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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없는 '버저비터', 그보다 더 억울한 순간은?

[베이징 올림픽] 여자 핸드볼 준결승, 한국 28-29 노르웨이

08.08.22 11:12최종업데이트08.08.22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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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료 5초를 남겨놓고 우리의 간판 레프트백 문필희의 동점골(28-28)이 터졌다. 이 때 우리 벤치에 기다리고 있던 선수들은 서로 얼싸안고 기뻐하고 있었다. 후반전이 그대로 끝나 연장전이 이어지는가 싶었지만, 종료 부저와 동시에 노르웨이 센터백 하메르셍의 오른손 끝을 떠난 공이 우리 골문의 그물을 흔들었다.

핸드볼 규정상 종료 부저가 울린 뒤에 골 라인을 통과하는 공은 아무 소용이 없다. 핸드볼에는 농구의 '버저비터(종료 버저가 올리기 전에 던진 공이 골대에 들어가면 득점 인정)'가 없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팀 벤치의 임영철 감독과 최석재 코치는 본부석 앞으로 가서 "마지막 순간 들어간 골은 무효"라고 주장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본부석에 똑바로 전해줄 통역 담당 임원은 그 순간 어디에도 없었다. 최석재 코치가 짤막한 영어로 경기장 전광판의 느린 화면을 가리키며 비디오 판정을 요청했지만 노르웨이 선수단과 스페인 출신 심판들(브레토·후에린)은 이미 경기장을 떠난 뒤였고 경기 감독관도 묵묵부답이었다.

임영철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여자핸드볼대표팀은 21일 저녁 베이징에 있는 국립 실내 경기장에서 벌어진 2008 베이징올림픽 여자핸드볼 준결승전에서 유럽의 강호 노르웨이를 맞아 종료 직전까지 또 하나의 명승부를 펼쳤지만 28-29(전반 15-14)로 아깝게 물러나 3-4위 결정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심판들은 빠른 역습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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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아테네올림픽에 이어 또 한 번의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그리던 우리 선수들은 경기 종료 7분을 남기고 노르웨이의 왼쪽 날개 요한센에게 골을 내주며 23-27로 끌려갔다. 이에 반격을 시도한 우리 선수들은 문필희가 던진 회심의 오른손 슛이 노르웨이 골문 왼쪽 기둥에 맞고 나오자 실망하는 빛이 역력했다. 골대 불운은 1분 50초를 남겨놓고 간판 센터백 오성옥에게도 찾아왔다.

기적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따라붙기는 결코 어려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의 막판 투혼은 눈물겨웠다. 왼쪽 날개 안정화와 피벗 허순영의 연속골이 터졌고 레프트백 문필희는 종료 5초를 남겨놓고 놀라운 동점골까지 터뜨렸다. 이에 우리 선수들이 28-28에서 연장전을 준비하는 순간, 또 한 번의 억울한 일이 터진 것이었다.

후반전 30분, 경기 종료를 알리는 부저 소리 직후에 들어간 노르웨이 센터백 하메르셍의 골이 그대로 인정되어 경기는 28-29로 끝나고 말았다.

사실, 이 결승골 판정보다 더 억울한 상황은 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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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종료 3분 정도를 남겨놓고 레프트윙 안정화에 이은 레프트백 문필희의 멋진 스카이 슛이 골로 연결되며 점수판이 25-27로 된 이후, 앞서고 있는 노르웨이 선수들도 크게 흔들렸다.

이어진 노르웨이 선수들의 공격 장면에서 걷기(오버스텝) 반칙이 선언되어 공격권이 우리 선수들에게 넘어오는 순간, 빠른 역습을 시도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노르웨이 센터백 하메르셍이 공을 바로 바닥에 내려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핸드볼 경기에서 턴 오버(공격권 넘겨주기) 할 때, 공격하던 선수는 곧바로 공을 바닥에 내려놓아야 한다. 축구와는 달리 이 부분(고의적 시간 끌기)에 훨씬 엄격한 규정(2분 퇴장)이 적용되는 이유는 공격권을 넘겨받은 팀의 속공 여부가 이 순간에 바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의 빠른 역습을 노골적으로 지연시켰던 전반전 상황에서는 노르웨이의 스노뢰겐에게 2분 퇴장의 징계(19분 30초)가 내려졌지만 경기 결과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58분과 59분의 긴박한 순간에는 스페인 심판 둘 모두 모르쇠로 일관했다.

핸드볼에서 빠른 역습의 중요성은 이날 득점 기록지만 살펴봐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노르웨이는 이 경기를 통해 14번 속공을 시도하여 9골이나 뽑아냈다. 수비로의 빠른 전환이 돋보인 상대 선수들의 대응에 한국 선수들은 비교적 많이 시도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5번 시도에 3골을 얻어냈다. 이만큼 높은 성공률을 기록하는 공격 패턴이기에 그 기회를 놓쳐서는 승기를 잡기 어려운 것이 핸드볼이다.

마지막 결승골 순간이야 사람(심판, 경기 감독관)의 눈으로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빨리 지나갔기 때문에 일단 그 판정을 인정한다치자. 하지만 그보다 더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억울했던 순간들은 어디에 하소연해야 할까?

경기 종료 직후 피벗 플레이어 김차연 등이 흘린 눈물은 단지 노르웨이의 결승골이 인정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나온 것이 아니다. 경기 진행 과정에서 그 결과에 적잖게 영향을 미친 억울한 판정들이 쌓이고 또 쌓였다가 터져 나온 것이 아니겠는가?

두 심판이 핸드볼 경기를 농구나 축구경기로 착각한 게 아닌가 싶다. 버저비터를 인정하고, 경기 지연에 제제를 가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성화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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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감독 임순례)이라는 영화로도 널리 알려진 2004 아테네올림픽 여자핸드볼 결승전(vs 덴마크)에서도 우리 선수들은 폴란드 출신의 두 심판에게 농락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리 선수들이 너무 얌전하게 뛰는 것도 이유 중 하나가 되겠지만 '유럽의 벽'은 직접 몸을 부딪쳐가며 싸우는 선수들에게서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올림픽을 통해 또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지난 대회에서 아쉽게 내준 금메달을 꼭 되찾아야만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이미 오성옥·오영란 등 우리 선수들이 몸을 내던지며 보인 투혼은 이를 지켜보는 이들 모두에게도 최고의 순간이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뭐 있으랴.

아직 성화는 꺼지지 않았다. 우리 선수들은 이제 토요일(23일) 오후 2시 30분, 같은 장소에서 '러시아 vs 헝가리' 경기에서 진 팀과 동메달을 놓고 마지막 경기를 벌인다. 그 동안 흘린 땀과 눈물을 떠올리며 후회없이 최선을 다할 그녀들에게 끝까지 찬사를 보내자.

덧붙이는 글 ※ 2008 베이징올림픽 여자핸드볼 준결승 첫 경기 결과, 21일 베이징 국립 실내 경기장

★ 한국 28-29(전반 15-14) 노르웨이

◎ 한국 선수들의 득점 / 선방 기록
허순영 4득점, 오성옥 5득점, 홍정호 5득점, 박정희 2득점, 안정화 3득점, 문필희 9득점
문지기 오영란 슛 37개 중 선방 13개(방어율 35%), 이민희 슛 8개 중 선방 3개(방어율 38%)
오영란 오성옥 여자핸드볼 베이징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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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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