독 선임과정에서 보여준 축구협회의 졸속행정과 안이한 일처리, 이미 한번 '실패한 감독'에 대한 우려 등이 겹쳐 허정무호는 출발부터 험난한 여정을 예고했다.

 

시련도 있었다. 베이징올림픽과 월드컵 3차예선에서 보여준 한국축구의 총체적인 무기력증은 한때 '축구장에 물 채우라'는 여론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한때 제기되었던 경질론을 딛고 벼랑끝에서 부활한 허정무 감독은, 최종예선에서 기성용-이청용-이근호 등 신예들을 중용하며 과감하게 세대교체에 성공, 사우디- 이란 등이 속한 죽음의 조에서 당당히 조 1위로 월드컵 7회 연속 본선진출에 성공했다. 같은 조의 북한도 44년 만에 본선에 진출하며 사상 최초로 남북한이 동시에 월드컵 무대를 밟는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됐다.

 

세대교체와 월드컵 본선진출의 두 마리 토끼를 거머쥔 허정무호는 이제 내년 열리는 남아공월드컵 본선에서 아직까지 정복하지 못한 원정 16강이라는 새로운 미션에 도전한다. 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그리스와 함께 B조에 배속된 한국은 아시아팀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해볼만한 조에 편성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새로운 황금세대의 등장

 

한국축구에 새로운 황금세대가 도래하는가. 한국축구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유소년 축구가 올해 국제무대에서 동시에 두각을 나타내며 눈부신 한해를 보냈다. 7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안청소년대회에서는 U-14 대표팀이 결승에서 북한을 꺾고 5승 무패로 전승 우승을 차지하며 첫 포문을 열었다.

 

가을에는 U-20 대표팀과 U-17대표팀이 잇달아 청소년 월드컵에서 8강에 오르는 쾌거를 일궈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20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은 U-20 대표팀은 지난 10월 이집트에서 열린 200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에서 91년 대회 이후 무려 18년 만에 8강에 올리며 청소년축구의 암울했던 징크스를 날려버렸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세대의 첫 대표팀 사령탑인 홍명보 감독이 지도자로서 성공적인 데뷔를 마침으로써 그동안 지도력을 둘러싼 논란을 종식시키고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가 됐다.

 

U-20대표팀의 바통을 이어 이광종 감독이 이끄는 U-17 대표팀도 10월 나이지리아에서 개막한 2009 FIFA U-17 월드컵에서 22년 만에 8강에 올랐다. 포르투갈이 루이스 피구, 루이 코스타 등을 앞세워 89-91년 세계청소년선수권을 2연패하며 훗날 포르투갈 축구의 중흥을 이끄는 '골든 제너레이션'(황금세대)이라는 찬사를 받았듯이, 한국축구도 모처럼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유소년 축구의 잠재력을 어떻게 꾸준히 관리-육성할수 있느냐에 미래가 달렸다고 할 만하다.

 

포항, K리그의 갈 길을 제시하다

 

A매치에 대표팀이 있었다면, 클럽축구에는 포항이 있었다. 파리아스 감독이 이끄는 포항은  클럽무대에서 K리그와 아시아축구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 포항은 AFC 챔피언스리그와 컵대회 정상에 오르며 구단 역사상 최대의 전성기를 보냈고, 아시아 챔프자격으로 진출한 클럽월드컵에서도 3위에 올라 역대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특히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는 스콜라리 감독과 히바우두가 버티고 있는 분요드코르(우즈베키스탄)에 1차전 1-3의 패배를 딛고 2차전 홈에서 연장 승부 끝에 4-1로 승리하며 이번 대회 최고의 명승부를 연출하기도 했다.

 

포항은 올시즌 이렇다할 스타플레이어 없이도 짜임새있는 공격축구과 아기자기한 패스게임을 통하여 성적과 재미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아시아쿼터제와 경기불황 등의 영향으로 위축된 K리그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다. 또한 경기 외적으로 불필요한 항의나 시간소모를 줄이고 오직 축구 플레이의 완성도 자체에만 집중하는 '스틸러스 웨이' 정책의 성공은, 포항을 넘어 한국 프로축구가 나아가야할 하나의 역할 모델을 제시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2009 한국축구 화제의 인물들은?

 

허정무 감독은 지도력에 대한 논란을 딛고 성인대표팀의 7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을 일궈냈으며, 새 지도자로서 멋진 패자부활전을 이뤘다는 평가다. 청소년 대표팀의 돌풍을 이끈 이광종 감독과 홍명보 감독도 빼놓을수 없는 인물들이다.

 

'강희대제' 최강희 감독은 소속팀 전북을 창단 첫 K리그 정상에 올려놓으며 자타공인 프로 최고의 명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동국은 잉글랜드 무대에서의 실패 아픔을 딛고 올해 K리그 득점왕과 MVP에까지 오르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올시즌 성남의 지휘봉을 잡은 '초보' 신태용 감독은 데뷔 첫해 팀을 FA컵과 K리그 결승전까지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변화와 모험을 두려워하지않는 신태용 감독의 파격적인 언행은 때로 '괴짜' '돌아이'라는 엇갈린 반응을 자아내기도 했지만, K리그에 '예능축구'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내며 신선한 재미를 안겼다는 평가다.

 

외국인 감독 중에서는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이 단연 돋보인다. 파리아스 감독은 올해 AFC 챔피언스리그와 컵대회 우승으로 2007년부터 국내무대에서 맛볼수있는 모든 우승컵을 싹쓸이하며 역대 최고의 외국인 감독반열에 올랐다. 터키 출신 세뇰 귀네슈 감독은 비록 '무관'에 그치며 쓸쓸하게 귀국길에 올랐지만 서울의 축구를 한단계 더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으며 유망주 육성정책과 팬들을 위한 축구라는 화두를 일깨우며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았다.

 

박주영, 기성용, 이청용은 올시즌 한국축구의 세대교체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모두 서울 출신인 이들은 1년사이에 나란히 국가대표팀의 핵심전력으로 떠올랐고, 해외진출에도 나란히 성공하며 한국축구의 미래에서 현재로 자리매김했다.

 

'해외파의 자존심' 박지성은 한국 선수로서는 최초로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오르며 아시아축구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 박지성은 올해 맨유와 재계약에도 성공하며 올드 트래포드에서의 빛나는 경력을 이어가고 있으며, 내년 남아공월드컵에서도 대표팀의 캡틴으로 활약이 기대된다.

 

K리그의 '살아있는 전설' 김병지는 11월 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전북전에서 K리그 사상 첫 500경기(500실점) 출장 고지를 밟았다. 1992년 프로 입문 후 18년에 걸쳐 쌓아온 대기록은 철저한 자기관리와 지치지않는 열정의 산물이었다.

 

돌아보지마. 한국축구의 그늘

 

반면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다. 한국축구의 국제무대에서의 연이은 선전과는 대조적으로 K리그는 내우외환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스타 선수들의 해외 유출과 미디어의 홀대, 인기구단들의 부진, 거친 항의문화와 판정 논란 등으로 인하여 K리그는 그 어느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야했다.

 

조중연 신임 대한축구협회장은 18년 장기집권한 정몽준 회장의 뒤를 이어 축구인 출신으로서는 처음으로 수장에 올랐다. 그러나 고질적인 축구계 주류와 비주류, 협회와 프로연맹간의 알력 다툼을 극복하는데 있어서 포용력과 리더십에서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풍운아' 이천수는 올해 전남 유니폼을 입고 개막전에서 '주먹 감자세리머니'로 출장정지와 기수봉사의 중징계를 받는 해프닝을 겪는가 하면, 시즌 중반 돌연 소속팀과의 계약을 종료하고 사우디로 이적하는 과정에서 연이은 돌출행동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올해 최악의 인물은 단연 변병주 전 대구 감독이다. 올해 꼴찌라는 최악의 성적표에도 불구하고 대구로부터 재계약에 성공했던 변감독은 지난 7일 2007년부터 외국인 선수와 계약과정에서 에이전트 유 모씨에게 금품을 받은 혐의가 밝혀지며 전격 구속됐다. 감독과 에이전트가 얽힌 부당한 뒷거래, 구단의 관리 능력 부재가 겹치며 변병주 감독은 K리그 역사상 최악의 오점만을 남기고 축구계에서 퇴장해야했다.

2009.12.29 13:58 ⓒ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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