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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감독이 작가주의 감독?

[리뷰] 이안 감독의 <색, 계>

07.11.13 10:19최종업데이트07.11.13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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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면서 조금 뜬금없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의 제목과 영화의 줄거리를 연관시켜 보건대, 이 영화의 주제는 - 감독 또는 제작 측이 의도한 주제는 - 색욕(lust)에 대한 지나친 갈망과 몰입은 여자나 남자에게 위험할 수 있으므로 경계해야 한다는 유교이데올로기 내훈처럼 보인다. 실제로 영화에서 서로간의 육욕을 탐닉하다가 여자주인공(탕웨이)은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남자주인공(양조위)은 암살의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모면한다.

그런데 이런 영화의 설정과 서사구조는 우선 너무 시대착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보면 시공간적 배경은 일본군국주의의 지배를 받는 중국이고, 여자주인공과 그 주변인물들은 친일장관(양조위)을 암살하려고 도모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자주인공과 남자주인공이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고 그 결과로서 거사는 실패한다는 줄거리다. 그런데 문제는 제국주의적 모순이 점철하는 중국의 격동기를 꼭 이런식으로 그려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색, 계>가 유명영화제인 베를린영화제의 수상을 했다는 것을 떠올리고 <색, 계>가 아시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안 감독이 보수적 평단의 오리엔탈리즘적인 선택에 기대어 수상했고 이안 감독 또한 맞춤형 영화를 제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색, 계>에서는 남자주인공이 여자에게 성적으로 권위적인 가부장적 남성이다. 그리고 몇몇 남자인물들은 가장 어려운 임무를 여성에게 전가하는 대학생 투사로 비겁해 보인다. 여성들은 우선 주인공부터가 성을 매개로 피동적이 되고 자신의 임무(암살)를 방기하는 무책임한 여성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당시의 중국에 대한 묘사라면 등장했을 성 싶은 중국의 공산주의자나 국공내전의 분위기 그리고 그 시기 정도면 여전히 잔존했을 전족폐습, <아큐정전>같은 데서 읽히는 몽매한 민중에 대한 동정적 시선, 그리고 영국이나 서구 제국주의자들에 대한 반감 같은 것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당연해 보이는 시대상이 몽땅 생략되어 있다. 기껏 등장하는 것이 극장에서의 맥빠지는 반일 외침이다.

동양(아시아)을 피동적이고 비이성적이며, 역사를 기억 못 하는 비겁한 주체로 바라보는 시선이 보인다. 이건 이안 감독의 제작의도에서 기인하는지 시나리오에서 기인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결과치로서 <색, 계>의 텍스트에서 읽히는 것들이며 이런 것들을 통칭하여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할 만하다.

사실, 이안 감독에 대한 불쾌감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베니스 영화제 수상을 한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동성애자 주인공들을 관음증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사회의 외부를 떠도는 아웃사이더로 묘사하는 것도 그렇고, 할리우드 데뷔작 <와호장룡>에서는 동양(아시아)이 아크로배틱한 구경거리로 전락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와호장룡>은 기회가 있다면 조금 자세히 보기는 해야겠지만, 성룡식, 주윤발식, 이연걸식, 주성치식 영화에서의 동양(아시아)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색, 계>를 영화의 내부로 들어가면 과연 이 정도의 영화가 그토록 권위 있는 영화제의 수상작인지 사실 의심이 들 정도다. 우선 바로 눈에 거슬리는 것은 대부분의 컷이 전혀 미학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상하좌우를 마구 잘라내는 폭력적인 컷들은 너무 거부감이 들었고, 대부분의 컷은 전혀 공을 들이지 않고 대충대충 찍고 대충대충 편집한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화면의 전체적인 색조를 보면, 깔끔한 것은 좋았지만 사실, 그런 정도의 색감은 다른 영화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라서 새롭다거나 훌륭해 보이지 않았다. 직접 비교하기는 그렇지만, 최근 이명세 감독의 <M>은 지나칠 정도로 잘 만든 컷들이 문제라면 <색, 계>는 대가라는 평판이 어울리지 않게 너무 대충대충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사의 전개도 사실 그렇게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영화의 템포가 일정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반전을 준비하며 긴박하게 진행되는 것도 아니었다. 지겨울 정도로 느슨하게 진행되다가 강한 베드신 두어 번 나오더니 갑자기 뒷수습해서 끝났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이안 감독의 영화는 이안 감독만의 미학이 존재할 수 있고 아트를 표방하는 영화라면 상업영화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겨움이 미학이 될 수는 없고 몇몇 지나치다 싶은 베드신은 왜 필요한지 의문이었다. 이안 감독이 이 장면들을 가지고 영화표현의 한계를 넓혀보고자 했던 것은 아닐 테고, 결국 이안 감독도 관객과 제작사를 위한 마케팅 포인트를 잡고자 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영화음악의 문제도 한 번 짚고 넘어가고 싶다. 최근의 어떤 영화들을 보면, 살벌한 살육신에서도 경쾌한 음악이 나올 정도로 영화음악이 이제는 고정적이거나 부차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영화음악 자체가 영화를 상당한 정도로 선도하고 이끌기도 한다.

그런데 <색, 계>를 보면 청각성이 시각성을 좇아가고 보완해주는 진부한 경향이 여전히 답습되고 있다. <색, 계>는 영화음악의 사용에서조차도 우리가 뛰어넘어야 할 점을 반복하고 답습하고 있다. 왜 청각이 시각에 우선하거나, 영화가 촉각적이어서는 안되는가?

여러 측면을 고려할 때, <색, 계>는 진부하고 관습적인 영화다. 세계적 규모의 영화제에서 수상을 했음에도 고전적 영화의 원칙을 충실히 계승한 것도 아니며, 뛰어난 상업영화들도 하는 혁신을 성취한 것도 아니다. 그저 진부한 영화의 내적 외적 관습에 충실한 작품이다.

감독론을 덧붙이면, 이안 감독을 작가주의 감독으로 보기에는 힘들 것 같다. 그의 작품들이 베니스, 베를린 영화제 등의 수상을 했음에도 이안의 작품에서는 작가주의 감독과 영화의 잣대가 되는 고유성이나 일관성을 찾아볼 수가 없다.

굳이 이안 감독의 특별한 점을 찾아보라면 그가 동양인이라는 점에서 자동으로 발생하는 점들만이 있을 것 같다. <와호장룡>에서의 무협세계, <브로크백 마운틴>에서의 자연주의적 영상들, <색, 계>에서의 유교적 교훈을 연상시키는 이데올로기성 등. 그가 동양인이고 중국인이기 때문에 저절로 얻게 된 점들만이 그의 영화에 자동으로 반영된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점들이 입증하는 것이 이안 감독이 작가주의 감독이거나 진보적 경향의 감독이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랜 연륜의 감독이라는 점이 그 감독이 작가라는 것을 증명하지 않고 할리우드 시스템에서 동양인이었다는 것이 저절로 이안 감독을 진보적 감독으로 자리매김하지는 않는다.

난 작가주의 감독이라면 우선 떠오르는 감독이 임권택 감독이다. 임권택 감독의 작품을 다섯 편 이상 본 것은 아니지만, 본 작품들에 미루어서 생각하면 임권택 감독에게는 자본(영화자본)과 쉽게 척을 질 수 없는 영화감독의 한계 내에서 일관된 한국적 영화세계를 가지고 재미있으며 훌륭한 영화를 만들어 내는 미덕이 있다.

내 글이 일정선 이상은 인상비평이라는 한계는 있지만, 내가 보는 이안 감독은 작가라기보다는 영화공에 가깝다고 본다. 물론, 대단한 수상경력과 인지도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그의 탁월함을 입증하는 증거가 꼭 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제의 수상은 영화계 내부의 여러 이해관계자들 간의 정치적 거래의 산물일 수도 있고, 대중적 인지도는 반드시 그 감독이나 영화의 우수함을 증명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다. 바로 '진보성'의 문제다.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 감독이 정치적인 의견조차 진보적인 경우다. 그런데 영화를 하는 사람에게 정치적 의견까지도 꼭 진보적이어야 한다고 요구할 수는 없다. 그것은 그 사람의 정치적 소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박찬욱 감독이나 봉준호 감독이 민주노동당 당원이라는 점이 금상첨화이기는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박찬욱 감독이나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마찬가지로 이안 감독의 영화세계가 보수적인 이데올로기나 취향을 상당할 정도로 반영한다고 해서 그것이 이안감독의 결정적 약점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이안 감독이 중국사를, 아시아를, 여성을, 동성연애자를, 일본을, 영화자본을 어떻게 보든 간에 만일 누군가가 이안의 영화세계에 홀딱 반해 있다면 그의 의견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한 가지 측면은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위의 글에서 영화음악의 문제를 언급하면서 잠깐만 언급한 내용이지만 영화의 기술적 측면이다. 여기서의 영화기술은 단지 컴퓨터그래픽(CG)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의 총체적 제작기술의 제 부분인 촬영, 편집, 사운드, 효과, 연기, 미술 등에서 이안 감독은 너무 일찍 노후화되거나 진부화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적어도 영화적 혁신의 길로 접어든 것 같지는 않다.

위대한 대가 한 명이 너무 일찍 기술적인 측면으로나 영화미학적인 측면으로나 더 이상 발전을 포기한 것 같다. 그것이 오늘 <색, 계>를 본 최종소감이다.

이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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