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그닥 즐겁지만은 않은 '즐거운 인생'

환상에 젖었다 깨어나면 남는 게 없다

07.10.05 15:01최종업데이트07.10.05 15:11
원고료로 응원

7080류(流)라고 해야 할까? 당대의 생활환경과 문화, 경험과 추억들에 얽힌 아이템들이 그 시대를 거친 이들의 정체성에 대한 갈구와 경제적 구매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서브컬쳐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어쩌면 서브라기보다는 '메인의 뿌리'로 자처하며 나서는 측면이 더 강하다. 여러 분야에서 일정하게 메인의 뿌리라는 주장에 공감이 가기도 하지만, 30~40대의 주장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나라의 문화는 급속 변동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잠깐의 여유' 마저도 며칠 안가고, 20대들의 문화가 머잖아 주류로 자리잡은 상황에서 7080류는 그저 노땅들의 서브컬쳐로, 다시 말해서, 우리 또한 우리 부모세대와 같이 구차하고 후줄근한 인간들로 밀려날 확률이 매우 높은 것도 사실이라고 본다.

 

영화 '즐거운 인생'은 그런 7080류 인간들에 관한 수만가지 이야기들 중에서 한가지 정도의 환상을 영화적으로 구현한 기특한 시도일 뿐이다. 그런데, 그 영화에 어느 정도는 공감하고 몰입도 하는 것을 보니 나 역시도 어쩔 수 없는 7080류 인간인가 보다.

 

근래에 영화만 놓고 보면 '쑈쑈쑈'라든가 '라디오스타', '복면달호' 따위의 7080류가 영화판에서 어떤 유행으로 시도되고 있는 것 같다. 좋다. 내겐 모두 재밌고 괜찮은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아직 깊이가 없다. 메인의 뿌리라는 정체성을 인정받고 우러러 보이고 싶다면, 그 다음 상황과 인과적으로 연결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왜 조용필이 서태지와 연결되어 지오디와 슈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딸린다. 대충 보면 다 제각각이다. 그러나 뭔가가 있긴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어쩌면 영화인들은 부지런히 연구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못난이들은 문화를 연구해야 할 학자들인지도 모른다. 비평한다는 자들의 무개념도 물론 한몫 하고 있겠지.

 

'즐거운 인생'은 전혀 즐겁지 않은 영화다. 이야기의 전개, 전환, 상승, 갈등구조 등에서 늘어지는 부분도 많고, 필연이라는 요소도 부족하다. 유일한 이유는 그저 '음악이 좋다'는 어떤 '원죄적'인, 또는 '유전자의 갈망' 같은 추상적인 이유이고, 그것이 조금은 뜨악할 정도로 작위적인 스토리를 이끌어간다.

 

물론, 사회적으로 낙오한 인간군상들의 모습에 공감가는 요소는 충분하다. 실직한 가장, 기러기아빠, 마누라에 얹혀사는 무능남, 구질하게 살다 간 예술가 아버지를 증오하는 아들…. 그런 사람들이야 물론 현실에서 차고 넘친다. 그런데, 하필 이들을 묶는 이유가 '음악에 대한 원초적 욕망'이라는 것인데, '친구의 죽음과 밴드의 재회'라는 설정까지는 매우 그럴듯했지만, 이후의 전개가 너무 작위적, 우연적이라는 점이 이 영화가 찝찝한 이유다.

 

어쨌거나, 그들은 20대의 열정으로 돌아가 밴드로 다시 묶이는 것으로써 자신들이 처한 구차한 삶의 현실을 벗어난다. (그나마 확실히 벗어났다는 증거도 없이 영화는 끝나 버린다.) 그럴 듯하지만 매우 그럴 듯하지 못한 이야기, 그런 환상설화가 주는 재미도 분명히 있었으나, 영화를 보고 난 다음 남는 것은 그 밴드 '활화산'의 메인테마인 '터질거야'라는 노래가 주는 '현실에 대한 터질 듯한 절망'에 대한 공감 뿐이다.

 

영화는 주인공들이 먹고사는 문제, 가족 및 주변과의 관계, 꿈의 실현이라는 여러 얽힌 문제들에 관해서 실질적으로 무엇을 해소했는지 보여주지 못한 채, 꿈같은 공연장을 배경으로 끝나버렸다. 막연히 미소짓거나 감격하며 그들과 함께 환상에 젖은 주변사람들의 모습과 함께. 그들도 영화 밖으로 나와 보면 허탈하지 않을까?

 

차라리, 헐리웃 방식으로 해피엔딩을 추구한다면, 그들의 마지막은 엔딩크레딧의 배경으로라도 조개구이집 테이블 사이를 누비며 서빙하고 손님들과 희희낙낙하는 장면이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기왕에 억지스럽게 이야기를 끌어왔으니 조개구이집도 대박나고, 공연도 정기적으로 열려서 성공한다는 암시라도 주는 편이 어땠냐는 것이다. 남은 현실적인 문제들은 관객들의 상상에게 맡겨두더라도 말이다.

 

한가지 더 아쉬움이 남는다면, 기왕에 음악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면 그럴 듯한 새 노래를 적어도 서너 곡은 깔아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터질 거야'는 나름 신경써서 편곡하고 삽입한 흔적이 보이는데, '즐거운 인생'이라는 노래는 임팩트가 없어 영화를 본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곡의 분위기까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거다. 이거야 뭐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고 치자. OST라도 팔아먹을 요량이라면 7080류의 뻔한 리바이벌 말고, 새 노래도 최소한 세 곡 쯤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무브온21, 엠파스블로그, 다음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7.10.05 15:01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무브온21, 엠파스블로그, 다음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영화감상 즐거운 인생 이준익 7080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