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놈들과 함께 크게 한 번 놀아보자

[영화리뷰]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08.07.21 14:28최종업데이트08.07.21 17:59
원고료로 응원

진지한 사유의 전유물만이 영화가 아니다. 개인의 장난감 놀이를 공유하는 것이 영화가 될 수 있다고 김지운 감독의 장난감, <놈놈놈>이 자유롭고 능청스런 상상력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이 놀이를 이끌어 나가는 캐릭터다. 이렇게 타이틀부터가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들의 잔치가 될 것만 같았던 <놈놈놈>은 기대한 것보다 캐릭터가 부실하다.

 

'좋은 놈'보고 '선한 놈' 없다고, 분명히 있어야 할 정의의 사도가 도대체 어디 갔냐는 둥 착각 속에서 분통 터뜨리지 마라. 선하다 한 적 없다. 그냥 총 솜씨가 '좋은' 놈이다. 이제부터가 조금 애매하다. '나쁜 놈'이 있다는데, 대립되는 선한 놈이 없어 나쁘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고, 그나마 '이상한 놈'은 좀 이상하긴 하더라. 그것도 웃긴 놈이 더 어울린다.

 

제목은 일부이든 전반이든 그 영화를 드러낼 수 있는 구체적인 것이거나 알레고리 혹은 상징이어야 한다. '놈/놈/놈'이라는 세 캐릭터를 전면적으로 내세우는 타이틀이라 각각의 속성을 이런 식으로 구별해주는 게 흥미롭긴 하나, 약간의 어긋난 핀트는 아쉽다.

 

화려한 비주얼에다 총 솜씨까지 '좋은' 놈, 정우성 ⓒ 영화사그림㈜

 

그러나 <놈놈놈>의 본질은 유희와 스타일이다. 극히 기본적인 설정과 플롯으로 최소화시켜놓고, 나머지는 넓은 여백 위에서 거침없이 그리는 현란한 액션과 자유로운 움직임들이다. 과잉된 스타일리시는 정우성, 이병헌, 송강호라는 큰 그릇의 배우와 만나 '과잉'의 단점을 뛰어넘으며 폭발적인 에너지로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화려한 동적 이미지들을 보여주며 살아 숨 쉬게 된다.

 

유희 정신이 가득한 <놈놈놈>은 죽도록 고생하는 배우들과 스태프의 모습이 보이면서도 그 너머로 '얼쑤얼쑤' 하며 신나게 놀아버리는 놀이판의 모습도 동시에 보인다. 바로 그 위에서 김지운 감독은 제대로 놀 줄 알기에 늘 변화하고 앞서나갈 수 있다.

 

<조용한 가족>, <반칙왕>과 같은 그의 초기작들은 아기자기한 플롯과 꽉 채워진 스토리로 즐거움과 감동을 선사했었다. 그러나 이후의 <장화, 홍련>, <달콤한 인생>, <놈놈놈>까지 넘어오며 내러티브보다 아름다움과 멋스러움으로 점철된 형식미에 더 치중했다. 이것은 실속 없는 껍데기가 아니다.

 

엄청난 독기와 카리스마를 뿜어대는 나쁜 놈, 이병헌 ⓒ 영화사그림㈜

 

갈수록 자유로워진다. 여기저기 영향을 많이 받아 그만큼 따온 것들도 많다는 <놈놈놈>이지만, 자유로움과 '놀아보자' 정신은 웨스턴 무비의 '한국판'이라고 하는 것이 무색하지 않게 또 하나의 독창적인 작품이 나왔음을 설명하기 힘들 만큼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그만의 스타일로 보여준다.   

 

정우성은 역시나 비주얼이다. 멋있다. 송강호 또한 여전하다. 기존의 캐릭터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단점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이야기가 단순한 반면 몸뚱이는 워낙 큰 <놈놈놈>이라 자칫하면 지루해지기 쉬운데, 그때마다 어김없이 감칠맛 나는 연기와 특유의 대사로 뻥하고 웃음을 터뜨려준다.

 

그래서 '이상한 놈'은, 튼실한 내러티브 영화를 거부하는 <놈놈놈>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캐릭터다. 이병헌은 카리스마가 철철 흘러넘친다. 기존의 섬세한 연기가 찾아보기 힘들어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무한대의 독기를 뿜어내는 그의 포스는 아주 그냥 끝내준다.

 

이상하게 웃긴 이상한 놈, 송강호 ⓒ 영화사그림㈜

 

한국 영화의 무한한 가능성을 봤다. 멋대로 놀 줄 아는 감독의 앞날이 창창하다. 삶에 대한 철학적 고찰과 깨달음을 가져다주는 진정성의 영화가 시공간을 뛰어넘는 생명력을 가졌다 할지라도, 한바탕 확실하고 질펀하게 노는 영화도 필요하다.

 

물론 놀 거면 브레이크 적당히 밟고 제대로 놀아야 한다. 노는 영화도 생명력이 있다.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킬 이런 영화 속, 불온함과 잡종기질의 원형은 끝없이 진보할 또 다른 영화들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대통(大通), 크게 통하다(http://paper.cyworld.com/BigGate)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7.21 14:28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대통(大通), 크게 통하다(http://paper.cyworld.com/BigGate)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놈놈놈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